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로 12일째 스팀잇에 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 하루에 두 개를 써서 올린 날도 있어서 이 글을 포함해 쓴 글이 총 14개다. 와, 진짜 나 자신에게 놀랐다.
나는 소설도 이렇게 매일 연재해본 적이 없다. 장르 소설은 일일 연재가 기본인데, 초반 며칠만 일일 연재를 했다가 금방 지쳐서 이삼일에 한 편씩 올리곤 했다. 손이 느려서 소설을 쓰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 아닌 글은 정말 빨리 쓴다. 소설은 시간당 1천자를 간신히 쓴다면 이런 일기는 시간당 3천자는 기본으로 쓴다. 정말 빠를 때는 1시간에 5천자도 써진다. 별다른 고민없이 머리에서 떠오르는 대로 곧장 써내려간다. 중간에 잠깐 머뭇거릴 때도 있지만, 금세 또 줄줄 쓰게 된다.
다 쓰고 나면 두어시간쯤 딴짓을 하면서 머릿속을 비운다. 그런 다음 글을 처음부터 읽어보며 고친다. 내용은 거의 건드리지 않고 오타나 이상한 문장만 손보는 정도다. 넉넉잡아 2시간이면 블로그에 올릴 글 한 편을 완성한다. 시간이 남아 내일 올릴 글을 미리 써놓기도 한다. 지금도 미리 써놓은 글이 여섯 개나 있다.
반면 소설은 한 편에 최소 7시간은 걸린다. 보통 5천자~ 6천자를 한 편으로 치는데 때로는 이 한 편을 하루 만에 못 적어 삼사일을 끙끙댄다. 그래도 도저히 못 쓸 때는 연재가 늦어 죄송하다는 공지를 쓰고 일주일 넘게 쉬기도 했다.
내가 스팀잇에서 어제까지 받은 저자 보상 금액이 35 스팀 달러다. 현재 업비트 시세로 약 30만원이다. 올해 1월에 받은 인세보다 더 많은 돈을 불과 12일 만에 벌었다. 실제로 손에 쥔 현금은 한 푼도 없으니까 스팀 달러 시세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겠지만, 그래도 엄청난 금액이다.
물론 나는 몇 년간 신작을 못 내고 있고, 지금 받고 있는 인세는 과거에 출간했던 책들이 지금도 조금씩 팔리며 벌어다주는 거라 인세가 적다(내 책들아 계속 팔려줘! 가즈앗!) 그래도 12일에 30만원이라는 건 너무 놀랍다. 내가 당장 신작을 내도 백만원을 받을까 말까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줄지 말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 거절하지 않고 받아준다 쳐도 신작을 내기까지 최소 석 달은 걸릴 테니 결과적으로는 한 달에 33만원쯤 버는 셈이다. 그런데 그만한 돈을 이렇게 쉽게 쓴 글로 며칠 만에 버니까 기분이 얼떨떨한 것을 넘어 죄책감이 느껴졌다. 지금 내가 블로그에 쓰고 있는 글이 과연 그만한 돈값을 하는 글인가 싶어서.
고3 때, 수능이 끝난 뒤 석 달 동안 식당에서 홀서빙 알바를 했다. 그때 내가 받은 월급도 30만원대였다. 매일 다섯 시간씩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30만원이 이렇게 큰 돈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면서, 또 그놈의 지긋지긋한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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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물이다. 글로 돈을 많이 벌어 매일 치킨을 시켜먹고 싶다. 그래서 이제껏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썼다. 고수위 소설(흔히 야설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장르와 독자님들도 사랑하기에 이렇게 표현한다. 이 장르를 폄하하고 싶지 않아서)도 쓴 적 있다. 역시나 망했기 때문에 별로 돈이 되진 않았다.
이렇게 돈을 좋아하니까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보상 받지 않기 옵션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돈을 벌려고 스팀잇을 시작했으니까.
그렇지만 보상이 높은 글을 보며 마냥 흐뭇해할 수가 없다. 글 하나당 1~5달러가 찍혔다면 이런 고민을 안 했을 것이다. 글 하나에 1달러도 받지 못했다면 오히려 투덜거렸을 것이다. 아니 보상이 왜 이렇게 적어? 대체 뭐가 문제야? 하고.
나는 언제나 어느 식당에서나 홀서빙을 하든 주방 보조를 하든 딱 최저 시급만 받고 일했다. 올해 최저 시급이 7530원이다. 이 블로그에 올린 글 한 편당 걸린 시간이 2시간이니까 만오천원을 받으면 충분하다.
