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Post 버튼을 누르지 못해 사장된 글이 꽤 많다. 주로 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몇 시간에 걸쳐 써놓고도 도저히 올릴 수가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중에 지울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고작 개인사를 늘어 놓으며 읽는 이들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주저하다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오장육부까지 다 드러내놓지 않으면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건 독자들이 결정할 문제’ 라고 이야기해준 것을 기억하고는 이 글을 올린다.
한국에 오기 두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이 곳에서는 내가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또(!)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 생각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고 쳐도, 쏟아지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보면 내 스스로 불안해지고 외로워지는 것이 두려웠다. 내 자신을 조금 덜 사랑하게 되어버릴까봐서.
타지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것 중에 좋은 점은 나와 다른 이들로부터 나의 다름을 존중받는다는 것이다. 나의 다른 생김새, 다른 언어, 다른 생활방식을 그들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거나, 신기해 하는 눈에도 호기심 외에 다른 뜻은 섞여 있지 않다. 나는 ‘외국인’이니까. 내 모든 것을 인종과 문화의 차이로 받아들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차이로 인한 차별도 종종 존재하며 그들 사이에 스며들지 못하고 물과 기름같은 관계가 되기도 일쑤다. 하지만 ‘내가 다른 것이 당연한’ 곳에 있는 것이 편했다. 더욱 나답게 살 수 있기에.
쓰고 하루가 지나서 보니, 그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내 스스로 먼저 ‘나는 외국인이니까 다른 것이 당연하지’ 하고 더 당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내게 기대하는 여러가지 역할이 그 곳에는 없다는 해방감과 함께.

아무튼 그래서 스팀잇 kr 커뮤니티에도 발을 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다른 한국인이랑 다르니까 배척당할 거라고.. 나야말로 미리 재단했다. 물론 내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내가 아는 한, 스팀잇은 배척은 커녕 오히려 누구에게나 두 팔 벌려 환영을 하는 곳이며 무엇보다.. 나는 이상한 축에도 못낀다. 아니, 왠지 끼고 싶다? 이건 내가 주로 왕래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라 그렇기도 할 것이지만. (그래서 내가 좋아한다.)
애정하는 누군가 그랬다. ‘스팀잇은 한국어를 쓰는 외국같다’ 라고. 나는 그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물론 같은 말로 엮여 똘똘 뭉치는 것이 한국스러울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남들과 달라도, 어떻게 생겨 먹어도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획일화와 소속감으로 개성을 가두려는 한국사회와 대조적이다. 정작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도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에 손가락 끝을 모으는데 말이다. 자기들도 다 다르면서.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다른 사람’ 이나 ‘타인’ 으로 부르지 않던가. 남들과 같아야, 남들도 나와 같아야 안심하는 사람들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얼마나 애타게 사랑했는지 모른다. 괜찮다고 수없이 위로하며, 나를 향한 손가락들을 향해 나 홀로 외로운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재작년에 잠시 한국에 있었을 때, 내 자신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너는 왜 평범하게 살지를 못하니?
, 네가 엄마 곁에 있어야지.
, 이제 그만 좀 해라.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말했다. 그들에겐 그냥 하는 한 마디였지만, 나는 들을 때마다 조금씩 균열이 가고 무너졌다. 그런데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그 ‘평범’ 하지 못한,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그들이 내게 불행을 준 적은 한사코 없다. 그들이 불행을 겪었을 뿐, 그리고 나는 평범하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 결국 나는 도망쳤다. 내가 쉴 수 있는 사람이 기다리는 곳으로.
그런데 꿈에서 깬 것처럼 다시 한국이다. 헤어짐이 싫고 만남이 두려워 오기 전에는 많이 심란했다. 심지어 나는 한국에만 오면 병이 났다. 그런데 이번 명절 친척들을 만났을 때, 뭔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누가 달라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단단히 무장한 것에 비해 그들의 공격력은 부쩍 약해져 있었다. 이것은 흡사 대학교때 밤 10시 이전에 집에 들어오라
던 통금이 집에는 들어오라
로 바뀌었던 것과 같았다.
그들 기대와 다른 나에게 실망을 하거나, 체념을 한 탓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너란 사람이 이렇고, 내가 너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너의 인생이니 너가 행복한대로 사는 것이 맞다. 다만 너의 인생이 너만의 것은 아님은 명심하라.
라시던 막내 이모부의 진중하고 애정어린 말씀을 제외하고는 어떤 이야기도 기분 좋게 흘려 들을 정도의 내공도 내게 생겼다. 오늘은 교회에 갔더니 누군지도 모르는 분이 나한테 그러신다. 이제는 한국에서 엄마 모시고 살아야지?
이것으로 나는 확신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냥 하는 말에 귀 기울일 필요 없다고.
근황을 쓰려다가 이렇게 되었다. 이 또한 이틀째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없어 노트북으로만 스팀잇을 하는데 노트북을 열기는 커녕 앉아 있을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글쓰기를 방해하는 복병이 있었다. 집이 너무 시끄러워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결정적인 건, 나의 아버지는 어릴 적에 후천적으로 청력을 거의 잃으셨고 나의 어머니가 10년 전 사고로 잃으신 것 중 하나가 당신의 자칭 꾀꼬리같았던 목소리라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내가 한국에 온 이상, 이 이상한 우리집 이야기가 새어 나오지 않을 리 없다. 여러모로 앞으로의 난항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