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기

By @washi3/8/2018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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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선택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큰 스트레스가 된다. 회사에 원서를 지원할 때도 그렇고 아파트 추첨을 받을 때도 그럴 것이다.
그것은 하늘에게 선택받는지 임원에게 선택받느냐는 차이야 있지만 나의 운이나 가치를 시험받는다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될 리가 없다'던가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시도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진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 긍정적인 것은 그 자체로는 어떠한 힘도 없다. 가끔은 그것이 현실을 가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허락된 것 보다 더 높은 곳에 감히 도전하게 한다면 나는 기꺼이 긍정주의자가 될 것이다. 일례로 미국에서 조사하기를 완벽주의자가 긍정주의자 보다 대학에서의 성적이 우수했음에도 긍정주의자가 자신의 실력에 비해 좋은 자리에 취업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이유인 즉슨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이 원서를 넣기에 적절한 자질과 스펙을 가지지 않았다면 아예 회사에 원서를 넣지 않지만 긍정주의자들은 자신이 공고에 70%의 스펙을 가지고 있더라도 기꺼이 원서를 넣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미국의 결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나는 긍정주의자는 아니다. 천성적으로 우울과 불안을 달고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저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감히 시도할 수 없는' 것에 기꺼이 손을 뻗고 깨지기로 했다. 실제로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만 '에이, 이건 안된다.' 싶어도 서류는 작성해 보고 관련자한테 비비적 대보기도 한다. 그러기까지는 굉장한 스트레스가 동반되지만 나는 도전 자체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설령 답이 없더라도 괜찮다라고 혼자 위로도 해본다.

'저 사람이 날 뽑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내가 보낸 걸 보고 비웃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멤돌더라도 감히 거기에 '그래서 뭐! 내 알 바야?'라고 괜히 큰소리를 치며 용기를 낸다. 신기하게도 시도하고 나면 고민을 하고 있을 때보다는 편안한 마음이 된다. 시도하면 그것은 이제 내 고민이 아닌 상대방의 고민이 되는 것이니까. 게다가 결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어차피 안될 거 알고 보낸 거니까 상처도 쉽게 아문다.

그럼에도 가끔 달콤한 코코아를 마시다가도 쓰게 느껴지는 아픔이 될 것이고, 자다가 쪽팔려서 이불을 차는 후회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정말로. 부딪혀 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후회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냈고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았다.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한 걸음 더 옮긴 것이다. 그렇다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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