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쯤, 만 30개월 된 딸아이와 함께 한글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딸에게 "토끼에다가 동그라미 해봐~"라고 하였다.
딸은 엉뚱한 곳에 낙서만 하고 있다.
"토끼에다가 해야지~ 토끼에다~"
내가 말 할 때마다 계속 다른 곳에 낙서를 한다.
일단 "그래, 그래 잘했어~"라며 영혼 없는 칭찬을 하였다.
그런데 다시보니 분홍색 배경 속에 하얀 토끼가 그려져 있었다.
어린 딸은 나의 주문대로 토끼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 충격을 받은 나.
신랑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신랑은 "마구 동그라미를 그려놨네~" 한다.
신랑도 역시 배경에 있는 토끼를 보지 못했다.
나는 말했다. "다시 잘 봐봐~ 토끼에다 동그라미 한거 맞아~"
신랑은 한참을 보더니 다시 말한다.
- "그림이 아니라 글씨에다 동그라미 했네~"*
신랑은 말을 해줘도 토끼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번엔 조금 더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분홍색 배경 속에 흰색 토끼가 있잖아~ 다시 봐봐~"
신랑이 잠시 후에 말한다.
"온통 토끼였네~"
이 일을 통해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내가 보는 것도 토끼였고, 딸이 보던 것도 토끼였다.신랑이 보았던 글씨도 토끼였다. 우리는 모두 맞았다.
(실제로 토끼를 본적이 없었떤 30개월 딸에게는, 아마 그림 속 토끼가 더 익숙했던 것 같다.)
나의 프레임에 사로잡혀 눈앞의 다른 토끼를 보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다르다는 것은 이해의 대상이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또 하나는,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랑은 나의 첫번째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나의 설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일히 하나하나 설명을 해 준 두번째 설명에서야 이해했다.
설명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당연히 알거라 생각하고 던지는 우리의 대화 속에,
나의 마음을 상대방이 100% 이해하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마지막으로,
논란의 토끼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