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39

By @kimthewriter6/14/2018kr-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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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oya





  화가 났다. 지미가 내게 사기를 쳤기 때문이 아니다. 훌쩍 떠나 버린 그녀 때문도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하지 못한 데 나는 화가 났다.
  “애덤스 씨보다 더 걱정되는 건 너야.”
  그녀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지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화를 눈빛에 담아 지미를 쏘아보았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미가 물었다.
  “요즘도 데자뷔를 자주 느끼니?”
  “왜?”
  “그냥 확인하는 것뿐이야.”

  그답지 않은 불확실한 대답이었다. 나는 삐딱선을 탈 수밖에 없었다. 그 불확실성이 내 신경 어딘가를 자극했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이 딜레마니 운명이니 어쩌고저쩌고 했더란 말이지.”
  지미는 책상 위로 시선을 피했다.
  “데자뷔는 부작용 중 하나야. 원인은 아직 몰라.”
  “대단한 박사님 나셨구먼. 자기도 뭔지 모르는 약을 내게 잘도 줬다 이거지?”
  “어쩔 수 없었어. 거기까지 해결하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까.”
  “하긴 뭐, 상황이 어떻든 난 절이라도 해야 마땅한 몸이지. 어차피 산송장으로 살다가 죽을 인생이었으니. 그런 것도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야.”
  “그만. 그만하면 충분해.”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요구를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더 적절히 비꼰 문장을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지미가 먼저 말을 이었다.
  “네 하루는 다른 사람들과 절대 같을 수 없으니까. 그건 너도 인정해야 해.”
  빌어먹을. 녀석의 논리는 내 입을 계속 닥치고 있게 했다. 덩달아 지미의 침묵이 길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어른스럽게 닥칠 줄 아는 미덕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점은? 나도 그 인간처럼 미친다는 거야 뭐야?”
  지미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건 내 말에 대한 부정이 아니었다.
  “애덤스 씨를 자세히 검사해야 알겠다만…….”

  지미는 또다시 그답지 않게 말을 흐려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른의 인내심을 발휘해 녀석이 진실을 털어놓기까지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부재로 지루하고 무의미해진 시공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의 부재로 한층 더 위험해진 그녀를 찾아 의무를 다하고 싶었다. 초조함이 인내심을 바닥까지 말려 버리는 동안 지미는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한 곳에 시선을 붙박아둔 그 모습은 흡사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네 증세는 애덤스 씨와 매우 흡사해.”
  마침내 입을 연 지미가 무겁게 말했다.
  “데자뷔 말이야? 당연한 소릴 하는구먼. 같은 약을 썼으니 당연한 거 아냐?”
  “아냐. 네게 쓴 약은 좀 더 개량한 거야.”
  “어쨌든 부작용을 잡는 덴 실패한 거구.”
  지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 말에 수긍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빠져 있는 생각에 대한 것인 듯했다. 그 움직임이 완전히 사그라지려는 찰나에 지미가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문제지. 네 말대로 애덤스 씨는 정상이 아니니까.”

  그 말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정신병에 취약한 종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단호히 ‘나는 정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런 소리를 하는 이가 있다면 그야말로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정신이 비교적 멀쩡한 상태에서는 자신이 미칠 거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미쳤을 때 머릿속에서 벌어질 일들, 즉 미친 상태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 사고가 작동하는 방식, 보고 듣고 느끼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다른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몸에 갇힌 것처럼 내 의사와는 상관없는 생각, 말, 행동을 하면서 괴로워하진 않을까?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늘 치매나 망상이나 정신 분열을 앓는 환자들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하지만 때로는 평생 모르고 넘어가는 게 좋은 일들도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뇌가 곧 인격이고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겁은 그만 주고 이제 대책이나 말해 봐.”

  지미는 언제나 대비를 철저히 해 두는 유형이었다. 여행 하나를 가더라도 몇 달, 최소한 몇 주 전부터 계획을 짜고 착실히 준비하는 부류 말이다. 심지어 쓸 일이 있을까 싶은 물건도 만약을 대비해 챙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를테면 지우개 따위라든가. 그러나 이번에 그는 아무래도 다른 유형의 인간이 되고 싶었나 보다.