그래서 보상 금액이 5달러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글을 다시 확인하며 오타가 없나 살피게 되고, 7달러가 넘어가면 뭘 좀 더 써서 분량이라도 늘려야 하나 싶고, 급기야 10달러가 넘으면 세상이 나를 속이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뭘 써도 안 팔리던 내 글이, 심지어 예전처럼 정성을 들이지도 않은 글이 갑자기 잘 팔리는 게 너무 이상해서.
쉽게 쓰여진 글로 많은 돈을 버는 게 부끄럽다면 이제라도 어렵게 쓰면 되지 않을까. 또는 매일 올리지 말고 이삼일에 한 번씩만 올린다거나. 차라리 여기서 소설을 연재해볼까. 아니면 로맨스 소설 쓰는 법이라도 알려드릴까.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런데 내가 알려주는 방법으로 쓴다면 100% 망할 것 같다. 나도 100% 망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로맨스 소설 쓰면 반드시 망한다, 는 나만의 전문적인 지식으로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그걸 좋은 컨텐츠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립 잇 업(Rip it up)이라는 책에 그런 사례가 있다.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그림을 그리게 한다. 첫번째 그룹에게는 그림을 그리면 착한 어린이 메달을 주겠다고 말한다. 두번째 그룹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몇 주 후, 두 그룹의 아이들이 얼마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지 비교해본다. 그랬더니 그림을 그리면 착한 어린이 메달을 받을 수 있는 그룹보다 보상이 아무것도 없던 그룹이 그림 그리기에 훨씬 많은 시간을 쏟았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생 때는 책을 읽으면 선생님이 독서왕 스티커를 줬다. 그 스티커를 모으는 게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나중에는 별로 재밌지 않았다. 스티커를 받을 욕심에 책을 건성으로 빨리 읽고 치우게 됐다. 독서가 마치 또 하나의 숙제 같았다.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온 취미가 독서임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그랬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동물을 훈련시킬 때 보상으로 먹이를 주면 동물의 학습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때로는 보상이 벌이 된다. 재미없고 힘든 일을 할 때 사람들은 돈을 준다. 그러니 돈을 받는 일은 분명 재미없고 힘든 일일 것이다, 라는 생각에 보상이 동기를 감소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그런 것 같다. 마냥 즐겁던 일기 쓰기가 어쩐지 일처럼 느껴지면서 뭔가 더 잘 써야 할 것 같고, 더 의미 있어야 할 것 같다.
어제 @eversloth님께서 매일 어떤 글을 쓰실지 고민하시기에 편하게 일상글을 쓰시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하는 걸까. 왜 맨날 고민만 많이 하는 걸까. 이것도 버릇인 것 같다. 결론이 난 건 하나도 없다.
참, 갑자기 생각난 김에 덧붙인다. 스팀잇에서 여러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즐겁게 댓글을 달다 보면 보팅 파워가 아슬아슬해진다. 보통 뉴비를 위한 가이드엔 80%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관리하라고 하는데 70%, 60%가 되기 일쑤다.
그래서 댓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포스팅을 보고도 보팅 파워가 부족해서 못 단 적이 많다. 보팅없이 댓글만 쓰는 건 어쩐지 꺼려져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이런 고민을 했던 것처럼 내 블로그를 보면서 같은 고민을 할 분이 계실 것 같다. 나한테는 보팅없이 댓글만 써주셔도 정말 기쁘고 반가우니까 고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편하게 댓글을 달아주셨으면 좋겠다. 특히 나와 댓글로 대화를 자주 나누었던 분들은 더더욱. 보팅은 새로운 분과 인사를 나누실 적에, 또는 보상이 너무 적어 아쉬운 글에 쓰시고 나한테는 아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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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온통 돈 이야기뿐이다. 어떻게 보면 개인 정보보다 이렇게 내 바닥을 드러내는 글이 평생 남아 있는 쪽이 더 무서운 일 아닐까 싶다. 문득 며칠 전에 읽었던, @kimthewriter님의 [스팀잇 뉴비로 지낸 두 달: 이제 막 들어온 뉴비를 위한 팁](https://steemit.com/kr-newbie/@kimthewriter/b5x4s) 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내가 스팀잇에서 최고의 속물인 것 같다! 와, 학교 다니면서도 못해본 1등을 여기서 할 줄이야!
내일부터는 똑같이 쉽게 쓰는 일기라 해도 작은 정보 같은 걸 넣어서 돈값을 하고 싶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 부인이 말다툼하다 말고 쌩뚱맞게 제품 선전을 하는 것처럼 튈까봐 걱정스럽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넣어봐야겠다(사실 이 글에서 살짝 시도해보았다)
도전할 목표가 생기니까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생각을 정리하려면 글로 쓰는 게 최고야! 글쓰기는 정말 멋져! 즐거워!(소설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