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세이] 독립책방을 다녀와서

By @wakeprince9/1/2018kr

   오늘은 점심을 먹고 소화겸 동네를 휘적휘적 걸어다녔다. 불볕 더위도 이제는 가시고 걷기 참 좋은 날씨였다. 골목골목을 지나며 평소에 놓친 모습은 없는지 관찰했다.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맞는 떡볶이집,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아담한 카페, 새로 단장한 국수 가게 등 소소한 골목의 모습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유독 작은 가게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게의 통유리 너머로 오밀조밀하게 진열된 책들이 내 무의식을 사로잡은 모양이었다. 가까히 다가가 보니 독립책방이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걷기도 귀찮아 지려던 차에 들러보기로 했다.

   책방은 주인장의 취향에 따라 선정된 독립출판 서적을 팔고 있었다. 한 가지 주제로 모아질 수 있는 수필, 시, 단편집들이었다. 사실 서점을 한 바퀴 둘러보니 그동안 내가 관심을 갖는 종류의 책들은 아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관심이야 새로 가지면 되는 것을. 그렇게 이 책에서 저 책으로 끌리는 책을 찾아 눈을 돌려 보던 중, 책방 주인이 직접 쓴 책으로 보이는 책을 하나 발견했다. 책방을 운영하며 겪은 일들과 감상을 엮어낸 책이었다. 안 그래도 장소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는데, 슬쩍 견본을 집어들어 자리에 앉았다.

   글쓴이의 솔직하면서 쉬운 언어로 쓰인 책은 술술 읽혔다. 독립책방 탄생의 기원, 책방을 운영하며 만났던 진상 손놈, 가게에서 키우게 된 고양이, 각종 행사 이야기 등 어느새 나는 앉은 자리에서 책을 모두 읽어 버렸다.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해당 공간에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책방의 벽을 직접 페인트칠했다는 대목에서 책방의 벽을 살피어 두리번 거리게 되었고, 글쓴이가 10센치의 팬이라는 대목에서 가게의 배경을 채우는 노래가 10센치의 노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손을 살짝 깨물은 고양이도 책에서 막 튀어나온 듯했다. 작가의 북토크에 모인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았던 자리들도 보였다.

   흥미가 돋은 나는 다시 책방의 책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나는 문득 ‘아마추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아마추어는 엉성하고 부족함이라기보다 자유로움을 뜻하는 단어였다. 엉성하게 프로 작가의 흉내를 내보려는 아마추어리즘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가 들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하는 아마추어리즘이었다. 약간은 어설프더라도 그 어설픔마저 생동감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자유로움이었다. 상업출반에서 수익성에 얽매여 나올 수 없었던 목소리들이 있었다. 비유하자면, 언제나 신작 영화가 재미있다고만 말하는 일요일 아침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신의 솔직한 비평을 담은 유튜브 채널을 본 느낌이랄까.

   또 가만보니 이 공간은 단순히 책만을 파는 공간이 아니었다. 작가와의 만남이 주선되고,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만담이 오가는 공간, 체험을 공유하는 체험을 즐기기 위해 모일 공간으로서 책방이 보였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떠들고자 하는 욕구가 반드시 존재하는데, 책방이 이 욕구를 채워줄 중재자로서 자처하는 것이었다. 이는 앞서 책들에서 발견한 자유로움를 소비하는 독자들의 새로운 방식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상업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여도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 글에 지속성이 있을 수는 없을 테니, 작가를 지원할 새로운 방법으로 나쁘지 않아 보였다. 혹시 앞으로 온라인 매체와 결합하면 이같은 소비의 방식이 더욱 강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까지 책방을 감상하고 언뜻 밖을 보니, 밖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선 길이었는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얼른 현실의 감각으로 돌아온 나는 양심상 다 읽어 버린 그 책을 구매하고 서둘러 책방을 나섰다.

   오늘 다녀온 독립책방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제 글의 시대는 저물고 영상의 시대가 왔다고 하는 마당에 독립책방은 글을 매개체로 사용하고 있다. 유튜브를 선봉으로 영상 콘텐츠가 대세가 되었고, 페이스북도 영상 콘텐츠를 장려하고 쏟아내고 있는 현실이다. 독립책방의 존재는 현재의 추세를 역행하는, 글의 마지막 항쟁에 불과할까. 아니면 사람들이 글을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어, 글의 생명력을 이어갈 새로운 문화의 마중물이 될까. 개인적으로는 글을 좋아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후자의 경우가 되길 희망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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