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숙이 는 별이 되었습니다.

By @yellocat5/11/2018kr

지숙이가 마트 휴게실에서 생활을 시작하고 우리는 지숙이와같이
마트 휴게실에서 살았습니다.
한시간도 지숙이와 떨어져 있을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지숙이는 주사기로 밥을 먹을때 마다 무엇을 먹이는지 눈을 가만히
뜨고 맛을 음미 했습니다.
집에는 하루에 한번씩 아빠가 들어가서 아이들청소 를해주고
밥을 주었습니다.

오빠는 오래 입은 겨울잠바가 낡았지만 따뜻해서 그냥버리기 아깝다고
지숙이 집에 깔아 주다가 버리라고 가지고 왔습니다.
아들은 학교 에서 제공하는 멘션에서 살았기 때문에 집에는 한달에
한번 아니면 두달에 한번씩 왔습니다.
지숙이는 오빠가 올때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오빠
옆에 앉아 있을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오빠 가 군대에 가려고 날짜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오빠 잠바를 선듯 지숙이 에게 깔아 줄수가 없었습니다.
지숙이를 사랑하지만 그것은 또 그랬습니다.
물론 지숙이에게 깔아 주었어도 10 분이 안되어서 침범벅이 되어서 버려야
했을것입니다.
잠바를 옆에 놓았는데 지숙이는 오빠 잠바 소매를 살짝 깔고 앉아 있었습니다.
부모형제 모두 아들의 군대가 늦었다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잘 해낼것이라고 믿었고 아들은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자식이 하나이다보니 어려서 부터 고기를 잡아주는것보다 스스로 고기를
잡을수 있도록 도와 주었고 아들도 우리의 뜻을 이해하고 따랐습니다.
아들이 군대에 들어가야 하는 날이 가까워졌습니다.
집에서 우리가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은 군에 들어가기 이틀전에
마트로 와서 지숙이와 같이 하룻밤을 자고 공군에 입대하기 위해 진주에서
하루밤을 자고 군대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마트 휴게실 공간이 작아서 아들은 우리 머리 위에서 불편한 하룻밤을지내고
진주로 출발 했습니다.

다음날 지숙이는 자기자리를 벗어나 오빠가 잠자던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지숙이는 오빠가 멀리간다는것을 알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나는 오빠가 잠자던 자리에 지숙이 이불을 깔아 주었습니다.
지숙이는 행복한 표정을 하고 하루종일 그 자리에 누워있었습니다.
지숙이의 몸은 점점 나빠졌고 얼마남지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밥을 먹일때마다 한참씩 지숙이를 안아주었습니다.
떠나고 나면 다시는 안아주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안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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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은 느낌이 안 좋았습니다. 어차피 버릴 잠바인데 이러다가 지숙이를
깔아주지도 못하고 떠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스를 접어서 그 안에 오빠 잠바를 깔아놓고 지숙이를 들어서 박스 안에 넣어
주었습니다.
지숙이는 한참동안 잠바위에 서 있더니 조용히 박스 밖으로 나왔습니다.
지숙이는 엄마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숙이는 3일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이렇게 울지 너무 아파서 우는것일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오도 떠날때 우리를 보고 울었고 ...
나중에 알았는데 고양이는 죽을때 눈물을 흘렸습니다.
돌쇠도 눈물을 흘려서 떠날것을 예감 했었습니다.

그날 아침 죽을 것 같은 예감에 지숙이를 안았습니다.
한참동안 안고 있는데 지숙이는 몸부림을 두번치더니 우리를
남겨놓고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나는 한참동안 지숙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래침을 흘러내리던 작은 입은 침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숙이의 다리를 쭉 펴서 이불위에 눕혀습니다
혹시 다리가 구부러져 다음세상에서 걸어다니지 못할까봐
네다리를 신경써서 펴주었습니다.
지숙이는 오빠가 군대에 가고 일주일 후에 떠났습니다.
지숙이는 주사기로 밥을먹기 시작하고 2년을더 살다 갔습니다
2006년 늦은 가을 우리에게와서 2015년 6월어느날 아침에 떠났습니다.

우리는 지숙이를 멀리 보내지 못할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마트 건너편 양지바른곳을 저녁에 지숙이가 들어갈 곳을 팠습니다.
사실 그곳은 사람이 많아서 쉽지 않은곳인데 아빠는 그곳을 지숙이 자리로
정했다고 했습니다.지숙이를 위한 아빠의 용기가 놀라웠습니다.
아빠는 지숙이를 좋은 한지에 곱게 샀습니다.
이빨이 없어서 못 먹을까봐 캔도 뚜껑을 열었습니다.
저녁에 아빠는 지숙이를 그 곳에 묻어 주었습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지숙이가 떠나고 나는 밥을 먹을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3개월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식사때마다 계란 한개와
오이 한개를 먹었습니다 지숙이가 밥을 못먹고 떠났기 때문에 먹을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매일 저녁이면 지숙이가 있는곳에 갔습니다.
지숙이 무덤 위를 만지면서 물었습니다 잘 있는거지? 좋은곳으로 가야해!!
이곳에서의 인연은 다 잊고 좋은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아..

오빠는 부대에서 편지를 보냈습니다.지숙이도 잘있느냐고 지숙이가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오빠 에게는 지숙이 죽음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무척 슬퍼할것을 알기 때문에 알릴수가 없었습니다.
오빠는 훈련을 마치고 군에서 시험을 잘 보아서 서울근교 공군부대
행정계로 배치받았습니다. 우리 생각대로 아들은 부대 생활을 잘했습니다.
훈련소에서 부대로 직접 갔기 때문에 아들은 3개월뒤에
휴가를 나왔습니다. 아들이 오고 나도 밥을 먹었습니다.

아들은 지숙이에 죽음을 무척 슬퍼했고 함께 지숙이가 있는곳에
갔습니다. 아들은 지숙이 묻힌곳을 손으로 쓰다듬었습니다.
무슨말을 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지숙이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복이 많았습니다.
지숙이가 지내는 곳은 낮에는 아이들과 사람들이 매일 와서놀고
큰나무 아래에 있기 때문에 비가와도 직접맞지않고 눈이와도 나무가지에 쌓여
지숙이 위에 직접 쌓이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햇빛이 비추고 밤이면 가로등이 켜지기 때문에 어둠지 않습니다.
지숙이는 좋은곳으로 갔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이땅에 나와서 이룬것이 너무 많습니다.
지숙이를 안만났다면 나는 아직도 동물들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을것이고..
지숙이로 인해 밥먹고 살다간 아이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내가 10년을 넘게 아이들에게 밥을 준것은 지숙이가 아니였으면
불가능 했을것입니다. 아이들 밥은 내가 주는것이 아니고 지숙이가
주는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숙이는 떠났지만 우리 가족은 지숙이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지숙이와의 모든 대화는 노래였지만 지금은 노래를 부르지않습니다.
지숙이는 별이 되어 잘 지내고 있을것입니다.

어느별보다 반짝이는 내사랑 꿍꽝 !!

지숙이를 이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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