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늘이 예술이다. 기미(己未)월 계해(癸亥)일, 이미 땅은 가을의 기운을 머금기 시작했고 하늘에 뜬 구름 속에도 찬 기운이 몽글몽글. 출근길 그림 같은 가을 하늘이다. 기운은 이미 뜨거운 태양을 넘어가고 있다. 온도계의 숫자로는 믿기 힘들겠지만 곧 차가운 겨울이 오겠지.
理氣 | 理承氣行豈有常 進兮退兮宜抑陽
이(理)는 기(氣)를 이어 움직이니 어찌 일정함이 있겠는가. 나아가고 물러남에 마땅히 억제할 것은 억제하고, 일으킬 것은 일으켜야 한다. (적천수)
몇 달 전 장기 해외 여행중이던 지인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여행가기 전에 남은 전 재산을 비트코인에 투자해두고 떠났는데 10배가 넘게 올라 현금으로 정리했다고. "넌 비트코인 사둔거 없니?" 실은 비트코인이 몇십만원 하던 때부터 여러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았더랬다. 나는 의심이 많다. 고로 후회한다.
주요 매체들이 암호화폐 광풍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구체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지금이라도 사야하지 않을까? 이러다 나만 원시 화폐의 후예로 길이 남아 먼지처럼 사라지는 건 아닐까? 어딜 가건, 누구를 만나건 온통 암호화폐의 이치(理)가 가득함을 느끼고야 집요한 탐색의 기운(氣)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코인은 잠깐 쉬고 천연가스 투자를 해보자
마침 우연히 북마크해두었던 블로그에서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글을 마주한다. 스팀잇? 그 블로거는 스팀잇 유저였다. 그리하여 나는 스팀잇에 가입을 하고 2주를 기다려 계정을 발급 받았으나 글이 올라가지 않는 알 수 없는 오류에 빠졌고 스팀잇에 대한 미련을 접고 천연가스 투자에 매진(?)한다. 팔랑.팔랑.
그리고 몇 달 뒤 함께 중국어 공부하는 통쉐 @bbooaae 덕분에 다시 스팀잇에 들어왔다. 처음 그녀를 스팀잇 세상으로 이끈건 나였으나 나를 다시 이곳에 머물게 한 것은 그녀였다. 똑부러지는 금 일간답게 그녀는 뭘 해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그녀는 언젠가 고래가 될거다.
'입금되지 않는 글은 쓰지 않는다'는 오랜 원칙을 깨고, 의식의 흐름대로 끄적이기 시작했다. 일단 뭐라도 매일 하나씩 써보자가 목표였는데 쉽지 않다. 스팀잇이 저자의 글에 보상하는 체계라고 하나 이는 원고 의뢰를 받고, 글에 대한 가치를 미리 산정(협상)한 뒤 글을 쓰는 기존의 방식과 많이 다르다. 스팀잇의 홀홀단신 플랑크톤에게는 ROI 라는 합리적 자비가 베풀어지지 않는다. 생면부지의 생태계에서 고래의 보팅을 받는 일은 '로또'라고 일컬어지더라. 이것이 정의인가를 논할 수는 없다. 이 세계의 이치(理)이고 이곳의 객체 스티미언들은 다양한 존재감(氣)을 느낄 뿐이다.
‘불특정 소수를 위한 영감소' (by 아이디얼리스트) 채널을 시작합니다.
몇십년째 매일 변덕스런 날들처럼, 스팀잇을 대하는 자세도 매일 변한다.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집요한 의지가 불타오르던 몇일이 지나고, 오늘 아침에 접한 글 하나로 내가 굳이 이곳에서도 빡빡한 리얼리스트로 생존해야 할 이유가 있나 싶다. 물론 내일 또 누구를 어떤 글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 의식의 흐름은 계속해서 변할테지만...
매일 새로운 우주의 이치(理)가 새로운 기운(氣)을 이끈다.
그 기운이 우주를 변화시킨다.
돌고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