언어능력의 한계, 언어의 한계, 사고의 한계

By @kmlee4/9/2018kr-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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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사고의 틀을 제한한다는 가설이 있다. 이 가설은 제2언어 학습이 유리한 시기가 있다는 이론과 맞물려 학부모들이 경쟁적으로 자식들에게 제2언어 교육을 강요하도록 하기도 한다.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학습이 유리한 기간에 제2언어를 습득시키겠다는 것이다. 제2언어 능력이 있는 아동들이 정신적으로 발달했다는 연구들도 있는만큼 학부모들이 이해되지 않는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언어는 인지의 틀을 제공하며, 언어적 표현의 틀을 제공할 뿐이지 사고를 제한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선 수를 모른다고 많고 적음에 대한 사고 자체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매듭법을 모르는 사람은 산악인, 뱃사람이 매듭 짓는 법을 구분하여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매듭 짓는 법을 지켜보게 한 후 표현하게 한다면 '매듭 짓는 사람'이라 표현하지, 그 매듭의 용도를 알지도, 그 매듭의 이름을 알지도 못 한다. 하지만 뱃사람의 매듭, 산악인의 매듭을 나란히 두고 둘을 구분하라고 하면 둘을 구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매듭의 형태, 용도, 이름에 대해 학습시킨다면 이전에 보았던 매듭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그들의 직업을 유추할 수도 있을 것이다. 'Sorry'와 '미안'은 용법이 완전히 겹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안'이라는 표현만 알고 살았던 한국인도 'Sorry'의 용법에 대해 배우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평생 언어적인 표현이 가능한 수단이 없이 살았던 사람도 표현이 가능한 수단을 학습한 이후에, 학습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표현할 수 있다. 언어적 능력이 없다는게 사고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래서 언어는 사고의 틀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2언어 능력이 있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에서는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사실 굉장히 간단하다. 제2언어 능력이 있다는건, 더 많은 환경에 노출되었고 더 많은 경험을 의미한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아동이 그렇지 않은 아동에 비해 발달 했다는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특히나 제2언어 능력과 아동의 사고능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언어능력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그렇다면 언어적 환경에 노출이 많은 아동이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왜 놀라운가? 내가 보기에는 "하루에 축구만 1시간 한 아동에 비해 하루에 축구 1시간, 농구 1시간 한 아동이 축구를 더 잘 하더라"와 큰 차이 없게 느껴진다.

생각을 언어로 하느냐, 아니냐는 오랜 논란이 되는 주제다. 언어능력이 없는 사람도 생각할 능력은 있지만, 이와 별개로 언어를 이미 습득한 사람의 모든 인지와 경험은 언어를 토대로 일어났고, 따라서 생각 또한 언어를 토대로 하는게 아니냐는 가설도 존재한다. 내 주관적인 경험은 그 가설에도 반대한다. 때로는 이미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그 생각을 언어로 옮기는 일이 어렵다. 머릿속에서는 명쾌한 생각이 말 혹은 글로는 명쾌하게 표현되지 못 한다. 나는 언어의 형태로 생각을 하고 생각을 그저 받아적듯 표현하는게 아니라, 생각을 언어로 번역하듯 표현한다. 물론 내 주관적인 경험이란 그 어떠한 신뢰도도 갖지 못 하고, 혹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면 제대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라기도 하지만 말이다.

언어능력의 한계인지, 언어의 한계인지, 사고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내 머릿속에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머릿속에서는 명쾌하게 모든게 해결된 것 같은 순간임에도 나는 도저히 그 생각을 옮길 표현을 찾아내지 못할 때가 있다. 생각이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도 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던 생각이, 무언가에 부딪쳐 길을 잃기도 한다. 그리고 그 좋은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그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항상 손이 닿는 곳에 메모를 위한 도구를 두고 생각이 떠오른 즉시 이를 언어로 번역하여 기록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항상 실패한다. 과연 이는 머릿속에서 흘러간 생각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언어의 한계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 사고의 한계로 순간적인 번득임을 정리하지 못 했을 뿐일까?

글을 마무리하려다가 문득 가끔씩 나에게 찾아오는 자극이 생각났다. 충동, 느낌, 감정 중 어떤 것도 그 자극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꼭 표현해야 하는 순간이라면 나는 "부정적인 자극" 내지는 "육감"이라고 표현한다. 부정적인 자극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불쾌함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오기 때문이고, 무언가를 피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긍정적이라 표현하기는 어려운 자극 아닌가? 하지만 육감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문득 그 자극을 느꼈다. 그 길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 자극은 결코 무시할만큼 약하지 않기에 나는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며 그 자극의 원인을 생각해보니, 내 지갑에는 현금이 없었다. 그리고 그 길로 건너면 ATM이 한동안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현금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자극이지만 분명 하나의 사고이긴 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우연이었을까? 공황발작이 찾아오듯 부정적인 자극이 찾아왔는데, 우연히 그것이 잘 맞아떨어진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황발작조차도 뚜렷하게 언어로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유는 있지 않은가?

스포츠 선수들이 엄청난 움직임을 보여주고, 그게 극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때 인터뷰어가 어떻게 그럴 생각을 했냐고 묻곤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냥."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인터뷰를 보고 그 선수의 동물적인 감각이 대단하다고 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선수의 뇌가 의식적인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고를 순간적으로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설명할 언어적 능력이 없는 선수들은 "그냥."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사고를.

확실히, 언어능력의 한계, 언어의 한계로 그 사고를 명확하게 남에게 전달하는게 어려울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그 사고가 불가능하며, 존재하지 않는건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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