  “없어. 아직은.”
  “훌륭하군.”
  제기랄.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데?”
  나는 신경질적으로 물었고, 지미는 침착하게 답했다.
  “일단 애덤스 씨 상태부터 정확히 파악해야지.”
  너무도 담담한 말투에 나는 더 따질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밉살맞은 녀석에게 순순히 승기를 내주기는 싫었다.
  “그 인간이 그렇게 될 동안 대체 뭘 한 거냐? 그 잘나신 두뇌와 박사들을 데리고 뭘 한 거냐고? 그 막대한 연구비는 다 어디다 쓰고?”
  “애덤스 씨에게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진 않았어. 데자뷔를 빼면 이렇다 할 만한 게 없었지. 지금까지는.”
  “그럼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잖아.”
  “그래, 그 인간이 미쳤으니까.”
  “어떻게 됐든 내게 필요한 건 너의 협조야.”

  지미의 의도는 분명했다. 말코비치를 신고하지 마라. 그녀의 우려대로 말코비치의 정신 이상이 부작용 때문이라면 지미의 연구는 상당한 시련에 시달릴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내게도 좋을 게 없다. 문제는 그렇다고 놈을 내버려두면 그녀와 내게 드리운 위협이 언제 이빨을 드러낼지 모른다는 데 있었다.

  “제기랄.”
  흉중의 한마디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미안하다.”
  진심만이 담을 수 있는 비통한 어조로 지미가 말했다. 나는 불길함 그리고 풀죽은 녀석의 꼬락서니를 허공에 흐트리기 위해 손을 휘휘 저었다.
  “재수 없는 소리 마.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지미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 인간 신변은? 확보했겠지?”
  “아직. 연락이 안 되네.”
  “사람을 풀어서라도 끌고 와야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것참 믿음이 가는군!”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녀석을 위해 아껴 둔 삿대질을 오래간만에 마음껏 퍼부었다.
  “너는 네 할 일이나 똑바로 해. 나는 이러고 있을 시간 없으니까. 그 미친놈이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는 동안 그녀는 무방비로 방치돼 있잖아.”
  “미술관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지미의 태연한 태도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 의도만큼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더 쏘아붙이려는 찰나 지미가 선수를 쳤다.
  “엄마가 다음 주말에 들르래.”

  독립하여 외지에 나와 산다는 건 삶에 새로운 의무를 부여한다. 잊을 만할 때 전화로 안부를 물어야 하고, 적절한 때를 맞춰 찾아가야 한다. 집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말이다. 그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할당량이 적더라도 나 같은 인간에게는 고역으로 다가왔다. 해묵은 숙제처럼 마침내 손을 대기까지 엄청난 의지를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일로. 하지만 그 무엇보다 짜증 나는 건 날짜였다.

  “왜 하필 다음 주말이야?”
  “무슨 약속이라도 있어?”
  “불꽃놀이 있는 거 몰라?”
  “아, 그게 다음 주였군. 엄마랑 난 몰랐지. 보러 가기로 했었어? 누구랑 같이?”
  지미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뗐다.
  “클레어!”
  “잘돼 가고 있는 거야?”
  “안 될 이유 있냐?”
  지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소중한 팀원을 또 잃고 싶지 않거든.”

  준비한 듯한 말이었다. 나는 감정이 또다시 유치해지려는 조짐을 느꼈다. 수지 큐가 처음에 좋아했던 남자는 지미, 그녀가 동경하는 남자도 지미. 녀석이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그들이 있다…….

  “애덤스인지 말코비치인지 그 인간이나 확실히 단속해. 안 그러면 팀원 하나 잃는 걸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유치한 감정에 자신을 이입하는 짓은 그만두고 사무실을 떠났다. 아시안 아트 뮤지엄에서 그녀와 재회하기까지 나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 있었다. 시간이 빨라졌음에도 거리는 길게만 느껴졌다. 나쁜 생각이 머릿속을 감염시키는 동안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그에 반해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가볍게 한숨을 쉬고 부탄에서 왔다는 불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가해한 미소를 띤 불상은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런 나를 끌고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기울기 시작한 햇빛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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