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향상 기술은 과연 바람직할까?
안녕하세요~ 😊 저번 시간에 이어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주제로 돌아왔습니다. 이전 글에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앤시와 티모가 대화를 나눴습니다.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저번 대화에서 티모가 막스모어 중심의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어떤 비판이 있었는지 다음 대화에서 이야기 하겠다고 했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이네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적 입장과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옹호하는 인간 향상에 관한 주제가 이어지겠습니다. 민감한 문제인 만큼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앤시와 티모의 대화로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앤시: 티모야~ 여기야, 오늘 상태 좋아보이네?
티모: 아, 어제 좀 푹 잤어. 오늘도 아메리카노를 마시는구나?
앤시: 응~ 너도 얼른 주문하고 와.
티모: (라떼를 가져오며🍵) 앤시 저번에 했던 대화 기억나?
앤시: 네가 설명해준 엑스트로피언에 대해서 좀 알아봤어. 그리고 그들에 대한 어떤 비판이 일었는지도 좀 찾아봤지.
티모: 그래? 닉 보스트롬이 했던 비판말이야?
앤시: 응, 나도 인체 냉동보존의 윤리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 기회에 시간을 좀 들여서 찾아봤어. 아무래도 나는 트렌스휴머니즘에 부정적이지 않았거든..그런데 그들이 논리적으로 나열한 비판을 보니까 납득은 되더라.
티모: 그래, 트랜스휴머니즘이 이성과 과학의 힘을 지나치게 신뢰했다는 점 말이지?
앤시: 그것을 기본으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너무 낙관적이고 기술중심적이고, 새로운 기술의 오용을 너무 사소하게 생각하는 건 사실이잖아.
티모: 그 이면에는 개인의 자율과 선택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철저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앤시: 인간 강화에 대한 다양한 시도라고 하지만, 사실 무정부적 시장중심 자본주의와 밀접하다고 생각해. 편향된 정치적 스펙트럼도 숨길 수 없어.
티모: 결국은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불평등한 기술접근성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 상대적 박탈감이야 우리 사회에서 다각도로 나타나지만, 기술접근성의 문제에 있어서 불평등은 앞으로 점점 심각해질 거야.
앤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근대 휴머니즘을 계승했으니 인간중심적인 것은 당연한 것은 알겠어..하지만 비인간을 인간 능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도구로 보는 경향은 옳지 않다고 봐.
티모: 비인간에 대한 미성숙한 논의는 훗날 큰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앤시: 지금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큰 문제들이 결국 그런 미성숙한 상태에서의 사소한 결정들이 커진 게 아니겠어?
티모: 그래..하지만 앤시 네가 알아둬야 할 점이 있어. 비록 막스 모어 중심의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서 보스트롬이 그렇게 비판했다고 해도..
앤시: 그렇다고 해도, 인간 강화에 있어서 개인, 자율 그리고 선택을 강조한다는 것은 근대 휴머니즘의 연장선 위에 있다는 거지?
티모: 그래, 맞아. 역시 이해가 빠르구나.
앤시: 트랜스휴먼이 당위적인 선택이라는 입장, 그러니까 마땅히 인간 강화를 선택해야 한다는 입장말이야 그게 어쩌면 정말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티모: 음..어떤 면에서?
앤시: 어쨌든 인간 강화를 하려면 나노기술, 유전공학 등을 활용해야 하는데 그 안에서 여러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거 아니야?
티모: 하지만 그들은 유전자 편집을 통해 도덕적 판단의 능력마저 향상될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거 아니?
앤시: 아..거기까지는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그러니까 개선된 유전자가 도덕적 판단도 개선시킬 수 있다는 거야?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티모: 그래. 그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앤시: 그래도 프랜시스 후쿠야마랑 마이클 샌델이 유전공학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유는 분명 있지 않을까? 후쿠야마가 트랜스휴머니즘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상'이라고 비판할 정도라면..
티모: 전체를 알기 전까지 한쪽으로 너무 편향된 사고를 해서는 안돼. 그러니까 유전공학을 통한 인간 향상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런 향상이 인간의 본연 본성을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인간의 어떤 특징이 과연 나쁜 것인지조차 우리가 명백히 할 수 없잖아.
앤시: 아아..정말 복잡해 😢
티모: 앤시 너도 한번 생각해봐. 정말 정말로, 유전자 편집으로 인간 본성을 개발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그 한 번의 시도가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할 실수가 될 수도 있어.
앤시: 아무래도 유전자를 건드리는 것은 너무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
티모: 마이클 샌델은 <완벽에 대한 반론: 생명공학 시대, 인간의 욕망과 생명 윤리>에서 인간 향상 시도가 완전성과 정복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했어. 그의 주장은 언제나 흥미롭지..인간은 인간 능력 한계를 인정해야 하고, 우리가 통제 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두자는 식이야. 우리의 삶이 선물로 주어졌으니 그 자체로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앤시: 삶이 선물이라면, 분명 그 자체로 만족하고 감사해야 겠지. 하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그랬던 적은 없던 것 같은데? 만약 그랬다면 기술의 발전도 없지 않았을까?
티모: 그 말을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우연한 탄생이 조건의 평등을 함축하지는 않다고 봐.
앤시: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우연한 탄생이 조건의 평등을 함축하지 않다는 게..??
티모: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신체적 조건을 포함해서 지능이나 성격 등에서 동등하게 태어나는 것은 아니잖아. 그래서 인위적인 향상이 평등한 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고 보는거지. 향상과 치료 사이의 구분이 과연 분명하냐 의문을 제기하는 거고.
앤시: 향상과 치료의 사이라..그러고보니 그것도 또 애매하네. 이 주제는 정말 생각할 거리 천지구나. 만약 신체적 조건이 열악한 상태로 태어났다면, 그것을 향상시키는 게 후천적으로 장애를 치료하는 거랑 크게 다를 게 있는가 싶기도 하고.
티모: 마이클 샌델은 삶이 선물이나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 될 때의 문제점을 보고 있는 거야.
앤시: 아아..선택이 되는 순간 완전한 경쟁사회가 되버릴 것 같은데? 무한정으로 치닫는 경쟁에 자기 자신을 맞추는 일이 곧 인간을 향상시킨다는 태도 아닐까?
티모: 그래 그게, 마이클 샌델의 주장이야.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선택이나 책임으로 돌리는 바로 그 태도 말이야. 마이클 샌델은 우리의 본성과 지향에 맞춰 세계를 바꾸는 쪽에 목소리를 싣는거지.
앤시: 포스트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공부하려면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겠어.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문제들을 바라보고 짚어내니까 놀라워.
티모: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아마 앤시 너도 그 분야에서 오래 발을 담그고 연구를 하면 보통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까지 보게될 시야가 생길 거야.
앤시: 그 정도까지느 아니더라도, 티모 너와의 대화에서 이미 충분히 시야가 넓어지고 있어. 고마워.
티모: 나도 많이 배우는 걸. 우리 다음에는 또 다른 얘기를 이어가자.
앤시: 그래, 오늘도 유익했어.
티모: 다음엔 새로 생긴 스팀잇 디저트 카페에서 보자. 🍨
앤시: 오, 좋아! 나도 가보고 싶었어. 👌
티모와 앤시의 대화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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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또 재미있는 대화로 찾아올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