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의 광기. 공부는 왜 추앙받게 되었는가.

By @yoonsg2/25/2018kr

발전의 광기. 공부는 왜 추앙받게 되었는가.

#1

 나의 가장 뚜렷한 재능은 공부였다. 운좋게 머리를 잘 타고나 공부가 재밌었고 공부가 어렵지 않았다. 전국 1등도 해보았으며 200등 이하로 내려간 적은 없었다. 며칠 전, 대학원에 입학하는 동기를 만났다. 그 날의 술안주는 대패삼겹살이었다. 가게 한 편에는 삼겹살을 써는 기계가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문득, 그 광경이 낯설어 보였다. 기술의 도입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행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일 것이다. 그에 이르는 수단이 돈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결국은 행복을 추구한다.


#2

 현대는 인간사를 통틀어 공부가 가장 추앙받는 시대다. 조선 시대 또한 사농공상 중 사(士)를 가장 윗줄로 쳤으나 모든 계층이 공부에 매진하지는 않았다. 반면, 지금은 모두가 공부에 매진한다. 다른 선택을 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돌아오는 건 공부가 제일 쉽다는 대답이다. 당연한듯이, 많은 사람들이 공부가 제일 쉽다는 명제를 받아들인다. 아마 가장 노력 대비 효율이 크다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경제적인 성공을 떠나서, 학식이 커지고 교양이 많아지는 것은 일반적 인간 관계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3

 #1과 #2를 같이 생각해보자. 기술의 도입이 인간을 점점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불분명하나 기술 발전을 위한 공부는 추앙받는다. 그렇다. 발전의 광기다. 중세의 도공은 자신이 벌어들인 수입을 공방의 크기를 키우거나 도제를 더 들이는 데에 쓰지 않았다. 대부분의 수요는 영주성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수요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재투자가 반드시 수입의 증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사업가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재투자한다. 은행은 10을 가지고 있다면 100을 대출해준다. 암호화폐 투자자들 또한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이익을 재투자한다. 그것은 시장이 더 커질 것이란 믿음이다. 세계 경제는 그 마음에 부응하여 계속 성장하고 있다. 성장이 미약해질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여 성장을 가속시켜주고 이 성장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게 봐서 암호화폐 시장과 상당히 유사하다. 시장이 커질 거란 무언가 막연한 믿음이 만연하고 시장은 그에 부응해왔다. 재투자 예찬이라는 이 너나할 것 없는 신 종교의 교리인 공부가 신성시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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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2월의 키워드는 ‘비트코인 광풍’이었다. 후대에 20세기, 21세기를 키워드 하나로 정리한다면 ‘기술 발전의 광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의 행복을 늘려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처음 샀을 때 그 수많은 기능에 정말 놀랐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걸 가지고 논다고 잠을 안 잤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폰에 매여 있는 내가 고통스럽다. 스마트폰은 잠시간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지만 그에 무뎌지고 나서는 오히려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신기술이 등장하면 그 때 뿐이다. 그 때 뿐만에도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에 그 때마저도 즐겁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직업을 선택할 때에 세 가지 정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재능이 있는가? 좋아하는가? 보람이 있는가? 그러나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요즘 들어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내 꿈을 스팀잇에서 밝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궁극적 꿈은 굉장히 명료하고 확실하다. 저 답이 희미해진다고 하더라도 공부를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궁극적 꿈까지 도달하기 위한 일련의 단계들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을 환상을 파는 것일 것이다. 발전의 광기에 사로잡혀 공부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처량해도 보인다. 후술하겠지만 나 또한 처량하다.


#4

 세계의 흐름에 거역할 수 있는 인간은 영웅이다. 당연히도 대부분은 영웅이 아니다. 처량한 나와 같은 사람들은 흐름에 따르는 것이 가장 편하다. 물론 모두가 영웅의 길을 걸을 수는 있다. 많은 영웅 지망생들이 허리가 꺾여 물살에 쓸려가겠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은 내 꿈은 세계의 흐름 속에 있다. 흐름을 따라도 꿈을 좇을 수 있다. 날 덜 처량하게 하는 것이 꿈이다. 꿈이라는 돌을 찾아 그 곳에 올라서게 되면 흐름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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