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인의 추종자와 함께] 투명성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By @slugnoid6/28/2017kr

어쩌다 보니(?) 팔로워 200명을 맞이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성원 덕분입니다.

좋지도 않은 글감에 많은 관심 보여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투표는 모두 맥주로 화(化)해서, 제 뱃속에 수장될 것입ㄴ..... 응?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뉴비인고로, 200인의 추종자(...)를 맞이한 기념으로 무엇을 쓸까 하다가 조금 색다를 수도, 조금 골치아플 수도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보고자 합니다.

바로 '투명성'(transparency)'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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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투명성은 금과옥조, 황금률과도 같이 여겨집니다. 특히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겪어온 우리에게 있어 이 투명성, 개방성은 수호, 준수되어야 할 최선의 가치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경향이 제법 짙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특히 정부로 대표되는 공적 기구(institution)의 차원에서 투명성/개방성은 강력히 요청되고 있으며, 국제투명성기구 (TI,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매년 공공부문 및 정치부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부패의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를 발표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은 국제적으로 공히 인정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행정학을 연구하는 분에는 아예 이 '부패'의 문제만 중점적으로 다루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공적 기구, 제도에 있어서의 개방성/투명성은 공공분야의 대응성(responsiveness), 즉 공공분야가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국민이 원하는 방향에 부합하도록 생산하게끔 하는 효과를 지닙니다. 또한 재화의 생산/분배, 정책결정 과정 등 공적인 결정에 관련된 부분의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국민이나 (이익)집단의 통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성을 제고하는 효과도 가집니다.


이러한 투명성을 극단으로 끌어올린 기술 중 하나가 바로 블록체인입니다.
다면 장부(multi-facet book?) 작성방법을 통해 거래, 입-퇴장을 추적할 수 있는 극단의 투명성을 제공하는 것이 블록체인이지요. Steem Dollar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분야에 그 적용가능성이 연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경기도가 Block Chain을 농산물 인증 분야에 적용하는 방법을 검토 중입니다. 2017년 3월에 나온 기사이니, 이미 기술적 진전은 제법 되었을 겁니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7030816147811706)


이렇게 투명성에 대한 찬사가 가득합니다.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고, 예측가능한 멋진 신세계 (The Brave New World)!!

그런데 이러한 조류에 반기를 들며,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학자가 있습니다.
한 번쯤 익히 이름을 들어보셨음직한 재독(在獨) 철학자 한병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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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분입니다. 무슨 히피 같이 생겼군요(...)
___ 그의 대표적인 저서 "피로사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놓습니다. 우선, 그 역시 현대 사회에서 투명성이 각광받는 가치임을 인정합니다.

*오늘날 ‘투명성’이란 단어는 마치 유령처럼 모든 삶의 영역을 떠돌고 있다. 정치에서는 물론이고 경제에서도 투명성이 강조된다. 투명성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정보의 자유, 더 높은 효율성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투명성이 신뢰를 낳는다.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윽고 이와 같은 비평을 보입니다.

  • 투명성은 모든 사회적 과정을 장악하여 근원적인 변화의 물결 속에 끌어들이는 시스템적 강제력이다. 오늘날 사회 시스템은 모든 사회적 과정을 조작 가능하고 신속하게 만들기 위해 투명성을 강요한다. 투명성은 타자와 이질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써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가속화한다. 이러한 시스템의 강제로 투명사회는 곧 획일적 사회가 된다.(“투명사회”, 14-15쪽)

이어서, 그는 '연결 과잉' (excessiveness of connection) 사회, 즉 SNS 등이 범람하는 사회를 이렇게 바라봅니다.

  • 제레미 벤담의 파놉티콘은 그 안에 갇힌 사람이 말을 못하게 막는 체제였다. 하지만 현대의 디지털 파놉티콘은 서로 대화를 하도록 허용한다. 그래야만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잘 알게 되니까,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통제를 더 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벤담의 파놉티콘에 존재하는 빅 브라더는, 아래쪽 사람들이 뭘 하는지를 볼 수 있지만 뭘 생각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서로의 생각을 너무 잘 안다. (2014년 Pressian 인터뷰 중에서)

Facebook이나 Instagram, Twitter와 같이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는 이제 너무나 많습니다. 구 미디어(Old Media)로 대표되는 신문, 전화, 방송을 벗어나 우리는 원하는 때에, 아무 것이나 내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가히 말의 범람(汎濫)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전면적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화의 흐름 속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 튀는 견해를 밝히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려워졌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은 매끈하게 다듬고 평준화하는 작용을 하여, 결국 획일화를 초래하고 이질성을 제거한다. 투명성은 순응에 대한 강압을 낳고 이로써 지배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다.

즉, 투명성의 사회는 다음과 같이 작동합니다.

  1. 먼저,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공개되어야 합니다.
  2. 토론도 타인의 시선 앞에서 해야 합니다.
  3.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유의 공간이 좁아지고, 정치는 호흡이 짧아집니다.
  4. 투명성에는 시간의 차원이 있는데, 투명성은 현재 지향적입니다.
  5. 미래지향적인 사고와 행위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장기적인 비전이 불가능해집니다. 즉각 모두에게 보여 달라는 요구 때문입니다.
  6. 고요한 사유를 할 수 없고 미래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7. 시스템은 현재에 고정되어서 아주 만족스럽고 멋진 상태를 유지합니다.

또한 그는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많은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즉, 눈뿌리기(snowing) 와 같이 정보를 너무 많이 뿌리다 보니, 어떤 정보를 선별해야 할지, 어떻게 해석할지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됩니다. 즉, 정부와 공공기관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 결국 자기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결국 불투명해진다는 것이 그의 진단입니다.


지금까지 투명성에 관한 일각의 논의를 살펴보았습니다.

블록체인은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바꿀까요?
아니, 범위를 좁혀 투명성을 신조로 하는 가상화폐는 어떤 파장을 가져올까요?

과연 한병철이 바라본 것과 같이 과도한 투명성의 '포르노 사회'가 될까요?
아니면 투명성 부족에서 비롯된 많은 문제를 해결할 Deux Ex Machina가 될까요?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참고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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