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 긴 글 주의 ※] 심리상담만 3년을 받았던 내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

By @hyunyoa11/1/2019sct


심리상담만 3년을 받았던 내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

"어떻게 그렇게 건강해 ?"



영화 「82년생 김지영」 속, 김지영은 복직을 권유한 상사에게 찾아가 이렇게 얘기한다.

"죄송하지만, 저 못 할 것 같아요. 정신과 다니거든요."

그러자 상사는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없이 답한다.

"현대인 중에 정신과 안 다니는 사람 있나?"


나는 이 장면에서 두 갈래의 감사를 느꼈다. 첫 번째는 대사였고, 두 번째는 그게 무슨 대수냐는 그녀의 표정이었다. 언젠가 선배가 되었을 때, 후배가 이렇게 다가와 말한다면 꼭 저렇게 대답해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상담 선생님이 떠올랐다. 대학 내 심리상담센터에서 나를 근 3년 간 지켜봐 주었던 심리 상담 선생님. 작년, 휴학을 하는 동안 회사도 다녔기에 상담을 받지 못했다. 학교 심리상담센터는 10시부터 5시, 즉 출근시간에 딱 맞물린 기간만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20살의 끝부터 22살의 끝까지, 2년간 튼튼히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웠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한 시간씩 상담을 받았으므로 이제 나는 건강히 잘 지낼 수 있다고. 그런데 2019년 3월, 복학하고 이제껏 내게 없었던 병이 생겼다. 앉지 못하는 병이었다. 강의실에 앉아있을 때는 교수가 있든 말든 탈출하고 싶었고, 실제로 수업 중 자리를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으면 또한 밖으로 나가고 싶어 근질거렸다. 당연히 어떤 과제도 할 수 없었다. 책도 읽을 수 없었으며, 그리 좋아하던 영화 한 편도 보지 못했다.


3월이 개강이었으니 두 달간 그래도 꾸역꾸역 버텼건만 심리 상담을 다시 시작하자 결심한 건 이 일 때문이었다. 그 날은 정말 중요한 과제를 하기 위해 카페에 가자 결심한 날이었다. (늘 그랬으나) 도망치지 않기 위해 가장 비싼 커피를 시켰는데, 커피가 나오자마자 한 입에 털어 넣고 노트북을 닫았다.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절정의 순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주위에서는 빠르게 키보드를 치는 마찰음이 들렸다. 나는 노트북을 닫은 채 그 키보드음을 들으면서, 무력함과 나약함을 느꼈다. 또한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 오후 4시의, 학교 근처 카페. 점점 머리가 옥죄는 듯한 느낌까지 들자 그 길로 나와 빠르게 심리상담센터로 향했다. 5시가 마감이었으니까, 지금 얼른 가서 빨리 얘기해야 해. 오늘 가지 않으면 주말을 버티지 못할 거야.



3월부터 앉지 못하는 병에 걸렸음을 짐작했으면서도 재방문을 꺼렸던 이유는, 상담 선생님이 자신의 능력을 비하할까 우려스러운 마음 때문이었다. 나를 2년간 상담했는데 1년 만에 회복되지 못하고 다시 상담을 찾는다는 그 사실이 선생님을 가라앉게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당연히 아니었고, 되레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선생님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올 10월까지 상담을 받았다. 상담이 끝난 지금 당시 앉지 못했던 병에 이유를 더해보자면, 그때의 나는 나의 모든 일상이 다 저주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새치기를 하는 아저씨에게 나는 직접적으로 나서 화를 냈고, 지하철 내에서 혐오스러운 말을 하는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대들었다. 당연히 얘기했어야 할 일이지만 그밖에도 모든 것을 지나치지 못했다. 모든 세상, 모든 사람이 미워 보였다. 홀로 유럽 여행을 하며 기분 나빴던 일을 몽땅 참았던 응어리가 한국에 와서야 터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총대를 메고 한바탕 낯선 이들에게 에너지를 쏟고 나면 탈진과 고갈이 심각하게 찾아왔다. 어떤 일을 할 수도 없었고, 그러면서도 자꾸만 주변의 일에 눈길이 갔다. 짜증이 이는 상황들. 나서야만 하는 사람들. 그렇게 다시 싸우면 정작 내 일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었다. 모든 곳에서 도망가 홀로 있고 싶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복학을 해야만 하는 일정과 맞물린 삶이 찾아왔다. 그 엇갈림 때문에 어떤 업무도 집중할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당시의 나는 어떤 장소에도 안착할 수 없었으니 환상의 장소로만 도피했다. 자고, 자고, 또 자는 일들. 철저히 혼자가 될 수 있는 수면에서 행복을 찾았다.


