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나는 미투 운동이 불편하다

By @polonius793/13/2018kr

1.
1971년 스탠포드 심리학 연구실에서 진행한 모의 감옥 실험은 6일만에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이 실험엔 교도관 역할을 맡은 9명의 참가자와 죄수 역할을 맡은 9명의 참가자가 있었다. 교도관 역할의 참가자들은 죄수들을 나체로 만들었고 이중 3분의 1은 성적 학대 등 가학 행위의 강도를 높여가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 실험은 본래 14일 동안 진행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교도관들의 학대가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여섯째 날 중단되었다. 몇몇 죄수들은 극도의 고통을 호소하고 정신적 이상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이 실험의 참가자들은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없는, 적절한 교육을 받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카키색 교도관 복을 입고 선그라스를 끼고, 타인을 마음대로 학대해도 될 통제 권력을 갖게 된 후 참가자들이 다른 포로 수용소나 일반적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동일한 학대를 가했다는 점에서 이 실험은 충격적이었다.

*2.
지금은 폐쇄된 한 음란 사이트를 모니터링했던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100만 명이 가입되어 있었다는 그 사이트에는 몰카 갤러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모르는 여성의 혹은 아는 여성의 신체 부위를 찍어 올리면 사람들이 댓글로 칭찬했고 품평했고 박수를 쳤다. 사람들은 그것을 ‘작품’이라 불렀고 작품을 많이 올려 많은 지지를 받은 이들은 ‘작가’ 라는 라벨이 붙었고 추앙을 받았다. 이 안에서는 여자친구의 신체 부위 사진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선량한 일로 여겨졌고 급기야는 여성을 공유하는 것까지 극도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언론에 보도된 사건, ‘공동 강간 모의’가 이루어지게 된다.
내가 그 사이트를 며칠간 관찰하면서 매우 소름이 돋았던 지점은 술 취한 무방비 상태의 여성을 찍어올리고 강간을 유도한 끔찍함도, 그 밑에 달린 따 먹고 싶다 맛있게 생겼다는 70개 넘는 댓글들의 끔찍함도 아니었다.
누구나 이 집단 안에 들어가 일주일 정도만 몰두해 있다면, 어떤 보통의 선량한 사람도 너무 쉽게 강간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보통의 선량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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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감옥 실험을 재현한 다큐멘터리 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 의 한 장면. 출처: [prisonexp.org /by Kyle Patrick Alvaez](http://www.prisonexp.org/)

다른 인간을 학대하는 폭력적인 교도관과 선량한 개인은 한 끝 차이다. 누구를 강간해도 된다는 말에 좋다며 달려가는 미친 사람과 보통의 선량한 사람도 한 끝 차이다. 그와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의 도덕을 스스로가 결정하는 탁월한 개인은 매우 드물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가치관에 일관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명료한 눈과 정신을 가진 개인은 드물다. 대부분 주위의 사회가 개인에게 던져주는 역할과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한 사람이 추구하는 미덕은 달라지게 된다. 공부를 잘하면 칭찬해주는 사회에서 공부를 잘 하려고 노력한 개인이 몰카를 공유하면 칭찬해주는 집단에서 몰카범이 되는 것이 어쩌면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단 며칠 전에도 코인 채팅창에, 죽기 전에 수지 따먹고 죽을 거다 라는 말이 뜨는 걸 봤다. 이에 누군가 ‘나도’ 라고 덧붙이는 것을 봤다. 이걸 보고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채팅에서 술자리 농담에서 이러한 언어들이 일상이 되었을 때 현실에서 실제로 여성을 대하는 감각을 완벽하게 분리해낼 수 있는 개인은 몇이나 될까.

술에 취하기만 하면 여직원을 만지는 상사의 행동이, 또다른 상사의 강압에 못이겨 끌려간 룸싸롱에서 빚어진 습관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회사와 학계의 통과 의례처럼 여겨졌던 부르스 잔치에서 자유로웠던 이들은 얼마나 되며, 여성을 전리품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자유로운 개인은 얼마나 될까. 처음부터 폭력의 가담자로 태어난 이는 없으며, 한 끝 차이로 나도 공범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지하는 개인은 몇이나 될까.

