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아들한테 카톡이 왔어요.
맥주 마신다고 하면서...
지금 뉴질랜드에 있는데 방이 4개 짜리 집을 같이 빌려 쓰고 있는 분들하고 찍은 사진을 보냈더라고요.
반갑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별탈 없이 잘 자라던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부터 무섭게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반복되는 가출, 집단폭행, 오토바이 절도, 흡연 등
감당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왜? 도대체 왜?
화가 나고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자식인지라 품어지게 되더라고요.
마지막 가출한 한 다음날 아침 7시 쯤 파출소(지구대)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이가 여기 와 있으니 오라고요.
가슴이 내려 앉았고 두방망질 쳤습니다.
파출소에 가니 또래 아이들 서너명하고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아있더라고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들의 눈을 맞주친 순간 나 또한 눈물이 흘렸습니다.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순경이 다가오더니 저한테 아이를 데리러 와줘서 "고맙다"고...
다른 아이들 부모는 "그놈 더 고생을 해봐야 한다. 그냥 놔두라고"
아니면 아이한테 관심 조차도 보이지 않더라고 하면서...
아들이 그 통화 내용을 다 들었나 봅니다.
그 후로는 사고도 치지 않았고 성실히 학교도 잘 다녔습니다.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고요. 하지만 성적은 잘 나오지 않더라구요. 워낙 바닥을 기었으니
중3 여름방학 쯤
아들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나는 공부는 아닌가봐"
"어찌 어찌 고등학교는 들어가겠지"
"대학도 그저 그런데 는 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기술을 배우고 싶어, 그게 내 적성에 맞는 거 같아"
"대학은 나중에 가고 싶을때 갈께"
많은 고민를 하고 대화를 나눈 끝에 우리 부부는 아들의 선택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간 학교가 인천 해사고 항해과 였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병역특례를 받으면서 36개월간 항해사로 배를 탔습니다.
태풍이 온다거나 뉴스에서 배 관련 사고가 터지면 불안한 마음에 잠을 못 이룬 날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배를 내리면서 3개월 정도 쉬더니 뉴질랜드 유학 준비를 하더라고요.
본인이 항해사로 근무하면서 모은 돈으로 가능할것 같다면서
그렇게 아들은 2017년3월30일에 출국을 했어요.
어학과정 마치고 올 2월에 대학에 입학해요.
비록 2년제 기술대학교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하면 거기서 취업할 계획이랍니다.
자랑스러운 아들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잘 해내니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