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봄비가 내렸다, 그리고

By @thinky4/27/2018kr

**사무실에도 내 마음에도 우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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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퍼 엘레아슨, 무지개 집합, 2016, 리움미술관



원래부터 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해 피곤하다, 봄은.

설레는 맘으로 벚꽃 구경이라도 갈라치면 비가 오신다. 따뜻한 날씨라 생각해서 한껏 봄 기분을 내고 외출하면 메케한 황사 바람이 몰아친다. 일 년에 한두 번 걸리는 감기는 늘 변덕스러운 봄 날씨 덕분이었다. 신비롭지만 불친절한 계절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봄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춘 것이었다. 봄이 미운 것이지 봄을 좋아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니까.

학창 시절부터 3월 초에 시작하는 학기도 그렇고 봄은 모든 걸 시작하는 계절이라고는 하는데 (내 기준으로는) 너무 추워 도통 봄이란 생각이 들지 않다가 이제 봄인가? 하면 바로 여름이 찾아온다. 어쩌자고 날씨하고 까지 밀당을 해야하나하며 짜증이 밀려온다. 어쩌면 나도, 봄을 타는 것일지 모르겠다.

일기를 쓰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일상 글을 쓰면 코믹하거나 심각하게 변질되는 나의 글쓰기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것이 불편하여 스팀잇에 일상 글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 (나의 일방적인 글쓰기 멘토) 김작가님이 지난주에 올리신 공모전 글을 보면서 잘 준비했다가 1차로 신청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후원자 명단에 올라 있는데다 대체 무슨 내용의 일기를 쓴단 말인가, 게다가 2000자 이내라니... 글을 길게 쓰는 병이 있는 나로서는 시작하다 멈춰야 되겠군, 이렇게 한탄하고 말았었다.

그래도 막상 오늘 새벽 공지를 대하니 뭔가 쓰고 싶었고 너무 피곤해서인지 잠도 오지 않아, 최근 힘들었던 일을 쓰자며 위의 문구로 시작한 봄날의 “짜증 일기”는 새벽 4시가 다 되어 대충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구구절절 쓴 글을 검토해 보니 역시 글자 제한을 맞추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어딘가를 잘라내면 읽는 분은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아니, 내가 길이를 줄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시리즈 일기도 된다는 공지는 없었잖아?)

와중에 새벽 4시에 카톡이 울렸다. 심각한 일이다. 나름 애써 작성한 “짜증일기”의 내용은 바뀌어야 했고, 글쓰기 버튼을 아직 누르지 못한 사정이 다행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읽어 보니 그렇게까지 쓸 이유도 없었는데, 어제는 짜증이란 감정에 갇혀 비밀 일기장 구석에나 끄적일 감정의 배설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평소에 글을 쓰며 불필요한 설명을 많이 덧붙인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병을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스팀잇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조금 더 쉬려고 했던 나의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3월 말에 나는 일을 벌이고 말았다. 요망한 봄기운에 홀려 시작한 거라고 원망하고 싶었다. 사무실로 사용할 장소를 하나 계약했고, 한창 내부 공사 중에 장맛비 같은 봄비가 내렸고, 3일 내내 사방에서 물이 샌다. 천정은 비가 내리는 수준이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임대인이 수리를 해 줘야 하는데, 임대인 측에서는 우리가 철거를 하면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입장이 너무나 확고하다. 이전까지는 물이 한 두 방울 떨어지는 곳이 있었고 그것은 고쳐주려 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 때문이 아니라고 확신하지만 워낙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이것을 판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뿐더러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결국 법정 까지 갈 생각이 아니라면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어젯밤까지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고 내 탓만 하며 짜증을 유발시켰던 임대인은, 드디어 주사위를 던졌다. 적지 않은 특수방수 비용의 2/3를 부담 할 테니 나머지를 우리가 부담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으면 한다고 한다. 이것이 새벽 4시에 받은 카톡의 내용이다.

임대인 분도 아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내용은 진솔하고 합리적이었다. 나는 거절하고 버티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선택을 해야겠지. 이렇게 된 이상 어여쁜 봄을 탓하는 짓은 그만두고 방수는 하늘(?)에 맡긴 채 서둘러 마무리하고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해 본다.

몇 백 만원 손해 본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기야 하겠냐며 평소와 달리 배포 큰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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