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ORMATION] 구스타프 클림트의 <철학>, <의학>, <법학> -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By @dudu.photograph1/20/2018art

대학 시절 법과 예술에 관한 강의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들을 만난 적이 있다. <키스>로 대표되는 오스트리아의 화가 클림트가 그린 그림<철학>, <의학>, <법학>을 가지고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림에 엮인 이야기와 평단과 전문가들의 평들 그리고 내가 그림을 보며 느낀 것을 함께 적어보았다.


1894년 오스트리아 교육부는 클림트와 프란트 마치에게 빈 대학의 천정화를 제의한다. 당시 대학의 4대 학문인 <신학>, <철학>, <법학>, <의학>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제의하게 되는데 클림트는 <신학>을 제외한 <철학>, <의학>, <법학>을 맡게 된다. 그림의 최초 스케치를 대학 측에서 검토한 후 통과되면 실제 크기로 제작하는 과정을 거쳤다.

philosophy.jpg <철학> 1900년, 캔버스에 유채 430* 300cm

클림트의 천정화 중 첫번째 <철학>이다. 이 그림은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크고 작은 잡음이 많았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철학>이 발표되자마자 수많은 혹평이 쏟아졌다. 대학측은 지성을 갈구하고 이성을 찬양하는 철학의 이미지가 그림에 녹아들길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의 평을 들어보면 이와는 거리 먼 것을 알 수 있다.

무한한 우주 속에 그림자와 같은 거대한 형상이 떠올라 있다. 강의에서는 이를 스핑크스라 지칭했었다. 서구에서 스핑크스는 불길한 징조이자 부정적인 상징물로 통한다. 좌측에 늘어선 인간들의 기둥은 어린 아이부터 노년까지 인간의 생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고뇌와 고통으로 가득차있다. 그림의 아래 관객을 응시하는 듯한 여인은 곧 관객 자신으로 대입가능하다. 삶을 바라보는 관찰자이자, 스스로가 그림의 삶과 다르지 않은 피관찰자가 되는 것이다.

평단의 그림 평은 위대한 인간이성을 그려낸 것이 아닌 거대한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이성이 보잘 것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중심이 된다. '철학의 근본을 무시한 모호한 표현'이라는 비난이 들끓었고 빈 사회에서 질타를 받는다.

내 스스로가 그림을 보기에는 우주 공간속 인간의 탄생과 죽음, 생에 대한 고뇌와 사랑. 그림의 한 쪽에 치우친 인간들처럼 자연의 아주 작은 부분에 치우쳐져 살아가는 인간에게 이성의 씨앗을 싹 틔우게 한것이 철학이라면 거대한 자연의 순환 앞에 감히 자만하지 말라는듯한 분위기가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클림트는 그림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medicine%20original.jpg <의학> 1901년, 캔버스에 유채 430*300

<철학>이 발표된 후 거센 반대 의견 속에서도 교육부 장관 리터 폰 하르텔 덕에 그림이 계속 나오게 된다. 두 번째 <의학> 그림 또한 분명히 빈 대학 측은 인간의 지성이 이룩해 낸 위대한 의술이 인간을 죽음에서 부터 건져내는 구원자의 역할을 표현 해주길 기대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나오게 된 <의학>을 한 번 살펴보자.

중앙의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은 건강의 여신 '히게이아'다. 그녀는 그녀의 팔목을 감고있는 뱀에게 죽은자가 마시는 망각의 강물 '레테의 강물'을 마시게 하고 있다. <철학>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산을 이루며 해골과 함께 잠든듯, 죽은듯 누워있는 모습은 삶의 생동감 보다는 죽음과 가까운 느낌을 준다.

마찬가지로 평단은 의학이 추구하는 이미지가 왜곡되었다며 반발한다.

나의 눈에는 '히게이아'를 기준으로 하여 오른쪽 인간의 무리는 병과 죽음의 세계이고 왼쪽은 생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공중에 떠있는 나체의 여인은 죽음의 세계에 손을 걸친채 생사의 갈림길에서 심판을 기다리는듯 보인다. 물론 그녀가 죽음에서 생으로 가고 있는지, 생에서 죽음으로 가고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클림트가 그래도 의학에서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려 했다면 전자가 가깝지 않을까 추측해 볼 뿐이다.

jurisprudence.jpg <법학> 1903년, 캔버스에 유채 430*300cm

클림트의 천장화 중 마지막 그림 <법학>이다. 빈 대학측은 법이 추구하는 정의와 공정함을 이야기 하려 했을 것이다. 과연 클림트는 이를 어떻게 표현해 냈을지 살펴보자.

전적으로 어두운 공간안에 노인을 휘감고 있는 문어가 보인다. 문어는 <철학>의 스핑크스와 같이 서구에서 불길한 존재로 인식된다고 한다. 노인은 엄격한 형벌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노인을 둘러싼 세 여인은 죄악의 유혹을 상징한다. 그림 위쪽 작게 나타난 정의의 여신들은 먼 발치서 죄인을 지켜고 있다. 그 아래 아주 작은 얼굴만을 보이고 있는 재판관도 보인다.

<법학> 역시 앞선 두 그림과 마찬가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평단의 평처럼 클림트의 그림에서 정의에 대한 의미는 쉽게 보이지 않지만 법의 처벌이란 의미는 강렬하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그림 속에 법을 진행하는 이들에 해당되는 부분이 그림의 반도 차지 하지 못한채 실제 인간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은 법이 인간의 정의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보다는 그 형별에 치중한채 진정 인간을 바로 잡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클림트의 그림은 교육부의 승인을 받지만 빈대학 측의 거부로 부유하다가 국가, 대중 사회의 시각 그리고 클림트 자신의 예술 표현의 자유 사이서 줄다리기를 한다. 결국 클림트에게로 돌아온 그림들은 개인들에게 팔린 뒤, 2차 대전 중 화재로 모두 소실된다.


클림트는 자신의 그림을 회수하며 이렇게 말한다.

" 나는 검열을 너무 많이 받았다.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자유롭길 바란다. 내 작품을 가로막는 그런 불쾌한 하찮은 것들을 벗어버리고 자유를 회복코자 한다. "

클림트는 자신의 그림들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을 바라보는 평들은 무수하며 정답 또한 없다. 오늘 이야기한 <철학>, <의학>, <법학>을 제외 하고서라도 그의 그림들은 에로틱한 분위기로 인해 논란들을 많이 낳았다.

그의 천정화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가 짓밟혔다 생각 할 수도 있다. 또는 이미 시작 된 일이니 빈 대학의 입장을 고려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려내야 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림처럼 검열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생각도 언제나 열린 결말이다.


참조

옛 강의 내용과 제 생각, 그리고 다음의 내용들을 읽고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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