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과 틀린 것, 힘든 일과 어려운 일

By @garden.park5/8/2018kr

#1
나는 글을 쓸 때 내 기준에서는 독자를 꽤나 배려하는 편이다. 특정 '나이나 관심사, 성별, 지적 수준'을 기준으로 다양하게 독자를 가정하고 누가 읽어도 내 의사 전달이 되게끔 문장을 구성하여 글을 쓴다.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정확히 판단되지 않는다. 반면, 말을 할 때 나는 상대를 썩 배려하지 않은 어휘를 선택한다. 상대가 내 의사를 제대로 알아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내가 쓰고 싶은 단어로 말을 구성한다. 이는 일종의 패러프레이징을 유도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처음에 내 기준으로 문장을 말하고 상대가 굳이 의미를 다시 물으면 같은 내용을 조금 다르게 말해주고 그래도 못 알아들은 기색이면 같은 의사를 또 다른 말로 전해준다. 이 과정에서 나는 개인적인 만족감과 약간 변태적인 성취감을 느낀다. (두 감정은 상대방이 보인 몰이해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고 '내가 여러 번의 패러프레이징을 수행함'에 대한 것이다.) 물론 대단히 공적인 자리나 의사 전달이 빠르고 확실해야하는 자리에서 이런 짓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 개인적 취미를 행사해도 될만큼 가볍고 편안한 자리에서 한다.

#2
이처럼 단어의 사용에 비교적 민감한 태도를 가지는 내가 가장 흔하게 위화감을 느끼는 단어들이 있다.

힘들다와 어렵다
다르다와 틀리다

얘네들이다. 시험 문제로 그 차이를 구별하라고 하면 못 할 사람은 없지만 실생활에서 이 말들은 상당히 혼용된다.

"엄마 이거 지난 번에 내가 사오라고 한 거랑 맛이 틀린데?"

이 정도의 발화에서 "그럴 때는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를 써야지"라고 지적을 했다가는 씹선비 of 씹선비로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다. 물론 나도 저런 상황의 저 말에 위화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다음을 보자.

(여중생끼리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서)"야 너 뭐야, 지난 번이랑 말이 틀리잖아"

나는 이런 발화에서는 교정을 해주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지난 번의 말과 이번의 말이 서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이유는 단어의 오용을 고쳐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르다'를 써야하는 상황에 '틀리다'를 쓰는 사례가 굉장히 많은 현실에서 (말의 쓰임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자주 '틀리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틀리다고 말하는 풍조'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혼용은 그러한 세태에 약간이라도 책임을 가지고 있다.

틀린 것은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시험 문제를 틀려놓고 "이 문제는 틀렸네"를 "이 문제는 다르네"라고 말할 수 없다. 틀린 것은 틀린 것으로 남는데, 다른 것은 틀린 것으로 만들어 간다. 관념적으로 '틀림과 다름'을 구별하는 문제와 단어를 혼용하는 문제를 동일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름의 인정'에 인색해지고 '틀림의 주장'이 강해지는 현대 사회에 두 단어의 혼용이 주는 영향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3
힘들다와 어렵다는 위의 두 단어처럼 서로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 이번엔 '혼용에 대한 경계'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두 단어에 대한 개인적인 구별을 말하려고 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 간의 내 삶은 미시경제학처럼 어려웠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나에게 미시경제학이 왜 어려웠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 학문과 관련 지식들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로 느껴졌다. 현재 대학교의 전공 수업에까지도 '진정한 이해'가 존재하는 장소가 몇이나 된다고 여기는가? '진정한 이해의 성취'가 기준이 아니고 '진정한 이해를 위한 시도'가 기준이지만 거의 없다. 시험 점수를 위해서는 암기를 하면 된다. 수업 열심히 듣고 모르면 질문하고 이해가 안 되면 패턴을 암기하면 된다. 이것이 점수를 받는 비법 아닌 비법이다. 수능은 그렇지 않은가? 수능이야말로 패턴별 암기 공부법에 대한 평가, 그 자체이다. 나는 지겨워서 어려웠다.

