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새벽마다 소설을 쓰느라 취침 시간이 몹시 늦어졌다. 오전 8시는 기본이고 심하면 10시에 자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눈을 뜨면 오후 3시가 훌쩍 지나 있다. 오늘도 그쯤 일어나 언제나처럼 이오스 시세를 통해 내 행운의 여신이 알려줄 오늘 운세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이오스가 8달러대까지 떨어졌다. 내가 2.997이오스를 샀을 때 시세가 9.7달러였으니 엄청 떨어진 거다. 순간 떠오른 생각은 오늘 운세 망했구나, 가 아니라 내가 돈만 있다면 이오스를 더 샀을 텐데 아깝다, 였다.
내가 한 생각이 스스로도 너무 뜻밖이라 놀랐다. 나는 마트에서 할인 행사를 해도 여간해서는 지갑을 안 여는 사람인데 이오스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줄 몰랐다. 나도 말로만 듣던 코린이(코인 초보)가 된 걸까? 가진 코인이라고는 겨우 10.3이오스밖에 없는데?
이쯤에서 그렇다, 나는 이오스를 또 또 사고 말았다, 라면서 이오스를 산 경위를 설명해야 할 것 같지만 은근슬쩍 넘어가기로 한다.
아무튼 나는 10.3이오스가 있고 바겐세일 중인 이오스를 보면서 군침을 흘리다 정신을 차렸다. 이오스 시세가 이렇게 떨어졌다는 건 다른 코인들도 떨어졌다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진짜로 봐야 할 코인 시세- 스팀과 스팀달러를 확인하고 이번에야말로 충격을 받았다. 스팀이 3.56달러이고 스팀달러는 3.14달러였다.
내가 스팀잇을 시작했을 때 스팀이 아마 5달러 근처, 스팀달러는 7달러 이상으로 기억한다. 업비트 시세로 스팀 달러가 만원을 넘긴 걸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업비트에서 스팀 달러는 약 삼천사백원. 역시나 엄청 떨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 또한 스팀달러를 진작 원화로 바꿔 인출했어야 했다는 생각보다는 비율이 좋았을 때 스팀파워를 미리 업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1월 21일엔 19.5스팀달러로 28.780스팀파워를 샀는데 지금은 스팀이 스팀달러보다 비싸져서 그때만큼 좋은 비율로 바꿀 수 없어 아쉬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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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스팀잇을 시작했을 땐 스팀달러를 받는 족족 원화로 인출하려고 했다. 당장 생활비도 부족한 가난뱅이이다 보니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첫 저자 보상으로 받은 스팀달러로 이오스를 사면서(정확히는 이더리움이지만), 또 스팀잇에서 많은 분들과 교류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 보잘것없는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고 보팅을 해주는 고마운 분들에게 나도 충분한 보답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의 93스팀파워로는 어림도 없다. 적어도 500스팀파워는 되어야 보팅을 해드려도 티가 나지 싶었다. 물론 보팅 파워를 조절해 더 많은 분들에게 보팅을 해드릴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스팀이라는 암호화폐에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포자에 학교 성적도 나빴으며, 경제활동이라고는 식당 일과 글쓰기밖에 해본 적 없다. 평소 뉴스도 관심 있는 분야만 봐서 세상 물정에 어둡다. 그런 내가 느끼기에도 스팀잇의 미래가 무척 밝아 보일 정도니 전망이 보통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지금은 생활비가 부족하다지만, 사실 당장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다. 오늘만 해도 저녁으로 순대국밥을 먹었다(양이 많고 맛있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저축한다 생각하고 스팀달러를 모아두었다가 스팀이 스팀달러보다 싸지면 그때 스팀파워를 충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문제는 내가 귀가 무척 얇으며, 하루에도 마음이 수십번씩 변덕스럽게 바뀌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거다. 더군다나 돈 문제다 보니까(실제로는 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으면서!) 더욱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왔다 갔다 오락가락 갈팡질팡 난리가 났다. 진짜 마음이 소금쟁이처럼 수면을 내달리는 것이다(도러시아 브랜디- 작가수업 중에서)
결국 나는 나를 믿을 수가 없어졌다. 다시 생각해보니 돈도 제대로 벌어본 적 없는, 세상물정에 어둡기까지 한 내가 내린 결심대로 한다는 건 바보짓 같았다. 더 똑똑한 사람의 조언이 필요했다.
