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나의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먼 길을 떠나게 된 친구를 가기 전에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어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 작은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녀다. 너무 반가워 와락 안았다.
“보고싶었어”
그녀는 따뜻한 미소로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방에 비치되어 있는 넓은 소파에 앉았다. 나는 그녀를 뒤따라가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녀가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이제는 그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마음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떠나는 그녀를 이제는 다시는 못 볼 지도 모른다. 그녀와 오늘 나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덤덤한 얼굴로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기억들, 순간적으로 들려온 비명소리. 주방 식탁을 밝혀주던 주황색 등불 할머니에게 안겨서 엉엉 울던 그녀, 엄마 아빠의 소리 지르는 소리, 가족들의 한숨. 그녀의 지난날이 영화필름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조금의 감정도 못 느낄 정도로 덤덤한 얼굴로 그녀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각자의 길을 선택한 뒤, 짐 덩어리로 전락해버린 그녀는 기나 긴 가족회의 끝에 큰어머니가 받아주셨다. 그때부터 그녀의 엄마는 큰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의 큰어머니는 부족함 없이 그녀를 키워주셨다. 단 한 번도 큰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어린 날.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지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녀는 이 세상을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어린 날 그 모든 것을 버텨내기엔 상처가 깊었다. 늘 행복한 가정의 모습과 부딪쳐야만 했던 지난 날.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가족이라는 테마는 스스로에게 금기어가 되어야만 했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가족들과 즐겁게 식사를 하는 가족의 그림은 그저 그녀에게 실현될 수 없는 현실이자 절망이었으니까.

오랫동안 그녀는 지난날의 상처를 혼자만이 안고 살았다. 나는 뭐가 무서워서 그녀의 지난 상처를 어루만져주지 못했을까 왜 그리도 오랫동안 그녀 혼자 아파하게 방치해 두기만 했던 것일까. 그녀의 지나간 상처는 이제 와서 내 가슴을 후벼팠다. 참으로 부질없고 늦기 짝이 없다.
그녀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해와도 같은 존재였다. 매일 멀리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사랑을 갈구하지만, 결국 가까이 닿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그녀가 엄마에게 느꼈던 것은 미움과 분도보다 끓임 없는 사랑의 고갈이었다. 끝이 안보이던 사막에 끝에서 목마름 호소하던 그녀. 결국 그녀는 사막을 떠나기로 했다. 받을 수 없는 사랑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너무 어린나이에 깨달아 버렸다.

그녀는 이제는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이제라도 떠나기 전에 나에게 말을 하게 되어서 기쁘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와락 안았다.
그녀는 나에게 이별을 선고했다.
나는 오늘 또 다른 나였던 내 안에 그녀를 놓아준다. 그녀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던 그날 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사월愛 / @ronep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