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40

By @kimthewriter6/15/2018kr-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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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oya





  “이제 안심이 돼요?”
  “너무 그러지 마요. 간밤의 일을 정리도 안 하고 사라진 게 누군데요.”
  그녀를 사랑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녀의 행동은 명백히 무책임했으며 성숙한 어른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지 않았나.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어른답게 순순히 잘못을 시인했다.
  “그 부분은 인정할게요. 면담은 잘 끝났어요?”
  “뭐, 그런 셈이죠.”
  “그럼 이제 내가 걱정할 건 없는 거죠?”
  말코비치와 나 어느 쪽에 대한 건지 궁금했지만 나는 그냥 긍정의 대답으로 넘어가는 도량을 택했다. 일요일에는 파커 씨가 커피 트럭을 열지 않기에 우리는 UN 광장을 향해 걸었다.

  “그거 알아요? 당신과 짐은 다른 듯하면서 되게 비슷하단 걸. 물론 쌍둥이라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 말은 약간 달라요. 알죠?”
  그녀가 재밌다는 듯 말했다. 지미와 내가 비슷하다니. 당연한 얘기에 기분이 나빠진 나는 뚱한 표정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당신과 짐이 비슷한 건 사실이에요. 쌍둥이라서가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부분이 닮았달까.”
  “사람들은 그걸 유전자라고 부르죠. 최신 과학과 너무 담쌓고 사는 거 아니에요?”
  “맞아요. 내가 과학자답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죠.”

  뭐라고 대꾸를 해 줄까 고민하던 차에 그녀가 아까의 화제로 돌아갔다.
  “내가 말한 건, 그래요, 영혼이랄까. 이것도 좀 비과학적인 말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둘 다 뭐랄까, 굉장히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졌달까. 어렵네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진부한 표현뿐이에요. 이해해 줘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그녀가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얼른 해명에 들어가야 했으나 웃음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지미나 내가 그런 영혼을 가졌을 리 만무하잖아요. 녀석의 바보 같은 기질을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또 모를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요. 성인이 돼서도 순수하다는 소릴 듣는 놈들은 둘 중 하나예요. 엄청난 바보 아니면 엄청난 사기꾼.”

  광장에는 벼룩시장이 열려 있었다. 그녀는 딱히 사지도 않을 물건들을 흥미로운 듯 찬찬히 보며 느릿느릿 걸었다. 나는 잡동사니에 관심이 없었으나 인파에 섞여 그녀와 나란히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한쪽에 모여 있는 푸드 트럭 중 딱히 파커 씨의 경쟁 상대랄 것도 없는 커피 트럭에서 커피를 사 들고 간이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인이 중추 신경계를 자극하자 그녀를 만나면서부터 줄곧 잊고 있던 과제가 떠올랐다.

  “아 참, 다음 주말에 시간 있어요?”
  “왜요?”
  “불꽃놀이 하잖아요.”
  점심 먹고 좀 쉬다가 막차 타고 돌아오면 되겠지. 어차피 지미가 하룻밤 자고 올 테니까. 내가 없는 편이 엄마와 지미를 위해서도 더 나을 테고. 그런 계산이었다. 그녀는 컵의 뚜껑을 열고 햇빛에 반짝이는 까만 액체의 매끄러운 표면 위로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그러더니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다물었다. 어쩐지 부정의 대답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띠띠- 띠띠-
  우리는 때마침 울리기 시작한 손목시계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녀가 말했다.
  “약 먹을 시간이네요.”
  “네, 또다시.”
  “기다려요. 물 한 병 사올게요.”
  “괜찮아요. 커피 있잖아요.”
  “아뇨. 약은 커피랑 먹으면 안 돼요.”

  그녀는 내가 더 말릴 새도 없이 푸드 트럭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나는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그녀가 사다 준 물로 약을 넘기고 나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다가 어이없어하는 그녀의 눈빛에 그만뒀다. 어색한 침묵이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우리 사이에 오가는 말이 없어지자 사람들이 빚어내는 소란이 햇볕만큼이나 따갑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가 애써 잊고 있는 걸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불필요한 중간 광고를 끊었다.

  “아직 대답 안 했어요.”
  “뭐를요?”
  “불꽃놀이요.”
  “아, 그랬죠. 다음 토요일이죠? 그렇게 해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미소 지었다. 어딘가 온전치 않은 미소였다. 눈을 살짝 찡그린 건 햇빛 탓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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