그래서 겨우 10.3이오스, 51에이다(짜잔! 갑자기 에이다가 나타났다!), 0.03이더리움, 93스팀파워와 41.6스팀달러밖에 없는 주제에 마치 전재산을 코인에 올인한 사람처럼 열심히 온갖 코인 관련 싸이트를 돌아다니며 조언글을 찾아 읽었다. 내가 쓰고도 부끄러워서 변명을 하자면 내딴엔 저게 전재산이나 다름없어서 그랬다.
나는 활자중독자다. 과자를 먹을 때에도 과자 뒷면의 영양성분, 원재료, 이 제품은 대두 땅콩 돼지고기 계란 등을 사용한 제품과 같은 제조시설에서 제조하고 있습니다, 같은 글을 전부 읽는다.
그래서 조언글을 읽는 건 무척 즐거웠지만, 별로 얻은 건 없었다. 그냥 요즘 암호화폐 상황이 많이 좋지 않구나, 어딜 가나 사람들이 조언이랍시고 별소릴 다하고 있구나, 당장 손절하라는 사람, 닥치고 존버하라는 사람, 더 늦기 전에 주식을 하라는 사람, 대한민국에선 부동산이 최고라는 사람, 이제 곧 이 튤립 파동(이 말은 안 나오는 곳이 없다)때와 같은 거품이 싹 가라앉고 니들은 전부 한강행이라고 저주를 내리는 사람 등등 온갖 분야의 사람이 전부 모여 있구나, 정도만 느꼈다.
하긴, 나만 해도 평생 식당일만 하고 글만 썼던 사람이니 온갖 사람이 다 모인 코인판인 게 맞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정보(진짜 정보인지도 모를 정보)의 홍수속에서 부쩍 피곤해졌다. 불현듯 내가 헛수고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느렸다. 100미터를 23초에 뛰었고 1분에 윗몸 일으키기를 30개도 못 했다. 오래 달리기를 하면 점점 뒤쳐지다가 1등으로 달리는 애와 두 바퀴씩 거리 차이가 나곤 했다.
이렇게 몸만 느린 게 아니라 결정을 내리는 것도 느렸다. 좋은 기회가 와도 망설이고 한없이 생각하며 고민하느라 결국 기회를 놓치고 만 적이 많다. 스팀잇도 그랬다. 알자마자 가입한 게 아니라 며칠씩 검색하고 분위기를 살피다가 뒤늦게 가입했다.
어쩌면 내가 스팀잇도 너무 늦게 가입한 게 아닐까? 암호화폐도 너무 늦게 산 게 아닐까? 영화가 끝나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가방을 챙겨 일어나려는 때에 영화관에 들어간 게 아닐까?(이건 대체 무슨 비유인지 내가 써놓고도 의아하지만 그냥 둔다)
가뜩이나 요즘 스팀잇에 글 잘 쓰시는 뉴비분들이 많이 가입해 주눅이 드는 판에, 블로그에 뭘 쓸지 궁리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상황에 이런 고민까지 드니까 머릿속이 너무나도 복잡했다.
혼자서 머리를 막 쥐어뜯다가 슬그머니 휴대폰을 꺼내 쥐었다. 한숨을 한번 푹 쉬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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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는 암호화폐에 부정적이다. 주식도 하지 않는다. 본인이 보유한 회사 주식도 원하는 값까지 오르면 팔아치우려고 벼르고 있다(내가 보기엔 지금 팔아도 2배 이상 이득이니 당장 팔면 될 것 같지만, 본인은 더 오를 거라며 기다리는 중이다. 그럼 주식을 한다고 표현해야 하나 싶기도 한데 다른 주식은 없으니까 뭐, 안하는 것 같다)
나는 남자친구와 모든 일상을 공유한다. 내가 남자친구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물론이고 집에서 매 시간 뭘 하는지도 아는 것처럼, 남자친구도 내가 뭘 하고 노는지를 다 알고 있다.
내가 스팀잇을 시작한다고 처음 말했을 때 남자친구는 몹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 날이 추우니까 날 풀려서 일하러 가기 전까지만 해라, 시간은 잘 가겠네, 수익은 기대하지 마라, 같은 말을 했다.
생각보다 보상을 많이 받는다고 기뻐했을 때에도 남자친구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본인 이야기를 내 블로그에 가끔(실은 거의 매일) 쓴다고 했을 때에만 좀 민감하게 굴었을 뿐이다.
아마도 내가 블로그에다 자기 흉을 본다고 걱정한 모양이다. 여자친구 상대로 화투패를 숨기거나 사람 많은 오락실에서 파라파라 댄스를 췄단 거 말곤 좋은 이야기만 했는데 말이다.
