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들의 봉인해제 (feat 99. 헌팅을 하려거든 바지를 입으세요-)

By @kael952/2/2018kr-newbie

어느덧 새해 2월이 다가왔다. 사실, 새해에 별다른 감흥은 없다.
마냥 10대일 것 같았던 내가 어느새 20대가 되어 술을 마시고, 또 어느새 20대 중반이라는 게......
중반이라니 중반이라니!!! 한 것도 없는데 중반이라니!!!

10대에 꿈꿨던 나의 20대 모습은 지금과 너무나도 달라 조금은 슬프다.
멋진 작가, 여유를 만끽하는 돈 많은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2017년 12월 31일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2018년 1월 1일이 되기 60초 전, 그러니까 2017.12.31일 11시 59분쯤 술집 내부에서 카운트다운이 들어갔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손님들이 외쳤다.

"... 3! 2! 1! 얘들아! 많이 마셔라!" "마셔마셔! 먹고 뒤져!" "네발로 기어가!"

그리고 물밀듯이 들어오는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고3들. 아니 20살들. 아니 고3이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스무 살들.
광경이 재밌었다. 술집 밖에서 대기 타고 있다가 카운트다운이 끝나니 정말 물밀듯 우르르르르.
나도 저랬었지. 추억이 돋았다.
나도 스무 살 되기 10분 전부터 민증을 만지작거리며 술집에 들어갈 카운트다운을 세었었다.
시간 참 빠르구나. 하루는 긴 것 같은데, 1년은 왜이리 빠른지 모르겠다.

내 주량을 몰라서 그냥 막 부어 마시던 지난 날들이 생각났다.
처음 술병이 제대로 걸려 응급실에 갈뻔한 철없던 날들.
뭐 그렇다고 딱히 지금은 안 그런 것도 아님. 그러고 보면 나도 아직 어른은 아니다.

같이 술을 마신 친구들은 흡연자였고 담배를 피우러 가겠다며 자리를 일어났다.
매번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게 심심해서 나도 흡연실에 가겠다고 일어났다.
그리고 2018년 1월 1일 흡연실 안에는 고3 신분인 스무 살들이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한겨울에 미니스커트와 얇은 살색 스타킹을 신고, 입에선 거친 욕을 해대는 그 아이들이 곱게 보이진 않았다.

"x발x발 오늘 우리 봉인해제다! 얼마나 마실래?! 먹고 뒤져뒤져~!"

...저러다가 진짜 뒤진다. 술이 사람을 마신다. 하지만 스무 살 땐 그걸 모르지. 알아도 모르지.

몇몇의 남자애들은

"야 오늘부터 매일같이 엠티각이다. 떡쳐떡각!"

...학생 티도 못 벗은 아가들이 이런 소릴 한다는 게 웃겼다. 다들 개념이 없어 보였지만 그래. 그 개념 것도 스무살의 특권이다.

1월이 경찰서가 바쁜 날 중 하나라는데,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헌팅 술집으로 유명한 호프집에서 오래 알바를 해왔기 때문에. 이맘때쯤 경찰분들을 알바하면서 제일 많이 본다.
주량을 몰라 마시다가 정신을 잃은 스무 살, 스무 살끼리 싸움 나는 스무 살. 나대는 스무 살들이 싫은 스물한 살과의 싸움 등.
접시가 제일 많이 깨지는 날이다. 토를 제일 많이 치우는 날이다. 경찰들을 제일 많이 보는 날이다.

작년 1월 1일 호프집 알바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손님(스무 살)들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응급실에 실려간 스무 살이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남자애 한 명이 만취가 되었는데 멈추지 않고 더 마시다가 결국 그 남자애는 쓰러졌다.
아예 블랙아웃. 정신을 잃고 구급차를 불렀다. 웃긴 건 같이 마시던 친구들은 도망가고 없음.
그 남자애의 엄마가 급히 술집으로 들어왔고 정신을 못 차리는 아들을 껴안고 사장님에게 욕을 시전했다.

"왜 우리 아들이 이렇게 될 때까지 술을 팔았습니까!!!" 하면서.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남자애는 정신을 잃고 있었으면서도 토를 멈추지 않았다. 분명 눈도 못 뜨고 몸도 못 가누는데 입에서 토는 계속해서 줄줄줄 흐름. 그의 엄마는 계속해서 사장님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결국 경찰과 구급차가 동시에 왔다.

두 번째는, (내가 일했던 곳은 헌팅 술집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남자애들은 헌팅을 하고 여자애들은 헌팅을 기다린다.
난 이것을 마냥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성을 만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니까.
아무튼, 오빠들과 헌팅을 한 스무 살의 여자애 두 명이 있었는데 역시나 만취가 되었다.
위에 남자애처럼 정신을 잃은 정도는 아니고, 몸을 흐느적거리며 잘 못 가누는 정도.
오빠들은 여자애들을 데리고 스킨십을 하기 시작했다. 다리 사이를 만지는 것부터 키스까지. 취한 여자애들은 마냥 좋다고 받아들이고.
문제는 여자애들의 팬티와 브라가 거의 다 보였다는 것. 그리고 모든 손님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이 그것을 보고 있었다는 것.
우리는 아무도 그 남자들을 말리지 않는다. 여자애들도 좋다고 달려드니까.
그러나 술이 깨도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을까? 의문이다.
결국 위의 여자아이들은 오빠들의 등에 들어 메어져서 술집을 나갔다. 어디에 갔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개인의 자유겠지만, 첫 경험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술에 취해 자기가 잔 남자가 누군지도 모를 테니.
그 여자애들이 등에 메어져 나갈 땐 치마가 완전히 허리로 올라갔고 이에 맞춰서 팬티도 완전히 보였다.
어느 누가 자신의 팬티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을까. 그리고 그 여자애는 팬티가 보인 줄도 모르겠지. 그러니 그 다음날도 술을 마시러 왔을 테고.
자기 자신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스무 살들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헌팅을 하려거든 바지를 입으세요.'

나는 술을 마시고 새벽 다섯시쯤 술집을 나왔는데, 거리에는 저녁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바글바글 시장인 줄 알았다.
역시나 빤쓰를 다 내놓은 채 쓰러져있는 여자애들도 있었고 비틀거리며 모텔에 가자 싫다 하며 싸우고 있는 연인도 있었고 당연히 싸움 난 무리들도 있었다.
그 정신없는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강하게 치고 지나갔다. 내가 비틀거릴 정도로.
그리고 들려오는 욕설 "아이 시팔! 내가 지나간다고! 좀 꺼지라고!"
돌아보니 역시나 스무 살.
하아아... 평소 같았음 그러려니 넘어갔을 테지만 허세에 찌든 그 여자아이의 표정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기. 방금 뭐라고 했어요?"

내 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그 여자아이는 인사불성이 되어 아무에게나 욕지거리를 하기 바빴다. 대신 그 친구가 내게 다가와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나는 기분이 나빠 무언가를 더 말하려 하는데 내 친구가 내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 너도 스무 살 되고 싶어?"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자칫 나도 스무 살이 될뻔했구나.

물론 이런 스무 살들만 있는게 아니란걸 안다.
그러나 어찌됐든 나는 이런 스무 살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스무 살 땐 술을 많이 마셔야 멋있는 게 아니다. 적당히 마실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의 시비에 맞받아쳐야 멋있는 게 아니다. 적당히 피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나도 그랬고 저들도 그렇듯 우리의 스무 살은 모른다.
아, 알바들에게 갑이 된 듯 막말하면 안된다. 곧 너희가 알바가 될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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