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마음 1

By @outis4103/27/2018kr

몇 년 전, 내가 어느 식당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다. 그 식당은 한식당(한정식이 아닌 그냥 한식)으로, 여러 음식들을 팔았는데 특히 된장찌개 맛이 끝내줬다. 애초에 그 식당을 알게 된 이유도 친구의 추천- 된장찌개가 그렇게 맛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나는 음식에 관해서는 질보다 양인 타입으로, 음식 맛을 잘 모른다. 어지간하면 다 맛있다고 느낀다. 정말 끔찍하게 맛이 없지 않는 한 양만 많으면 만족하고 먹는다.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처음으로 요리를 해줬다가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그때 내가 만든 요리는 제육볶음에 김치를 썰어 넣고 밥도 넣은 다음, 계란을 풀어 마무리한 일종의 볶음밥이었다. 남자친구는 맛있다면서 열심히 먹었지만 한 5년쯤 뒤에 사실 맛이 별로였다고 고백했다. 게다가 밥이 너무 질은 데다(나는 진밥을 좋아해서 밥할 때 물을 정량 이상으로 넣는다) 계란까지 풀어서 떡처럼 되어 약간 개밥 같은 비주얼이었다고도 덧붙였다.

내 딴에는 정말 맛있다고 생각해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요리가 개밥 같았다니! 나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무려 5년이 지나서야 겨우 진실을 고백한 남자친구에게 짠한 마음도 느꼈다.

왜냐하면 그때쯤엔 나도 내 요리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만든 요리 사진을 선별해서 넣을까 했지만 좀 많이 개밥 같은 사진들뿐이라 안 그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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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된장찌개가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을까 싶어 미심쩍은 마음으로 친구와 식당에 갔다. 그런데 맛을 잘 모르는 내가 먹기에도 된장찌개가 보통 맛있는 게 아니었다. 국물 맛이 어찌나 그윽하니 깊은지 한 입 떠먹을 때마다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정말 죄송하지만 어머니가 만든 된장찌개에선 한번도 느껴볼 수 없었던 맛이었다.

나는 그 식당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마침 알바 자릴 찾고 있었는데 그 식당에서도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며칠 뒤에 다시 식당에 가서 사장님과 짧은 면접 끝에 바로 알바로 채택되었다.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하루 6시간을 일하기로 한 것이다.

그 식당에선 사장님과 주방의 이모 두 분, 오전반 홀 서빙 이모, 오후반 홀 서빙 나, 이렇게 다섯 명이서 일했다. 시급은 얼마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최저시급보다는 몇 백 원 더 많았던 것 같다.

사장님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어서 평균적으로는 보통이었다. 식당 일에 그다지 열의가 없는 분이었다. 이미 식당을 오래 운영해와서 질렸기 때문인지, 다른 문제가 있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걸핏하면 식당을 나가 친구들의 가게를 방문해 놀거나 식당 안의 쪽방에서 TV를 보곤 했다.

그 탓에 홀 서빙 알바인 내가 서빙도 하고, 손님들의 예약 전화도 받고, 업체에 술 주문도 하고, 계산대에서 계산까지 도맡았다. 가끔은 사장님께 가게 열쇠를 받아 먼저 집으로 돌아간 사장님을 대신해 마감(뒷정리하고 가게 문 닫기)까지 했다.

반면 주방 이모 두 분은 정말 늘 좋은 분들이셨다. 딸뻘인 나를 예뻐해주셨고 홀에 일이 밀리면 주방에서 나와 도와주시기도 했다. 나 역시 홀이 한가하고 주방이 바빠지면 설거지 같은 걸 도와드리곤 했다. 특히 마감할 때는 홀 주방 나누지 않고 같이 일을 해치웠는데, 이모들과 나이 차이는 많이 났지만 마음이 잘 맞아 일을 휘리릭 마무리하고 서로를 보며 뿌듯해했던 기억이 난다.

오전반 홀 서빙 이모는 몇 번 만난 적이 없다. 그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해서, 오후 5시에 출근하는 나와는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몇 번 만나서 얼굴이 좀 익을 만할 때쯤 몸이 아프셔서 그만두셨기에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장님은 즉시 새로운 오전반 홀 서빙 이모를 구했다. 그러나 일 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며칠 만에 잘라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구했다. 하지만 두 번째로 구한 사람도 오래가지 않았다. 세 번째도 아마 금방 잘렸던 것 같다.

하루는 사장님이 나를 불러다놓고 부탁을 했다. 괜찮은 사람을 구할 때까지 나더러 오전부터 출근해 종일 일할 수 없겠냐는 거였다. 그러니까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하루에 거의 13시간을 일해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새로운 사람을 구하는 데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1,2주면 되겠다 싶어 그러겠다고 했다. 그곳에서 일한 지 몇 달 되어 일이 손에 익을 만큼 익기도 했고, 같이 일하는 주방 이모들도 좋았기에 종일 일할 자신이 있었다. 물론 일하는 시간이 2배 이상 느는 만큼 월급도 2배 이상 느리라는 계산도 없지는 않았다.

오전반 일은 청소와 주방의 음식 재료 다듬는 걸 돕는 일이 추가된 것 말곤 오후반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일찍 일어나는 게 좀 힘들긴 했다. 식당이 집이랑 먼 시내에 있어서 버스를 타고 30분 넘게 가야 도착했기 때문이다. 또 하루에 13시간을 일하다 보니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다른 걸 할 엄두가 안 난다는 점도 좀 슬펐다.

그래도 길어봤자 2주면 종일반 생활이 끝날 거라고 생각해서 버텼다. 그런데 사장님은 오전반 홀 서빙 이모를 뽑을 생각이 통 없는 듯했다.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고 한 달, 두 달이 훌쩍 지난 뒤에도 여전히 내가 오전 오후 서빙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가끔은 사장님 지인들이 술을 마시러 와서 자정이 훌쩍 넘도록 가게 문을 닫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주방 이모들을 먼저 보낸 뒤 나 혼자서 사장님 지인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퇴근을 포기하고 식당 안의 쪽방에서 잤다.

쪽방은 시멘트 바닥 위에 얆은 장판이 달랑 있는 형태라 무척 추웠다. 보일러를 돌리면 따뜻해지긴 했지만, 나 혼자 있는데 보일러를 켜기가 좀 그래서 켤 수 없었다. 그래도 몸이 워낙 피곤했기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새우처럼 동그랗게 말면 금세 잠이 왔다.

참, 국물 맛이 끝내줬던 된장찌개의 비결은 출근한 지 하루 만에 알게 되었다. 바로 된장찌개 육수 솥에다 쇠고기맛 다시다를 봉지째 때려붓는 거였다! 아 이래서 우리 엄마 된장찌개에선 이 맛이 안 났구나 하는 강렬한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 어머니는 다시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반 스푼만 넣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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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내용이 없는데 글을 주절주절 횡설수설 길게 쓰는 불치병 때문에 너무 길어져서 1,2편으로 나누었다. 2편은 무조건! 정말로! 반드시! 내일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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