말이 나와서 쓰는데 남자친구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얼마 전엔 나한테 자기 체크카드도 줬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로 사먹으라고 했다. 나는 신이 나서 좋은 날을 잡아 그 체크카드로 닭을 시켜먹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남자친구가 닭 먹고 있냐고 카톡을 보냈다.
헉 그걸 어떻게 알았지! 이 집에 나 몰래 CCTV라도 설치했나! 하고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카드를 쓸 때마다 남자친구 휴대폰으로 문자가 가는 거였다. 내 체크 카드엔 그 기능을 쓰지 않아서 그런 기능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뒤로도 남자친구는 내가 체크 카드를 쓸 때마다 순대국밥 맛있냐, 편의점에서 대체 얼마를 쓴 거야, 하고 카톡을 보냈다. 빅 브라더가 따로 없다고 느꼈다. 물론 엄청 고맙게 생각한다.
또 남자친구는 카카오페이지에서 공짜 캐시를 받을 때마다 내 소설을 사준다. 카카오페이지에서는 한 권의 소설을 1화 분량씩 몇십 편으로 나누어 팔고 있기 때문에 100원으로 1편을 살 수 있다. 거기에 내 소설이 여러 권 올라가 있는데 그걸 거의 다 사가고 있다. 정작 나는 공짜 캐시가 생기면 내 소설은 안 사고 남의 소설 사보기 바쁜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고민이 생길 때면 늘 그렇듯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그런데 남자친구의 반응이 의외였다. 당장 스팀잇 때려치우고 가지고 있는 쥐꼬리만한 암호화폐도 죄다 팔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 정확히 반대였다.
남자친구는 이런 때일수록 더 열심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스팀잇에 글을 올리라고 했다. 물론 10.3이오스도 가만히 놔두라는 것이다(에이다는 팔아버리라고 했지만 내가 51개밖에 없다고 하니 헛웃음 소리를 내면서 그냥 두라고 했다. 혹시라도 에이다 시세를 모를 분이 있을까봐 써둔다. 지금 0.2달러다)
나는 남자친구의 말이 놀랍다 못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암호화폐에 너무나도 부정적이라 단 1개의 암호화폐도 사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단톡방 지인들이 코인 얘기하는 게 싫어 알람도 꺼둔 남자친구가 그런 말을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나는 약간 주저하다가 물었다. 앞으로 암호화폐가 더 오를 것 같냐고, 이대로 망하지 않겠느냐고.
남자친구는 이제 너까지 그런 소릴 하느냐며 짜증을 좀 냈지만, 순순히 대답해줬다. 자기가 보기엔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제 시작한 판이니 지금 스팀 가격이 떨어졌다고 실망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때일수록 부지런히 스팀잇 활동을 해서 자리를 잡으라는 것이다.
또한 스팀달러를 받으면 자꾸 딴 암호화폐를 사지 말고 무조건 스팀파워를 올리라는 충고도 했다. 정 다른 걸 사고 싶다면 이더리움과 이오스는 괜찮은데 에이다는 제발 그만 사라고 했다. 왜 그렇게 에이다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당장은 더 살 생각이 없어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내가 내린 결정은 믿을 수 없지만, 남자친구의 말은 얼마든지 믿을 수 있다. 내가 지금껏 실제로 만난 사람들 중 제일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진 암호화폐가 단 1개도 없는 객관적인 입장, 또 암호화폐를 싫어하는 입장에서 그런 말을 해주니 더욱 믿음이 갔다. 설마하니 여자친구가 망하길 바라고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까.
...문득 표정 하나 안 바꾸고 태연하게 내 앞에서 화투패를 숨기던 남자친구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어쨌든 나는 남자친구를 믿는다. 덕분에 기분도 개운해졌다. 이렇게 블로그에 올릴 글감도 얻었으니 일석삼조다.
앞으로는 남자친구의 말대로 스팀달러를 받으면 무조건 스팀파워로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다만 지금은 말고 스팀달러가 올라서 비율이 좀 좋아지면 그때ㅜㅜ
그리고 수통 아닌 스달 릴레이와 @hoopy님께서 주신 총 9.9스팀달러는 원화로 인출해서 변기 고치는 데 써야 하니까 그것도 빼고. 일면식도 없는 뉴비에게 베풀어주신 마음에 다시금 감사드리며 또다시 얼렁뚱땅 길어진 오늘의 일기를 이만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