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줘. 엄마 좋아.

By @naha6/28/2018kr

49개월 5살 큰아이는 아직 말을 못합니다. 두 살 때까지만 해도 그냥 말이 느리다고만 생각했고 전문가의 진단도 받아봤습니다. 전문가는 아이가 전혀 자폐가 아니며 그냥 느린 거라고 했습니다. 저를 닮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똑같은 큰아이였기에 '나도 말이 느렸나?' 싶어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넌 말이 느리진 않았어. 그냥 말을 안 했지.' 라고 하셔서 그냥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36개월이 지나도 말을 못하면 언어지연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병원에서 여러가지 검사를 했습니다. 혹시 모를 유전자 분석을 위한 피검사와, 뇌 촬영까지. 검사는 1박2일을 했고 아이는 발달지연 진단을 받았습니다. 자폐에서 딱 1점 모자랐지요. 그렇게 아이의 언어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유전자 검사는 미국에 피를 보내서 분석하는 것이고요, 3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검사를 했고, 비용은 본인부담 150정도 나왔습니다. 다행히 태아보험을 가입해뒀기에 대부분의 금액을 보험사에서 환급받았습니다. 말이 늦는 아이를 둔 부모님께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알려드립니다. 그 후로도 지난 1년 동안 주4회 언어치료를 했으며 비용은 모두 보험사에서 보장받고 있습니다. 동사무소에서 바우처 신청해서 치료센터에서도 별도로 언어치료를 받고 있는 것을 합하면 주 6회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더이상 아이를 봐줄 수 없다며 집으로 돌려보낸 날이 생각납니다. 작년이네요. 아내는 그날 펑펑 울었습니다. 어린이집에도 보낼 수 없는 아이. 그 아이의 치료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날이죠. 그렇게 시작한 아이는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엄마, 아빠 외에는 어떠한 말도 안 했던 아이가 '네'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엔 이름을 불렀을 때만 '네'를 했지만 점차 무언가를 말하면 '네'라고 대답하기까지 발전했습니다. 치료를 시작한 지 1년이 되가며 '물' '줘' '시러' '아냐' '좋아'도 하기 시작했고 '일이삼사오유치파구십'도 하더군요. 기분이 좋으면 '좋아'라고 했고, 하기 싫은 걸 시키면 '아냐' '시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두 단어를 잇는 말을 못했습니다.

지난주 일입니다. 저는 매일 하루 3번 아내와 통화를 하는데요, 점심 먹고 저녁 먹고 퇴근할 때 이렇게 세 번 전화합니다. (개발직이라 맨날 야근함.) 저녁을 먹고 전화를 했는데 아내가 울고 있는 겁니다. 저는 또 아내가 큰애 때문에 속상해서 운다고 짐작했습니다. 발달지연 진단을 받고 1년 동안 많이도 울었거든요. 아내가 울면서 하는 말 '자기야, 민준이가 말을 했어. '고기 줘'라고 문장으로 말했어. 우리 민준이가 문장으로 말했어.'라고 펑펑 울었습니다. 저도 가슴이 북받쳐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흐르네요.) 너무 기뻐서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그리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습니다. 친척들에게, 교회에...

어제는 백만년만에 칼퇴근을 했습니다. 아내가 많이 우울한 것 같아서였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가 또 울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민준이가 엄마 좋아라고 했어. 엄마 좋아.' 아~~~ 얼마나 기쁘던지요. '그냥 엄마 좋아가 아니라 '엄마~~ 좋아~~' 이렇게 부드럽게 말했어.'라며 좋아하는 아내. 1년의 언어치료가 이제야 빛을 보나 봅니다. 이제 말을 시작한 큰 아이. 너무 예뻐서 꼬옥 끌어안았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랑 잡기놀이 하자고 도망가는 아이. 어쩜 이렇게도 예쁜지요. 부모가 돼보지 않으면 어른이 될 수 없다더니 이제야 저도 아빠가 되어가나 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아들이 제게 아빠를 선물해줬거든요.

보통은 말이 늦은 아이는 말이 터지면 빵 터진다고들 합니다. 울 큰아이의 말이 빵 터져서 발달지연 꼬리표를 뗄 날이 곧 올 것 같습니다. 나중에 크면 '너 어렸을 때 말을 못해서 어린이집에도 못 보내고 엄마가 날마다 울었다'고 놀려줄 날을 기대해봅니다. 참, 26개월 둘째 아이는 말을 엄청 잘합니다. 알파벳과 가나다라까지 다 하고 숫자도 10까지 기수와 서수를 다 말합니다. 웬만한 동요도 다 외우고 있는데요, 아마 백여곡 정도 외우고 있는 것 같아요. 주위에서 천재 아니냐고 합니다. 둘째는 엄마를 닮았어요. 제 아내가 외우는 건 기가막히게 잘 하거든요. 저는 반대로 외우는 걸 못합니다. 참 잘 만났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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