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삶으로 녹이고 싶다 -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를 읽고

By @fgomul7/14/2019zzan
김민식,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ISBN : 9791190065696)

글을 쓴 사람의 에너지가 온전히 전해지는 기적 같은 순간이 가끔씩 찾아옵니다. 책을 읽고 가슴이 두근거려 당장 이 느낌과 기분을 글로 옮겨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좋아할 줄 알아서 꼭 읽고 싶었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 이벤트도 신청했고 결국 서초 페이를 이용해 얻어냈습니다) 이런 의미로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자신의 인생관과 인생을 재미있고 담백하게 잘 풀어낸 에세이입니다. 단편적으로 부담 없는 일화를 읽었는데 작가님의 삶이 온전히 그려지는 숲이 보이는 의외로 쫀뜩쫀뜩한 구성이 일품이에요. 힘들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써서 정감이 가고요. 즐겁지만 겸손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어른이구나. 좋아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마력 같은 글이에요.

저는 시골에서 자랐어요. 분교들이 통폐합돼서 저희 학교로 주변 학생들이 전학을 왔죠. 초등학교 4학년 때 저의 짝꿍인지 앞자리에 앉게 된 작고 똘똘하고 까만 피부색의 친구가 있었는데요. 그날 수업의 주제는 '가훈'이었어요. 저희 집 가운은 따로 없었는데 '최선을 다하자'라고 적어갔던 것 같아요.

그 아이의 가훈은 '재밌게 살자'였어요. 저는 그게 너무 충격적이고 좋아서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어요. 급조된 가훈이 아니라 정말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아빠는 재밌게 살기 위한 모든 삶을 살고 있었거든요. 저는 내심 부러웠어요. 재밌게 사는 인생이 그리고 힘을 빼고도 '저는 다른 무엇보다도 재밌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밝게 말할 수 있는 마음과 태도가 말이죠.

작가님은 딱 그 아이가 어른이 된 모습이에요. 그게 세상에도 가능하구나를 구체적인 삶으로 적어주신 분이죠.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이고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서 많은 분들이 좋아하고 응원해줄 것입니다.


기억에 가장 남는 건 다음과 같아요.

2017년 6월 13일 저녁, 인사부에서 전화가 왔어요. 자택 대기 발령이 떨어졌으니 내일부터 당분간 회사에 나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이럴 때,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면 위험합니다 사람은 한가할 때 오만 생각이 들게 돼 있거든요....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봅니다....
... 주말이라면 라이더로 북적이겠지만, 평일인지라 사람이 없습니다..... 퇴직 후 누리고 싶은 일상을 대기 발령 중에 미리 누려봅니다. 퇴사 예행연습으로 참 좋네요. 호숫가 정자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쉬어 갑니다. 가져온 책 한 권을 펼쳐놓고 읽습니다. 호숫가에서 상큼한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 수 있다면 잘린들 대수랴 싶어져요. 239~240page

인생관은 20대에 만들어지고 인생은 50대에 만들어진다.


작가님 글을 읽다가 하고 싶은 게 여러 가지 생겼어요.

저는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어 졌어요. 물론 지금 자전거는 없습니다. 집요정(제 남편 될 분의 애칭입니다)님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거든요. 제가 자전거를 탄다면 집요정님은 신나서 옆에서 같이 달려주겠죠. 제가 운전을 못하는데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열심히 연습한 후에 자전거로 기동력을 얻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팔에서 자전거를 타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생각이 났거든요.

또 정말로 가고 싶은 여행지도 다시 찾았습니다.

여름에 집요정님과 몽골을 갈 거고요, 라오스는 혼자 오래도록 방랑하듯 여행하고 싶어요. 그리고 태국 치앙마이와 섬가기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거고요. 인도를 가보고 네팔을 다시 가보고 싶어요.


책을 읽다 보니 강렬한 네팔의 첫 배낭여행이 생각나요. 아니 그때 제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말이죠. 저는 미국을 갔다 오고 나서 나란 사람도 세상을 여행할 수 있는 거구나.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구나라는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전까지 전 특별한 사람만 해외에 나갈 수 있는지 알았거든요.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단 번에 여행지를 네팔로 결정했어요. 그때 아마 22살이었을 거예요.

