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만에 쓰는 글

By @springfield8/17/2018kr-diary

1
바빴다고 말하고 싶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스팀잇을 시작했다는 걸 제외하면 아무 공통분모 없이 알게된 사람들 속에서, 내겐 너무나 낯선 타입을 접할 때마다 적잖이 놀랐나 보다. 결국 이곳에서의 인연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정도인가 허탈한 적도 있었고, 누구에게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사건 앞에 무력한 가운데,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추측과 참견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누군가 본인의 계획을 위해 던진 주사위에 맞은 적도 있었구나. 어처구니없게도 스트레스성 위염과 장염에 걸렸다. 스팀잇에 빠져 밥과 잠을 거른 적은 있어도 감정이 상하고 몸이 아픈 적은 없었기에 무섭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더이상 이곳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2
겸사겸사 팔자에도 없던 공부를 시작했다. 언젠가 쓸모가 있지 않을까 싶어 국가 자격증 시험 하나를 응시해 놓았는데, 교재비가 아까워 가끔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읽고 오는 정도이다. 돈 한푼이 아쉬운 상황에 알바는 안하고 공부를 하겠다니, 이것도 일종의 선비질이 아닐런지. 하고 싶은 일이 생겨 잠시 설레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마땅히 다른 할 일이 없어’ 이러고 있는 것도 같다. 한국에 와서 목적도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는 날 보며 넌 도대체 뭐하는 거냐? 궁금해하시는 부모님께 요즘은 공부한다 둘러대고 있다. 시험까지 딱 3주 남았는데, 한국사를 뺀 나머지 과목은 영 재미가 없어 계속 미루게 되니, 이러다 떨어지면 또 어떻게 둘러댈지.

3
이제와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참 좋았던 시간은 그리워질까 미련없이 보내주었고, 힘들었던 시간은 하소연이나 다짐이라도 하듯 붙잡아두었다는 사실이다. 그간 언제, 어떤 글을 써왔는지만 보아도 그렇다. 그 바람에 즐거웠던 추억은 아득한 꿈만 같고 아팠던 시간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며칠 전 한국사 강사 한분이 TV에 나와 독립운동가를 언급하며 기억해야 역사가 된다 는 말씀을 하시는데 나 스스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는지, 왜곡해왔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4
그런 중에 내가 외국인과 결혼을 하겠다고 부모님께 통보를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는 가운데 이모들이 갑자기 서울에서 좀 보자고 하시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지. 일단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고, 사실인들 그분들 결재를 받을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오라가라하시는 게 당황스럽기도 했다. 왜 외국인을 만나니? 하시는데 할 말이 없었다. 외국인이라서 만난 게 아니니까. 그러면서 30년 전, 주한미군에게 시집간 ‘발랑 까진’ 친구라든지 ‘너무 외로워서’ 외국인과 결혼한 이민 1세대를 언급하시는데 많이 언짢았다.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말씀드려도 그 정도로 되겠느냐며 언어장벽이 없는지 계속 추궁하시는데 지금 이 대화보다 훨씬 잘 통해요.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세대와 경험의 차이라는 건 알지만, 이 모든 걱정과 참견이 과연 그분들의 몫인지. 이럴 때마다 애정과 관심만 골라 받으려 애는 쓰지만, 모르는 새 마음에는 불안과 의심의 씨앗이 떨어지곤 하기에.

5
이러쿵저러쿵해도 잘 지내고 있다. 통장잔고가 바닥나고 있는 것만 제외하면. 외출은 곧 지출이오, 서울 한 번 갔다오면 체력뿐 아니라 교통비만 대략 7000원이 든다. 이런 걸 따지고 있는 것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얻어 먹는 것도 미안한데, 만나길 거절하는 것도 미안하다. 이것도 결국은 욕심과 교만에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상황이나 능력이 안되면서 모든 사람이 만족하길 바라는 욕심,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으리란 교만... 그러니 괴로울 수 밖에. 가족에 드는 죄책감도, 한국인 정서에 갖는 두려움도... 결국은 나와 당신, 뭐 하나 놓고 싶지 않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더라. 언젠가는 모두를 아우를 능력이 생긴다해도, 당장은 내 코가 석자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신세지는 수 밖에. 지금 내 깜냥이 그 정도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이도저도’ 중에 한 가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곳에도 오랜만에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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