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By @sizuko10/6/2018kr

귀찮음이 배고픔을 이겨버린지 거의 한달째, 배가 정말 고파도 귀찮음을 이기지 못할 때는 그냥 굶곤한다.
그러다 보니 2일전 사준 도시락에 곰팡이가 피고말았다.
먹을 생각으로 곰팡이 핀 부분만 숟가락으로 살짝 걷어내고 가만히 서서 도시락을 봤다.
빨간색 생강향이 나는 알 수 없는 일본의 반찬 위로 흰 곰팡이, 그리고 양념이 된 닭고기, 390엔 4000원이라는 돈을 주고 산 이 도시락을 평소같으면 먹었겠지만 왠지 선뜻 손이 안갔다
결국 도시락을 다 버리고 빈속에 자려다 한국에서 엄마에게 들은 잔소리가 기억났다

'거기까지 가서 돈 아끼고 그러지 말아라, 너는 지금 돈을 쓸 나이지 벌 나이가 아니다 니가 안쓰고 모아봤자 그돈 써도 없고 안써도 없으니깐 아끼지 말고 먹고싶은거 사고싶은거 하고싶은거 다 하고와라 결국 돈도 써본사람이 모으지 안써본 사람은 못 모은다'

270엔짜리 김밥을 사고 오랜만에 맥주를 들었다
맥주 + 안주값이 밥보다 비싸게 나왔지만 오늘은 왠지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잠깐 나갔다 올 생각이라 문을 안 잠그고 열쇠도 안들고 나왔는데 혹시 내가 나갔다 오는 사이에 누군가 들어와서 문을 잠가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맥주를 손에 들고 천천히 걸었다

처음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사람들과 술을 마신 밤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모든게 처음이던 나도 이젠 이렇게 일본생활에 벌써 지루함을 느끼고 있구나
새로운 새상도 별거 없구나 싶다

글을 쓰며 12시를 넘기고 생일을 축하하는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괜히 슬퍼진다

내 자리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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