어렵다

  1. 하기가 까다로워 힘에 겹다
  2. 겪게 되는 곤란이나 시련이 많다.
  3. 말이나 글이 이해하기에 까다롭다.

4,5,6번의 뜻은 차치하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 미시경제학은 3번의 뜻을 사용하기에도 충분하지만 나에게는 2번에 가까웠다. 왜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것은 나에게 수능이 마지막이었다.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을 억지로 해야한다'는)정신적 어려움은 2번의 의미이다. 미시경제학은 경제학 커리큘럼에서 필수이자 기초로 분류되는데 저기서부터 시작해서 그 뒤로 전부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다이어트는 어려울까? 어렵다의 1,2번 뜻을 사용한다면 아주 틀리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다이어트는 어려운 일이 아니고 힘든 일이다. 내 기준은 이렇다.

자제력과 의지가 관건인 일은 힘들다와 관계가 있음.
자질과 천성이 관건인 일은 어렵다에(1,2,3번 뜻 광의로) 연결 시킴.

절대적이지는 않고 크게 나누면 저런 기준을 사용한다. 나는 다이어트를 '자연스럽게' 하지 않았다. 결론만 말하면 120일 동안 1주일에 2번씩 식사를 했다. 1주일에 2일이 아니고 2번이다. 1번은 평양 냉면, 1번은 회를 먹었다. 그렇게 120일 동안 40kg을 감량했다.

그러면 머리카락 빠진다. 어지러워서 쓰러진다. 살이 처질 것이다. 건강이 위험하다. 큰일난다.

정말 그 것들이 걱정되서인지, 내가 살이 빠지는 것 자체가 싫어서인지, 그 말들을 안 듣기가 살 빼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난 아무 부작용도 없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고도 요요니 뭐니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처럼 안 좋은 소리들만 해대는 것을 보았다. 감량하고 몇 년이 지나니까 아무 말을 안 한다. 다이어트는 어렵지 않다. 자질과 천성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힘든 일이다. 내 자제력과 의지가 최초로 어떤 목표를 성취한 사건이 다이어트였다.

#4
힘든 일과 어려운 일의 구별은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시경제학 공부(비유적인 표현)는 어렵고, 다이어트는 힘들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어려운 일에 도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질과 천성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전에도 말했듯이 '맹목적인 임무감'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내 어려움의 기준은 (3. 말이나 글이 이해하기에 까다롭다.)이 아니다. 내가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는 일에 달려들 일은 없을 것을 천명한다. 나에게는 언제나 그런 종류가 가장 어렵다.

힘은 쓰고 싶은 곳에 선택적으로 쓰고 싶다. 그 중 하나가 스팀잇 활동이다. 내가 타인의 글에 댓글을 거의 안 다는 일은 스팀잇 활동 중에 부분적으로 그 활동이 어려워서이다. (타인의 글을 읽는 것과 그 것에 댓글을 다는 일은 나에게 아주 다른 범주의 활동이다. 나는 최대한 많이 읽고 있다.) 댓글 달기를 필수로 여기고 싶지도 않고 느끼지 않은 것을 느낀 것처럼 거짓으로 다는 댓글은 더더욱 싫다. 그래서 내 스팀잇 활동의 폭이 좁은가 싶지만 괜찮다. 나는 실제 인간 관계도 최대한으로 좁히는 것을 선호하니까 그 경향이 여기서도 드러난다면 환영이다. 나는 나를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니까..

모두들 자신에게 힘든 일과 어려운 일을 구별해보기를 권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 또는 하고 싶은지 하기 싫은지 알 수도 있다. 최소한 나에게 매 번 그 구별은 중요하다.

나.PNG

나는 비니도 좋아하고, 자세히 보면 보이는 저런 스카프도 좋아한다. 목걸이도 좋아했고 청자켓은 더 좋아한다. 이제는 조잡해서 하지 않는..여전히 좋아하지만 못 하고 있는..? 뭔지 모르겠지만 내 기호가 다 모인 too much여서 좋아하는 사진이다. 오늘 부로 그 동안도 솔직했지만 더 솔직하게 스팀잇을 하려고 한다. (전에도 밝혔듯이 나는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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