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37

By @kimthewriter6/5/2018kr-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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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oya





  총구는 정확히 나를 향해 있었고 내 손은 미처 거기에 닿지 않은 상태였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쭈뼛 올라왔고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총구에서는 불꽃이 일지 않았다. 천둥 같은 격발 소리도 나지 않았다. 총이 고장 났나? 아니면 처음부터 탄창이 비어 있던 걸까? 주춤하는 사이, 마찬가지로 당황한 말코비치가 뒤늦게 권총의 슬라이드를 잡아당기는 걸 보고 이번에야말로 나는 앞뒤 생각할 틈 없이 달려들었다. 곧바로 말코비치와 나 사이에 필사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둘 다 싸움의 승패가 총에 달려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빼앗기 위해, 빼앗기지 않기 위해 힘을 쓰느라 나나 놈이나 숨 쉴 틈도 없이 악문 입에서 신음만 새어 나왔다. 어느 쪽이든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힘의 균형이 깨지며 끝장날 게 뻔했다.

  약쟁이들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서 보듯 약에 절어 지내다 보면 건강한 식단은커녕 끼니조차 제때 챙겨 먹기 힘들어서 근육이 감퇴하고 뼈가 삭고 피부는 거칠어진다. 약에 의한 신경 손상까지 더하면 문자 그대로 몸이 망가진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점을 보상하고도 남을 힘의 원천이 있었다. 바로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였다.

  그런데 빌어먹을. 그것은 쓸모가 없었다. 세상일이 의지만으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예상을 뛰어넘는 미치광이의 힘이 보란 듯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위험한 순간에는 놀라운 힘이 발휘된다고 하던데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람이 곁에 있음에도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망할 놈의 영화와 드라마들! 나는 그저 사력을 다해 말코비치의 완력에 맞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 말코비치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깨뜨렸다. 그녀가 놈의 뒤통수를 가방으로 후려친 덕분이었다.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의 아랫도리를 걷어찼다. 놈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본능적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로 손을 가져갔다. 기회만 노리고 있던 주먹이 얼굴에 강하게 꽂히자 마침내 놈은 총을 놓치고 비틀거렸다.

  “꼼짝 마!”
  드디어 나는 놈에게 총을 겨눴다. 놈은 입술이 터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놈의 눈빛에 당황과 놀람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것은 숱한 데자뷔를 느낄 때의 나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래, 결국 이렇게 되는 거군.”
  놈이 입가의 피를 훔치며 중얼거렸다.
  “난 결코 널 막을 수 없겠지. 결국 일어날 일이야. 너와 나 사이에…… 그래, 운명 같은 거지.”
  나는 놈에게 겨눈 총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미친 소리를 한마디로 함축한 단어가 신경에 거슬렸다. 운명이라…….

  “경찰에 신고해요.”
  내가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나온 그녀의 말은 내 귀를 의심케 했다.
  “안 돼요. 문제가 생길 거예요.”
  “문제? 무슨 문제요?”
  그녀는 대답 대신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애덤스 씨, 당신은 도움이 필요해요. 해든 박사님이 도와줄 거예요.”
  그녀가 타이르듯 말했다. 순간 놈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래, 당신이었어. 당신이 클레어군!”

  나는 하마터면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심장이 귓가에 두방망이질치는 소리가 들렸다. 말코비치의 말이 방아쇠가 되어 머릿속에 데자뷔의 연쇄 작용을 일으켰고, 현재 상황은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 무수한 기억의 편린을 재생했다. 말코비치가 기이하게 번뜩이는 눈동자를 옆으로 굴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야. 이제부터 시작이지.”
  말코비치는 천천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놈을 저지하기 위해 총을 앞으로 더 뻗었지만 그게 공갈이라는 걸 아는지 놈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저 개의치 않은 걸지도.

  “애덤스 씨, 잠깐만요!”
  그렇게 소리치며 쫓아가려던 그녀는 내 손에 붙잡히자 신경질적으로 나를 휙 돌아봤다.
  “저분을 도와야 한다구요!”
  “못 봤어요? 저 사람은 완전히 미쳤어요!”
  “그게 문제라구요!”
  문제라니? 그녀의 눈은 뇌리에 떠오른 심각한 가정을 반영하고 있었다.
  “저런 행동이 부작용에 의한 거라면 문제가 심각하단 말이에요. 언론에서 알게 되면 좋을 게 없어요. 사건을 부풀리고 연구 성과에 흠집을 내겠죠. 그렇게 되면 센터의 명예도 실추될 거예요.”

  코앞에서 살해 위협을 당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센터의 명성이라니? 진짜 걱정되는 건 지미의 명성이겠지. 나는 말코비치가 사라진 어둠 속을 노려봤다. 그 사이 말코비치는 어둠과 완전히 동화되어 내 시야를 벗어나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일단 집으로 가요. 추워요.”
  그녀는 카디건 위로 팔을 문지르며 어깨를 움츠렸다. 춥지도 않고 안개도 없는 밤이었으나 심리적으로 동요된 탓인지 떨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팔짱을 빌려 주었고 그녀는 집에 갈 때까지 내게 기대 온기를 보충했다. 15분도 채 걸리지 않은 거리를 가는 동안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어쩌다 증거물로 가져온 말코비치의 권총은 오히려 불편과 불안을 더할 뿐이었다.

  작은 아파트 4층, 그녀의 방에 들어가자 긴장이 풀리며 급격히 피로가 밀려왔다. 우리는 들어온 모양 그대로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에 이르자 비로소 내 어깨에 기댄 그녀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어딘지 그리운 그 냄새는 내게 위안을 주는 동시에 마음 한구석을 찌르르 울렸다. 하마터면 그녀를 잃을 뻔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험을 이미 해 봤기 때문일까. 어쩐지 언젠가 그녀를 잃었던 것 같은 착각에 가슴이 저며 왔다. 그녀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말코비치의 미친 소리를 떠올렸다. 놈의 말은 내게 전혀 이해 불가의 것이 아니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나는 놈의 말이 뜻하는 바를 문자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그것은 비록 안갯속에 감춰져 있더라도 분명히 도사리고 있는 실체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놈에게서 앞으로 내게 닥칠지 모를 일을 보았기 때문일까.

  띠띠- 띠띠-
  눈치 없는 손목시계의 알람이 울리는 바람에 나는 허둥지둥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그녀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그녀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주머니를 뒤져 약을 꺼냈다. 무색무취의 약은 물기 마른 목구멍을 힘겹게 통과하다가 중간쯤에서 걸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닥터 해든. 그녀 말대로 말코비치가 부작용 때문에 미친 거라면 녀석은 미리 알지 않았을까? 그걸 알면서도 내게 약을 투여한 걸까? 나는 그런 의문을 뒤로하고 그녀의 살내에 취해 잠이 들었다. 꿈에서 어렴풋이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눈부신 석양을 뒤로 한 채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그녀가 입을 연다.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총으로 쐈다. 실패와 좌절감에 가슴이 먹먹했다.







-계속















개인 사정으로 일일이 답글 못 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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