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인간이가?

By @megaspore8/10/2018kr

‘너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사람이야.’ 라는 느낌을 받고 살았다.

‘너는 여기에 없으면 더 좋았을 사람이야.’ 라는 느낌을 받고 살았다.

그러한 느낌은 어머니가 내게 전해준 스토리에서, 또 부모님의 행동과 말에서 받았고, 학교 급우의 나에 대한 행동과 말에서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은, 실제로 그러한 느낌(너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을 전해준 것일수도 있고

어쩌면, 딱히 그런 의미가 아니었던 것을 감수성 예민하던, 뇌가 가장 말랑하던 시절에 내가 오버해서 과다 의미복용(?) 했을 수도 있다.

내 말랑하던 뇌에 한번(어쩌면 여러번)그런 강한 ‘느낌’의 시스템이 탑재되고 나니 나는 이제 내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다 이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세상(나)은 굉장히 피곤해졌다.

머리가 크고 나서 발견한 것은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행동과 말들이 꼭 그런 의미는 아니었을 수 있다는 것. 설사 정말 그런 의미였다 할지라도 꼭 ‘그들의 말=진실’은 아니었다는 것.

하지만 난 그때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였고 덕분에 오랜 세월을 굉장히 쓸데없이 피곤하게 살았다. 아직 상당히(?) 젊은 이 나이에 이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타인에게(특히 어린 아이 혹은 상처받은 어른아이에게)내가 보여주는 눈빛과 행동과 말이 얼마나 위력이 큰 것인지 느끼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나 자신을 사랑하자’ 어쩌고 하지만(바로 이 전 글에서도 난 이렇게 나불거렸다) 아무도 인정 안 해주는데 나 혼자만 내 자신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나 혹은 부모에 버금가는 정신적 지주, 혹은 연인의 사랑, 친구의 우정, 그가 속한 집단의 지지와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느끼고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비록 우리 주위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나 말 등으로 우리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을지라도 최소한 우리는 그러한 상처를 남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

남이 아프다고 내가 덜 아프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파봤기에 다른 이는 그렇게 안 아팠으면 하는 선한 마음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한다.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알려준 중요한 사실은 ‘모든 것은 바라보는 그대로 변한다’는 것이다.

은연중에 ‘니가 인간이가?(법륜 스님 법문 중)’ 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면 그는 정말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나에게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 받으며 잘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의 법칙을 생각해보자.

“모든 것은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변한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와 여러가지 경험들로 너무나 많은 편견과 선입견을 타인에게 씌우는 것은 아닌지.

기억하자.
우리가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고, 그렇게 대할수록 그는 정말 그렇게 우리를 대한다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 완전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나혼자 잘먹고 잘 살아서는 충분치 않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생겨먹은게 원래부터 그런듯 싶다. 모두가 으쌰으쌰 행복해야 비로소 진한 행복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내가 싫어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그를 그런 눈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살펴볼만 하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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