그때 주로 주변 친구는 유럽여행이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고 인도에 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딱 네팔에 간 사람은 없었어요. 많은 사람이 제게 '왜 하필 네팔이야?'라고 했고 저는 이유를 찾지 못해 '그냥 좋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죠. 그런데 마음속에 여기다란 생각이 있었어요. 굳이 이유를 찾자면 물가도 저렴하고 사람도 친절하고 자연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걸 뛰어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직관 같은 게 있었어요. 네팔 여행기를 읽고 네팔부터 가야겠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냥 거기였어요.

저는 한 달간 거의 포카라에 머물렀어요. 카트만두는 한 5일 정도밖에 체류하지 않았고 앙트완 국립공원도 가지 않았어요. 포카라 ABC캠프에서 트래킹을 하고 나머지 나날은 게으르게 포카라에서 자전거를 타고 주스를 마시고 책을 읽었어요. 많이 걷고 호숫가에 앉아 사람들 바라보는 게 그렇게 좋았어요. 길거리 가다가 상인들이 말 거는 것도 좋았고요. 집에 안 가냐고 너 언제까지 여기 눌러 살 거냐는 말도 좋았죠. 처음엔 피부가 하얘서 잡상인들이 물건 사라고 막 잡아서 그게 귀찮아서 그냥 피부를 몽땅 태웠어요. 그러니깐 아무도 저를 잡지 않더라고요. 한 번은 한식 식당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가 제가 한국말로 주인 분과 말을 하니 옆에 있으시던 부부가 화들짝 놀라더라고요. 현지인인 줄 알았다고. 또, '라비'라는 친구를 만나 같이 쏘다니며 기타 치는 음악가 분 집에 놀러 가서 기타 소리도 듣고 밤에 보트를 타고 별을 보고 달밧도 나눠먹고 한 친구는 같이 사원 투어를 하다가 만나 오토바이를 타고 산에도 올라가고, 사람 가득 찬 버스가 너무 즐거워 그때 만난 외국인이랑 깔깔 거리며 좀 더 탈 수 있다고 호기를 부려보기도 하고 남의 집 농사일도 도와준 적이 있었죠. 생명력이 넘치는 밝은 순간이었어요.

제가 그때 들었던 생각은 '인생에 별로 많은 게 필요하지 않겠구나'였어요. 인생 잘 안 풀리고 죽을 것 같으면 6개월은 한국에서 어떻게든 일을 해서 돈을 벌고 6개월은 네팔에서 이렇게 살면 인생 즐겁겠구나라고 마지노선 같은 계획을 마음속에 품었었죠. 걱정할 게 없었고 즐거웠고 건강했고 그 기운이 온몸으로 다 발산되었을 거라 짐작돼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 즐거웠어요. 비행기 타러 가기 전 우연히 마주친 한국인 분이 제게 인상이 좋다며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해주시기도 했고요. 비행기 안에서는 미국 유학 가는 네팔 학생들이랑 친해져서 인사도 하고 환승하는 공항에서 60대 미국인 조지를 만나 아이처럼 놀이터에서 놀다가 비행기 타러 급히 뛰어가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마법같이 좋은 순간이에요. 애쓰지 않아도 즐거웠던 순간이에요.

물론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었어요. 사기도 당해서 울어보기도 하고요. 안 좋은 일이 생겨 트래킹 내내 좋은 추억을 쌓았던 가이드랑 척을 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저는 마음의 문을 닫지 않았어요. 원망하지도 않았어요. 좋은 일이 훨씬 많았고 또 그러면 더 좋은 분들을 만나고 했거든요. 마지막 순간까지 감사함이 꽉꽉 찬 여행이었죠. 그리고 그 첫 여행의 강렬한 순간으로 인해 저는 다른 여행이 두렵지 않았던 거예요. 행운이죠.

근데 그 마음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어요. 고집도 세고 자기 주관이 강하면서도 인정 욕구에 알게 모르게 시달렸거든요. 내면의 목소리, 내가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을 찾기보단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 사회에서 어느 정도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어요. 불안에 떨었고요 제 지난 과거를 후회하고 자책하고 반성했어요. 즐거운 나날보다는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찬 나날이 많았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여행이 참 멀어져만 갔었지요.

최근엔 여행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해요. 하루하루 온 진심을 다해 즐겁게 살아가고 싶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제게 가장 좋은 일상을 선물하며 살고 싶어 져요. 그렇게 나를 채워나갈 용기를 얻고 갑니다. 좋은 책을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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