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기억

By @garden.park5/29/2018kr

언어로 내 사고를 다 표현할 수 없듯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행동으로 다 풀어낼 수 없다.

A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터 그 이의 모든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의심이 오해라고 여기고 내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무리 기분이 안 좋은 날도 너를 보면 웃을 수 있었지만, 가장 기분이 안 좋은 일은 늘 너때문에 일어났다. 세상과 등지고 지내도 너만 있으면 괜찮았는데 너와 등지고 지내는 하루 이틀은 내가 다른 세계 안에 있는 것처럼 모든 일이 실감나지 않고 생판 모르는 타인이 또다른 이에게 내지르는 짜증에 내 마음이 부서지곤 했다.

나는 매일 너와 싸우고 한 두 시간 뒤에, 또는 세 네 시간 뒤에 너를 내 품으로 불러서 끌어 안고 잠이 들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어느 것 하나도 하지 않으려고 했던 너의 애정을 볼모로 내가 왜 그런 무의미한 다툼을 매일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니가 없으면 단 하루도 마음이 즐거울 수 없던 나날들이었는데..늘 니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너를 웃게 하고 울게 하는 일조차 전부 내 권능인냥 생각하고 우리 둘만 있던 세상에서 독재자처럼 행동하는 것에 우월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을 내뱉기 싫어서 나는 10년이 넘게 그 시절 그 행동의 이유를 모른다고만 했다. 바로 이 문단 안에서도 '모르겠다'고 말한 것처럼

B
너의 거짓까지도 사랑하겠다고 말했던 건 거짓이었다. 나는 내가 너에 대해서 가지던 욕망이, 너가 나에게 가지던 것보다 크던 시절에 늘 되뇌였다. 언젠가 그 욕망의 크기는 역전될 거라고, 어김없이 내가 원하던대로 되었고 너의 기만을 하나도 잊지 않고 있던 나는, 내가 너를 원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갈망하는 너를 확인하고 나서야 그 기만에 속아 넘어가 준 값을 받게 됐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고통은 더 사랑하는 사람의 몫인 걸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너의 기만을 사랑한 것은 그 순간에 내가 느낄 만족감을 위한 포석이었다. 다시 말해서 너의 거짓까지 사랑한 적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거짓은 없으면 좋겠지만 내 인생조차 거짓으로 점철한 내가 어찌 그 상황을 비난할 수 있겠니, 단지 나는 안쓰러웠다. 거짓은 언제나 '순간의 안락'을 위해 '불안의 지속'을 감수하는 불쌍한 행동이니까.. 아무리 내가 너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고 거짓말한 들, 너는 그 말에 속아 넘어가지도 영원처럼 보이는 순간의 안락을 포기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위태로운 안락을 함께 느끼고, 거짓이라고 할지라도 다행히 '지금은' 서로를 끊어낼 수 없는 둘 안의 집착과 욕망이 존재함을 확인하며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지 않음을 탓하기에 앞서 말할 수 없는 진실을 자꾸 만들어 내는 너의 행동은, 그 천박하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한 행위들은 사실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오늘까지 살아온 나날들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니 나는 너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단지 나처럼 속은 척 할 수 없는 사람을 나중에 니가 만날까봐 내 속이 상할 뿐이었다

C

결국 거룩하고 고귀했던
영혼과 육체의 관계는
영원에서 순간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마몬으로

끝내 바닥나버리는
인내 앞에 서서히 그 정체를
드러내는 이기심과
감사함은 없는 아쉬운 맘 서운함

넬의 '현실의 현실' 중

나는 마몬으로 변한 적이 없다. 인내가 바닥나 버린 적도 이기심과 서운함만을 드러낸 적도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너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나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니가 원하는 곳까지만 배웅하고 나는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으면 된다. 아니면 이런 행동은 만나는동안 속으로 삭히는만큼 가끔 너무나 차가웠던 내 태도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다. 나는 착하기보다는 나쁜 사람이고 너를 괴롭힌 적은 없지만 편안하게만 해준 적도 없다. 나는 아직도 매일 그 모든 기억과 감정의 일부씩을 꺼내어 본다. 이 병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고치려는 마음은커녕 그런 감정의 소모가 나를 슬프고 즐겁게 만들어 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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