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6일째 육아 중 : 늦게 자는 날
2018.07.24
태어난 지 __1186__일째.
"안 잔다. 안 자."
방문을 휙 열고 나온 둥이 엄마는 잠을 겨우 버티고 선 둥이 아빠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둥이 엄마는 둥이 아빠의 눈길조차 피했다. 11시 30분이 넘었다.
욕실로 들어 온 둥이 엄마는 일단 칫솔에 치약을 푹 짜서는 입에 물고 변기에 앉았다.
"하유...."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금방 후회했다.
'둥이 아빠는 애들 재우고 나올 날 기다리고 있던 건데...아까 애들 씻기자고 했을 때부터 자고 싶다고 했었던 사람한테....'
그렇지만 둥이 엄마의 칫솔질에는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낮잠을 잤어도 목욕하고 나면 일찍 잘 줄 알았는데...! 뭘 할 수가 없잖아.'
둥이 엄마는 입을 헹구고 코도 탱탱 풀었다.
'코가 막힌다고 코를 풀 수가 있나! 애 재우면서 내가 잠이 들어야 겨우 애들이 자고! 난 자고 싶어서 자는 것도 아닌데. 재울 때 조금 자다 일어난 것 때문에 2시, 3시 넘어야 겨우 잠이 드는데... 둥이 아빠는 잠 오는 걸 억지로 버티면서 나 기다려주고 있고... 잠 온다는 사람은 잠도 안 재워주면서 자꾸 시간만 가는데... 얘는 눈만 끔뻑끔뻑거리고....왜 안 자는 거야!'
둥이 엄마는 코를 풀며 방문을 열고 나오기 직전에 속으로 했던 말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오늘 밤에는 꼭 씻으려고 마음먹었는데! 씻고 싶을 때 씻을 수도 없어.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해... 안돼. 오늘은 꼭 씻어야 해.'
질끈 묶어 올린 머리끈을 풀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TV 소리가 들렸다. 둥이 엄마는 둥이 아빠가 잠들지 않은 아이에게 가봤는지 안 가봤는지 궁금해졌다. 그렇지 않으면 멀뚱히 눈을 뜬 아이를 두고 둥이 엄마가 문을 휙 열고 나온 뒤에 잠들지 않았던 아이가 거실로 나왔는지 나오지 않았는지 가늠이 안 됐다.
둥이 엄마는 머리카락에 샴푸를 바르고 벅벅 머리를 긁었다. 있는 힘껏 머리를 긁어댔다.
'아유! 아유! 정말!'
한동안 찐득하게 남아있는 것 같던 땀들이 거품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낮잠을 2시간 넘게 잤잖아. 낮잠 자고 일어난 지 대여섯 시간? 정도밖에 안 됐으니까 잠이 안 오겠지. 잠이 안 올 수도 있지. 아까 낮잠 재웠을 때 난 꽤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잖아. 그래놓고 인제 와서...'
한참을 물로 거품을 씻겨내고 또 씻겨냈다.
'목욕하면 그냥 곯아떨어질 거로 생각한 건 순전 내 생각이었잖아. 애는 잠이 안 올 수도 있는 거지. 안 잔다고 그냥 냅두고 나오고... 둥이 아빠한테는 눈길 한번 안 주고... 아....'
머리카락이 한 움큼, 또 한 움큼 빠져 배수구를 막았다. 욕조에 참방참방 물이 찬다. 배수구에서 머리카락 뭉치를 빼니 물이 슈욱 하고 빠진다.
둥이 엄마가 머리에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 내는 동안 밖이 조용해진 것을 알아차렸다. 욕실 문을 열고 나오니 불은 그대로 켜져 있고 TV와 에어컨은 꺼져있었다. 둥이 아빠가 아이를 재우러 들어간 것 같았다.
젖은 머리를 말리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저저번달에 한 펌도 많이 풀려버렸다.
'자고 있을까. 아직 잠들지 않은 걸까.'
머리 감으면서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갈아입는 김에 속옷까지 모두 갈아입었다. 젖은 옷에서 쉬어빠진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젖은 수건과 옷들을 세탁기에 넣으러 가는데 안방 문이 딸각거렸다.
'아직 안 자는구나.'
눈에 보이는 것들만 대충 마무리 해두고 로션을 바르려고 하는데 안방 문이 조금 열렸다 닫혔다. 그리고 다시 살짝 열렸다.
거실 불을 끄고 열려 있는 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잠들지 않은 둘째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둥이 엄마가 들어오니 둘째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둥이 엄마 자리에 휙 엎드렸다. 둥이 엄마는 드라이기 열기에 뜨거워진 몸이 식질 않는 것 같았다. 둘째가 여전히 잠을 자고 있지 않다니 갑자기 더욱 속이 갑갑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려고 누운 둥이 아빠에게 에어컨 리모컨을 넘겨받고 선풍기 앞에 털썩 앉았다. 둥이 엄마의 눈치를 보듯 둥이 엄마의 자리에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던 둘째는 그제야 둥이 엄마 가까이에 왔다. 둘째는 엎드려서 괜히 둥이 엄마의 무릎을 찔렀다. 둥이 엄마는 일부러 둘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둘째를 보니 잠이 오는 눈이었다.
'안 자고 기다린 건가...아님 재워달라는 말인가... 곧 자겠네.'
둥이 엄마는 둘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둘째는 머리를 쓰다듬는 쪽으로 뒹굴 또 엄마 손이 있는 쪽으로 뒹굴 돌면서 무거운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목욕한 둘째에게서 좋은 향기가 퍼졌다. 둥이 엄마는 괜히 둘째의 손을 만져보았다. 보드랍고 작은 손. 보송보송한 다섯 손가락.
'그저 손가락, 발가락 5개씩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둥이 엄마는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할 때 "손가락, 발가락 5개씩 정상입니다." 하고 간호사님께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둥이 엄마는 둘째의 배를 부드럽게 문질러 주었다. 왠지 그렇게 해주면 잠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둘째는 둥이 엄마 손길에 스르륵 잠이 들었다. 둥이 엄마는 둘째를 제 자리에 눕혀 두고 둥이 아빠 옆에 누웠다.
등을 보이고 자는 둥이 아빠를 끌어안았다. 기척을 느낀 둥이 아빠가 둥이 엄마의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둥이 엄마는 '아까는 미안했어요.' 라는 마음을 담아 "사랑해"라고 속삭였다. 둥이 아빠는 몸을 돌려 둥이 엄마를 바라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둥이 엄마를 더 꽉 끌어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