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m the writer
접시를 닦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과 많은 말을 섞지 않아도 되는, 많은 사람과 마주치고 그래서 감정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접시닦이가 딱일 것이라고. 그때의 나는 그럴 것이다. 늦은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묵묵히 접시만 닦다 퇴근해 좁은 방에 홀로 몸을 누이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삶.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한국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곳은 캐나다가 될 터였다. 마침 나를 접시닦이 중 최고의 대접을 해 주겠다는 후배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나는 설거지를 매우 잘한다.
그렇게 접시를 닦아야만 하는 인생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모든 글쓰기를 포기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나를 상정한 것이다. 그 삶은 예상과는 다르게,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내게 최고 대우를 해 주겠다 약속한 후배의 일도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최초로 제안 받은 일자리는 쓰레기차 운전이 되었다.
처음에는 도로를 청소하는 청소차 운전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쓰레기차라니. 고민이 깊어졌다. 우선 대형차 면허가 없다. 면허를 따는데 시간과 비용이 든다. 비용은 투자라 생각하면 아쉬울 게 없지만 시간이 문제다. 하루아침에 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또 하나의 문제는 운전대를 놓은 지 벌써 몇 년이라는 것. 운전대만 잡으면 분노 조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나 억 소리 나는 외제차로 도로를 사유하는 졸부들도 그간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 텐데, 결코 쉽지 않은 운전이 될 것이다. 여기에 청소차가 쓰레기차로 바뀌면서 가뜩이나 비좁은 골목길을 점령한 차들 사이로 대형차를 몰아야 하는 부담과 새벽에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해져 망설임은 배가 된다.
아, 이런 고민을 하는 걸 보니 나는 아직 멀었구나. 아직도 먹고살 만하구나.
지난번 1차 귀국 때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가 스타트업을 준비한다고 해서 합류하기로 했었다. 6월 투자 유치 예정이었는데 7월 말로 미뤄졌다. 투자 유치는 언제나 불투명한 과업이다. 그래서 플랜B에 관해 얘기했다.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 각자 본업으로. 그게 결론이었다.
어쨌거나 한 달이 붕 뜬다. 그사이의 생계가 문제다. 그냥 생계라면 어찌어찌하겠는데 새롭게 일구는 삶이다. 기초부터 다시. 언제나 돈이 든다. 휴지부터 휴지통 하나까지 전부 추가 지출 비용이다. 거기에 손을 벌리기엔 민망한 나이까지 되었으니, 젊음을 방패 삼아 호기를 부리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코인질이나 열심히 할 걸. 스팀잇 한다고 손을 놓은 지 반년이 넘었더니 감을 잃었다. 하긴 단타는커녕 굴릴 코인도 남은 게 없다.
다음 주에 일식집 셰프로 있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한국이라고? 아예 귀국한겨? 일은? -백수야. -너 잘나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잠깐 반짝하다 말았지. -기회가 있을 때 잘 잡았어야지. 어쩌냐….
간절했던 미래는 멀어지고 외면했던 예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역시 접시를 닦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