아래는 어느 익명의 개인이 위계적 성폭력 경험을 공유하며 남긴 비수 같은 문장이다.

“보통 사람이 선배가 되고 상사가 되고 감독이 되고 하다보면 점점 본인에게 쓴소리 해주는 사람이 없어집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참고 견뎌주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왜곡된 현실 속에 살면서, 자기 행동이 잘못된 것인 지도 모르는 채 자연스럽게 못된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문화의 문제라서 보통 사람도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짜 괴물

나는 미투 운동이 불편하다. 실은 미투 운동이 소비되는 방식이 불편하다.

피해자에게 두려움을 거두어 주기 위해,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올바른 대가를 치루게 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자극적인 이야기와 포르노적인 소비가 필요한가. 가해자를 어느 정도 조롱하고 욕을 해야,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것일까, 개인의 카톡 대화까지 공유하고 조리돌림하며, 은밀한 성적 행동들을 시시콜콜 들여다보며, 누가 얼마나 더 파렴치한지 심판하는 것이, 도처에 널려 있는 강간 문화와 위계적 폭력의 위험성에서 약한 이들을 구해 내는 데 얼마나 더 도움이 되는 것일까.

여성이 자기 결정권이 있는 동등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겨우 납득시키기 위해,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성관계가 강간이라는 사실이 겨우 보통의 상식이 되게 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인민 재판과 수천 번의 조리돌림과, 제 3자의 오만한 심판들이 필요했던가.

사회에서 몇 명의 죄인을 파렴치한을 만들고 제거해 버리는 일이 그동안의 폭력적인 질서와 문화에 무감각했던 나와 당신에 대한 면죄부를 주기라도 하는 것인가.

나는 영화계에 꽤 오랫동안 발 담았던 사람이다. 영화계에 십 년 넘게 있으면서 모 감독의 기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왜 침묵했나. 나도 가해자이고 공범자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우리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폭력을 양산하는 문화는 더더욱 우리와 떨어져 있지 않다.

미투 운동 이후 문단에서 “지금 문단은 해체되어야 한다.” 라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았다. 구조가 폭력적일 때 그 구조 안에서 살아온 사람은 아무리 축소해 말해도 ‘구조적 가해자’ 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공범자로 칭한, 평론가들은 이야기했다. 문단에서는 고은이라는 괴물이 아니라 문단이라는 진짜 괴물을 지목했고, 자신들이 기생해 왔고 발판으로 삼아 성장했던 구조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숱한 피해자들이 100년 넘게 목소리를 내어 왔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 순간에 몇 사람의 인생을 처형해버리는 극단적 공포를 수 차례 시연하고 나서야, 그동안의 피해자들의 공포와 고통이 겨우 이해되었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다. 그제서야 무엇이 잘못되었고 뒤틀려 있었는지 사람들이 이제 겨우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미투 운동은 여전히 불편하다

촛불은 소수의 권력자를 무너뜨리기 위한 저항 운동이었다. 미투는 강력한 소수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에게 광범위한 반성을 요구하는 일이기에 불편하다. 이것은 우리 주변에 도처에 널린 일상과 조직의 익숙한 질서에 도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편하다.미투는 나와 우리 안에 산재해 있는 어떤 가치관에 통째로 저항하기를 요구하는 것이기에 불편하다. 소수의 가해자를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대 왔던 권위과 질서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숨쉬어 왔던 익숙한 공기의 한 부분을 도려내기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파렴치한에게 돌을 던지는 동안 보통 사람도 얼마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질문은 사라진다. 나도 권위의 동조자와 협력자였다는 반성은 사라진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나쁜 습관과 질서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은 사라진다. 위험을 인지해야 하는데 진짜 위험은 무시된다.

가해자를 개새끼 만드는 게 미투 운동의 본질이 아니다. 첫번째는 두려움에 저항하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괜찮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괜찮지 않았다고 외치는 것이었고 폭력적인 가치관에 녹아든 보통의 우리들 그리고 나 자신에 저항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숱한 괴물을 만들어 온 진짜 괴물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픈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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