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먹어] 힙스터를 위한 스웩푸드 - 을밀대 평양냉면

By @munginger7/13/2017kr

안녕하세요, 아직은 뉴비랄 수 있는 진저입니다.

매일매일이 별다를 것 없는 무료한 일상 속에 음식을 잘 챙겨 먹는 것만큼 큰 활력이 되는 요소는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때마다 그 때에 어울리는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은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하는 문화라고 봅니다.




요즘 같은 더운 날에 챙겨먹어야 할 음식이 있죠. 냉면, 냉모밀, 콩국수... 여름 이외의 계절엔 추워서 잘 먹지 못 하는 음식들이니 만큼 요즘 저는 거의 하루걸러 하루 찬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찬 음식 중 단연 제일은 냉면입니다.


다양한 냉면이 있지만 저는 그 중에도 평양냉면(이하 평냉)을 제일 좋아합니다. 평냉의 밍밍한 맛을 '걸레 빨아 놓은 듯한 국물맛'이라고 혹평하는 이도 많이 봤습니다. 그럴 수 있죠. 저도 처음 평냉을 접했을 때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가 처음 평냉을 먹어본 곳은 캄보디아의 '평양랭면관'이었습니다. 한 젓가락이면 끝나는 주먹 만한 양이 나오는데, 사실 냉면을 먹으러 갔다기보단 패키지 여행 상품의 일부였던 북한 여성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갔던 거였죠. 그 퍼포머들은 일생에 단 한 번 외국에 나가 살 기회를 잡기 위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가무를 연마한 미모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대개는 고위층 여식이라고 들었습니다).


캄보디아의 평냉은 그냥 그랬어요. 니맛도 내맛도 아닌 맛이라서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제 두 번째 평냉은 충무로의 필동면옥에서 만났습니다. 그때의 평냉은 북한의 평냉보단 제 입에 맞았지만 시중에 파는 새콤달콤한 냉면보다 맛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제가 평냉의 맛을 알게 된 것은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다니면서부터였습니다. 회사 부근에 을밀대 본점이 있었어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 취재를 다녀오고 보니 늦은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때마침 같은 부의 선배도 아직 식사 전이라더군요. 냉면을 먹자고 간 집이 을밀대였습니다. 저는 그 집이 평냉하는 집인 줄도 모르고 따라갔는데 식사가 나오고 보니 제가 시킨 게 다름 아닌 평냉이더군요. '아 괜히 오자 했다' 싶었는데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들고 입에 넣어 적당히 두께로 뽑아낸 기계식 면을 씹어 보니 아주 부드러웠습니다. 국물도 진해서 약간 곰국 같은 느낌이었는데 국물이 목에서 넘어가고서도 한동안 감칠맛이 입안을 맴돌았습니다. 맛이 좋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맛있는 평양냉면 = 을밀대'라는 공식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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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 마니아인 저는 지난 주말에도 을밀대에 갔습니다. 염리동에 있는 본점은 아니고 일산 대화동에 있는 지점에 갔어요. 북조선 스웩 넘치는 서체로 을밀대라고 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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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 넘어서 도착했기에 별로 안 기다릴 거라 생각했는데 제 앞에 12팀이 계시더라구요. 번호표 받고서 제 번호가 호명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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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평냉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중입니다. 본점은 정말 아이폰 새 버전 론칭하는 날처럼 줄을 겁나게 길게 서 있는데..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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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평냉을 시켰습니다. 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십시오. 살얼음 동동 떠있는 국물에 정갈하게 돌돌 말아 담은 면, 중앙에서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오이, 무절임 등의 고명, 적당히 익혀 붉은 빛을 간직한 고기. 모르긴 몰라도 주방에서 요리하시는 분이 신경 써서 담았을 겁니다.

수육, 녹두전, 비빔냉면도 있지만 저는 여기 국물을 마시러 왔기에.... 이것에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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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식으로 잘도 뽑아낸 두툼한 메밀면. 쫄깃쫄깃하고도 부드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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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까지 단숨에 후루룩 마셔 버렸습니다. 아랍어 같은 끊어진 면 몇 가닥만 남았네요. 거의 스무디 마시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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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 먹고 이쑤시겠다고 이쑤시개도 하나 집어들어 봤습니다. 이쑤시개마저도 스웩 넘칩니다.




냉면 즐기기 이렇게 좋은 계절에 다들 뭣들 하고 계신가요? 어서 지갑을 들고 을밀대에 가십쇼.

을밀대 평양냉면이 여타의 냉면의 비해 가격이 많이 나가는 게 사실입니다. 허나 어느 진귀한 재료를 넣고 만들었는지 모를 감칠맛 나는 국물을 먹기 위해서라면 저는 일만일천원을 호가하는 금액도 기꺼이 지불할 수 있어요.

한편으론 제가 국물 내는 기술이라도 어떻게 좀 배워서... 상도덕에 어긋나지 않도록 딴 동네에서 팔 수는 없...을....런..지.... 헛된 희망을 품어봅니다.


제 최애평냉 을밀대 시식기 어떠셨는지요. 앞으로도 더 맛있고 재밌는 포스팅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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