세 번째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아주 건강히, 이제는 정말 다시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지 않을 만큼 건강히 생활하자 고군분투했다. 너무 힘든 날,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셔야만 풀 것 같은 날에는 되레 휴대폰을 껐다. 억지로 글자를 눈에 담거나 아니라면 스팀잇에 올릴 글을 썼다. 커다란 인터넷의 망을 타고 들어와 나를 발견하고, 내 글을 읽어주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한 분 한 분이 신기했다. 영화나 독서로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함이나 슬픔이 올 때면 아주 원대한 목표를 끼워 넣었다. 동화 작가가 될 거야. 일 년 안에. 못 이루든 아니든 어쨌거나 작품 하나는 완성하자는 마음을 가졌다. 물론 지금 이 에세이를 쓸 시간에 동화를 마무리 지어야하나, 불현듯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 있었던 일 덕분이다.



취업 실전 전략이라는 수업이 끝나고, 빈 강의실에 교수님과 다섯 명의 학생이 모여 앉았다. 돌아가며 소수가 상담을 받는 시간이었다. 그저 교수님에게 개별적인 취업 팁만 받고 끝날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저마다 가지고 있는 허들을 용기 내어 터놓으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허들을 듣고 다른 학생들이 직접 조언을 해보자는 말을 더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뜬금없이 내 약점을 얘기하라고?' 싶었으나 오히려 모르는 이들이기에 더욱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저는 영어를 너무 못해요. 분명히 스무 살이 되면 한국이 세계 공용어가 될 줄 알았는데, 그거 믿고 살다가 스물넷이 된 지금까지 영어를 못해서 졸업까지 못 하게 생겼네요." 웃픈 말이었는데 학우들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이 물었다. "혹시 영어를 싫어하시나요?" 나는, "아뇨. 그건 아닌데. 듣기는 잘해요. 말읽쓰만 못할 뿐……."이라 답했다. 그러자 나를 제외한 네 명이 손뼉을 치며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듣기만 잘하면 나머지는 금방일 거예요. 엄청 쉬울 걸요?" 라면서 갑자기 나를 드높여주기 시작했다. 입에 발린 말(?) 임을 알고 있음에도 단기간에 힐링을 잔뜩 받은 나의 자존감이 바오바브나무처럼 순식간에 자라났다.


'이 분들의 고민을 내가 타파해 줄 거야! 응원해 줄 거야!' 인류애를 느낀 나는 이렇게 다짐하며 의자를 똑바로 끌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정성스레 답하고 듣던 와중, 한 학우분이 입을 열었다. "저는 보통인 삶을 살았어요. 대외활동도 보통, 교내 활동도 보통. 보통의 자소서만 쓰고 있어서 멘탈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너무 평범한 사람 같아서." 나는 곰곰이 생각하고, 또 말실수를 할까 조마조마하며 천천히 말했다.

"보통이라는 말은 가치 함축적인 단어잖아요. 남들이 보기에는 보통 이상의 일을 잘 해내고 있는데, 너무 완벽하고 싶다는 마음에 자기를 보통이라는 말로 치환해버리는 건 아닐까요. 충분히 보통 이상이신걸요."

학우분이 눈을 매만졌다. 놀라는 맘과 동시에 이유 모르게 심장이 쿡쿡 지르는 느낌을 받았다. 토닥거리는 에세이가 넘쳐나는 시대인 건, 정말 그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구나. 에세이를 쓰는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위로와 공감의 힘을 깨달았다. 받으면서, 그리고 주면서도. 심리상담과 깊은 에세이로 단단히 다져진 나는 이후로도 몇 번의 말을 했다. 혹여나 상처를 받으실까 봐, 내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위해 말을 골라내면서. 그러자 한 분이 나를 가리키며 "정말 멘탈이 강하신 분 같아요. 정말 존경스러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분들이 맞아, 맞아. 하며 엄지를 들여보였다. 엥? 설탕 액정 멘탈 대회에 나가면 1등 할 것 같은 내 정신이, 낯선 이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도 놀람에 한몫을 더했다. 저번 주에는 이제야 말을 튼 동기가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진짜 건강한 것 같아."라는 말. 내가? 내가 건강하다고? 홀로 끄적거리며 나는 잘할 수 있다, 나는 건강하다. 라고 읊조린 게 아닌 진짜 타인에게 들은 말이었다. 게다가 그간 대외활동을 하며 가면을 써냈던 내 거짓 모습도 아니었다. 정말 꾸미지 않은 내 모습으로 받은 칭찬이었다. "넌 앞으로 뭐 할 거야?"라 묻는 친구에게 "그건 왜 궁금해. 네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라 답한 것 뿐이었는데. 사실 욕먹을 각오 하고 내뱉은 진심이었는데 고맙다는 반응에 참 당혹스러웠댔다.


그리고 오늘 이름도 모르는 네 명에게 나의 치부를 환히 깠음에도 멘탈 칭찬을 받았다니. 인정받는 내 모습이 괜스레 벅찼다. 정말 이제 건강해지고 있나 보다. 가면을 쓰지 않은 내 모습을 겁 먹지 않고 보일 수 있다는 게. 꾸밈 없이 사람을 대하고, 인류애가 점점 생겨나고 있는 것 역시도. 그러니 이제는 베풀어야겠다. 작가님들의 글로 받았던 위로와 상담선생님께 받았던 토닥임을 전파하면서 세상을 바꾸어나가야지. 건강한 사람이 가득가득해지는 날이 올 때까지!

written by @hyuny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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