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버닝의 원작.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

By @dmy5/20/2018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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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소설을 배경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버닝. 그리고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 평소에 원작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기전에, 꼭 원작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원작에 대한 나의 상상력뿐만 아니라 감독의 상상력도 더하고 비교해가는 게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워낙 게으른 탓에, 혹은 내가 좋아하는 책을 감독님들이 만들지 않으시기에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기대되는 영화는 단편소설이어서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을 구매해서 빠르게 읽고 개봉을 기다렸다.



먼저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소설|:헛간을 태우다.

주인공은 30대 남자이고, 결혼을 하였으며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그는 우연히 아는 사람의 결혼 피로연에서 한 여자를 알게 된다. 이 여자는 팬터마임을 배우고 광고모델일을 하며 생활하지만, 넉넉한 편은 아니다. 둘은 자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어느날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목돈이 생기게 되었고, 그 돈으로 아프리카를 갔다 오기로 한다. 그리고 세달 후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한 남자와 함께 들어오게된다. 주인공, 여자, 또 다른 남자. 이렇게 세 명은 서로 알게 되고, 소설은 이 세 사람이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소설의 뒷 내용과 결말(스포 포함!!)

그렇게 세 사람은 서로를 알게 되었고, 어느날 그녀와 또 다른 남자(편의상 B군이라고 하자)가 주인공 집에 놀러 오게 된다. 사실 일방적으로 그녀가 주인공에게 전화해서 B군과 함께 놀러가도 되냐고 물어보았고, 주인공은 이를 허락한다. 세 명이서 와인, 맥주, 각종 요리를 먹으며 즐겁게 놀고, 시간이 무르익을때쯤 B군이 ‘그래스(대마)’를 피우겠냐고 묻는다. 서로 대마를 나눠 피었고, 그녀는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간다. 주인공과 B군 둘이 자리에 남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B군이 “가끔씩 헛간을 태운답니다”라는 말을 한다. 엄연히 불법인 것을 알지만, 자신이 방화를 하고 싶은게 아니라 헛간을 태우고 싶은 것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헛간이 얼마든지 있고, 그것들은 모두 내가 태워주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은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일종의 동시 존재의 균형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다음에 태울 헛간도 정했고, 사실 오늘은 사전답사를 온 것이라고 한다. 이 근처에 있는 아주 가까운 곳.

주인공은 그 날 이후로 지도를 펴서 그 동네에서 B군이 태울 만한 헛간들을 파악한다. 그리고 매일아침마다 같은 코스를 달리며 그 헛간들이 불타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그러나 한달 동안 단 하나의 헛간도 타지 않았다. 그렇게 몇달이 지났고, 그녀에게서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날 우연히 카페에서 B군을 만났다. 주인공이 헛간을 태웠냐고 묻자, 아주 깨끗하게 태웠다고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은 못 봤을 리가 없다고 말하지만, B군은 “상당히 면밀하시군요. 하지만 분명 놓치셨어요. 너무 가까워서 놓쳐버리는 거예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B군은 그녀를 만난 적이 있냐고 물었고, 주인공도 B군도 만난적이 없다고 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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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색
몰입감있게 한 번에 읽어 내려간 소설이었다. 30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이기도 하였고, 읽기 편한 문체였다. 나는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떠오른 궁금증은 이 소설에서 말하는 ‘헛간’이 무엇인가?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헛간을 태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목은 왜 헛간을 태우다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나름의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주인공 입장에서 헛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과 행동이 변화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내가 자의적으로 ‘헛간’에 부여한 의미는

1.나와는 다른 '무력한 존재'

B군의 입장에서 물리적인 헛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B군은 소설에서 굉장히 부유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의 삶에 ‘헛간’과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멀쩡하며, 부유하고 넉넉하다. 그런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찮기 그지 없는 ‘헛간’은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 ‘헛간을 태우는 것’은 자기와는 어울리지않고, 자기와는 다른 사람을 물리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태워버리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난 너와 다르다’, ‘세상에서 나는 존재할 가치가 있지만, 너는 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행동을 이어지며, 다른 사람을 태운다.

2.무엇인가로부터 항상 변화하는 인간의 내면과 행동

주인공은 B군이 헛간을 태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집 근처의 헛간을 확인하고 불 타지 않았는지 매일 같이 확인한다. 상대의 말 한 마디에 ‘의심’이 싹 트고,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에 ‘의심’이 올라오고, 생각과 행동이 변화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하다. 사실 집 근처에 탄 것은 없다. 그저 변한 건 주인공의 생각, 감정, 행동이다. B군은 '너무 가까워서 놓쳐버린 것이다'고 말한다.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 행동 보다 가까운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나를 둘러싼 환경 혹은 자극들로 인해 매순간 변화하는 생각과 마음. 정말 본연의 나로부터 시작되는 마음과 행동이란게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다. 그래도 나름 창작해 보는 맛은 있는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었고, 무슨 생각과 감정을 느꼈을까?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굉장히 궁금해졌다. 그리고 버닝을 보았다. 소설 보다 더 풍성하고 묵직함을 전해주었다. 영화에 대한 감상평은 다음 기회에 남겨보려 한다.(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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