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렁이
자살을 하는 동물이 하나 있다
지렁이다
비가 왔다 갠 날이면 어김없이 하늘 향해 몸 튼 채
그만 알아볼 글자를 바닥 단단히 찍는다
난
왜 기어코 올라오려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따가운 태양이 세상의 심연,
내려가기 좋은 날 하늘굴을 파고
뒤집어진 세상의 중력을 알아차린 대가는
죽음이다
바싹 몸부림치며 과거의 기억들이 쓸려가도
피할 곳은 없다
미지로 시작된 상형문자는 고통을 튕기고 절망을 끝맺는다
굴광성은 빛에 복종하는 성질
삶이
뿌리는 눈물
증발해버리지 않도록 흙 속에 모아두는 편이 좋았다
세상 너머 어떤 줄기가 꼿꼿이 서있다고 들은 들
가만히 있었어야 했다
그는 필시 장님임에 틀림이 없다
빗줄기인지 빛줄기인지 구분도 못하면서
무지에 대한 대가는 단단히 갚아야한다
빚 줄기 차게 쏟아진다
나도 물 들어 붓는다
모르고 자살하는 동물이 하나 있다
무지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