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통 아닌, '하나' 이야기 [Feel通-일상의 안단테]

By @feeltong4/5/2018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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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저를 절에서 기도해서 낳았어요.
그때 기도는 "철 없는 남편, 애라도 낳으면 철 들겠지요. 예쁜아이 하나만 낳게 해주세요" 였어요.
엄마의 기도가 간절했는지 한달도 안돼서 제가 생겼고.
그때의 부처님에 대한 원망인지(?) 도리인지 적어도 초파일에는 시주하러 절에 가시는 불자이시죠.

아이 이름은 '하나'로 지었어요.

'세상에서 하나뿐인 예쁜아이' 라는 의미랬어요. 적어도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는요.
고등학교 1학년때 엄마는 "너도 다 컸으니 알건 알아야돼" 라면서 그 전까지 알지 못하던 삶의 어둠을 베란다에서 소주를 홀짝이며 알려주셨는데 아빠에 대한 한탄, 엄마의 고생사, 그리고 제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같은 것들이었어죠.

그땐 '어른스러운 내가 얼마나 믿음직스러우면 엄마가 이렇게 의지할까?'라고 으쓱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제게 좋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엄마의 짐을 조금은 덜 수는 있었겠지만요.


어쨌든, 그때 알게된 제 이름의 뒷 이야기는 이래요.
형편이 안 좋았던 엄마는 '그래, 하나다. 하나면 충분하다. 한명만 낳자.' 다짐 했대요.
근데 막상 낳으니 애기가 너무너무 예쁜거예요. 당연하죠. 제가 어렸을때 좀 예뻤게요.
그래서 처음의 다짐을 자꾸 까먹을 것만 같아서 '안돼, 이 형편에 둘은 절대 안돼' 저를 부를 때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이름을 '하나'로 지었다 해요.
엄마는 '하나'라는 이름을 짓기전에 국어교사인 이모부에게 먼저 작명을 부탁했는데 이모부가 거절 했어요. 아직도 엄마는 그 이야기를 안주삼아요.
"그거 좀 지어주면 어디가 어때서. 내가 한글도 잘 모르고, 한문도 몰라서 어렵게 부탁한건데 그걸 그렇게 야멸차게 거절하더라." 면서요. 엄마같은 뒷 끝 있는 사람한테 부탁 거절하면 저렇게 평생 술상 오징어가 되는구나 매번 깨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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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전 '하나'가 됐는데, 평생 가장 많이 들은 농담은 "두나는 어딨어?" 이고, 상대방의 반응따윈 상관없이 불굴의 뚝심을 가진 분들은 "세찌도 있나?" 라는 말까지 하시죠. 여기까지 하신 분들은 대부분 "재밌지?" 라는 말도 덧붙이시는데 그냥 "에헤헤" 하고 웃어드려요. 제 나름의 처세랄까요. 싫은거 좋다고 못하고, 좋은거 싫다고 못하는 성격인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예요.
작은삼촌은 저를 '한개'라고 불러요. 아 , 작은 삼촌은 아주 먼 친척인데.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렸을 때부터 의지하던 분이예요. 외내종형제는 너무 멀잖아요? 그래서 그냥 작은삼촌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왜 저를 '한개'라고 부르냐고요? 제가 언젠가 "삼촌 나는 하나라는 이름이 좀 그래. 뭔가 외로워 보여요. 난 가뜩이나 형제도 없는데" 라고 했대요. 기억도 안나요. 그래서 그때부터 한개라고 부르시는데, 삼촌 특유의 억양이 있어요. 되게 반가우면 딱밤까지 함께 때리며 불러요. "야, 조한~!개!" '한'에 악센트가 있어요. 삼촌이 부르면 그 악센트와 함께 힘이 나는 기분이 들어요. 이건 삼촌만 할 수 있는거라 설명불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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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 이름의 가장 큰 묘미는 안 친한 사람들이 부를때에 있는데요. 바로, 전지전능해진다는 것이죠.
친한사람들을 저를 "하나야" "하나찡" "하나쓰" 등등으로 부르지만 안친하면 여지없이 "하나님"이 돼요.
뭔가 제가 죄를 사해야 할것 같고, 부른 이를 두 팔 벌려 맞이해야 할 것 같고, 믿음안에 경건해져야 될 것 같은데.
저같은 우주먼지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니 '하나님'말고 '하나씨' 정도로 해주면 좋으련만. 친해지기 전까지 절대 안되나봐요.
요 며칠 전엔 얼굴 한번 안본 사람들과 일 때문에 단톡방에서 인사하는 일이 생겼는데요, 모두가 입을 모아 "하나님"을 외칠 때면
그냥 시원하게 "할렐루야" 한번 해봐? 하는 이상한 충동이 생겨요. 언젠가 그렇게 외치고 단톡방을 나가버릴지도 모를일이예요.

이렇게 곡절이 많지만 저는 제 이름을 참 좋아해요.


누가 나즈막히 "하나야" 하고 불러주면 따뜻하고. 글씨 모양도 예쁘고, 영어로도 그대로 쓸 수 있고. 또 기억하기도 쉬우니까요. 일본어로 하나는 꽃이라는 뜻이기도 하대요. 예전에 '성애자'라는 말이 유행할때 저는 '이름성애자'라는 말을 했었는데, 영 빈말은 아녔어요. 이름을 불릴때마다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요.

필통도, 하나쓰도, 라이조도, 그리고 아직도 엄마 립스틱을 훔쳐 바르고 어른 흉내를 내는 것만 같은 조쌤도.
모두 잘 지내냐 묻고 싶은 날이예요.

이름의 의미는 의미는 지어준 사람의 뜻이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만드는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세상에 <하나>뿐인 예쁜 아이'가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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