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집회, 그리고 쓸쓸한 노인들

By @cyanosis2/28/2018kr

제가 일하는 사무실은 교대역, 법원 바로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만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매일같이 집회가 열립니다. 대부분은 열명 남짓 사람들이 나와서 스피커만 빵빵하게 틀어놓지만, 무슨 일 -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고일, 구속영장 청구일 등등 - 이 있는 날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집회를 합니다. 

출처: 노컷뉴스

일단 큰 노랫소리가 매일같이 들려오니 일을 할수가 없어 너무나 짜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미 모든 비리와 사실이 밝혀진 이 시점에 무엇을 위해 그들이 매일같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집회에 나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노인들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노인들은 '젊은 놈들이 우리를 무시한다', '세상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외쳤습니다. 박근혜의 석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저 문구가, 사실은 박근혜의 석방보다 더,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진정한 욕구인 것처럼 들렸습니다.

==================================================

많은 노인들은 참 어려운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큰 전쟁이 일어났고, 매일 밥을 굶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를 열심히, 힘겹게 노력하여 살아왔고, 그들의 노력과 사회의 발전으로 인하여 더 이상 밥 굶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돈과 노력을 가족을 위해, 자녀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바쳐 키운 자녀들은 새로운 세상에 삽니다. 노인들이 당신들의 부모에게 했던 부양과 효의 책임을 다하기는 커녕, 말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시대의 관점에서 마땅히 차례를 지내야 할 명절에 자녀들이 해외 여행을 가면 노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전을 부칩니다. 그러면서 '도리'를 말하면 자녀들과 자녀들의 배우자들은 노인들에게 발걸음을 끊습니다. 노인들은 외롭고, 덜 외롭기 위해서는 함부로 말도 하기 힘듭니다.

우리 사회의 자산의 상당 부분을 노인들이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대다수의 노인들은 자산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자산은 자녀들을 위하여 지출했습니다. 노인들은 외로울 뿐 아니라 가난합니다.

출처: 서울신문

그리고 그런 점 때문에, 잘 나가 보이는 친구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힘듭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비교하고, 자녀를 비교하고, 우월감과 동정심을 느끼는 방식 외의 다른 방식으로 socializing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곁에 있던 동료들은 떠났고, 친구들은 더 이상 없습니다. 노인들은 외롭고, 가난하고, 괴롭고, 주변에 가족도 친구도 없습니다.

노인들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적어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존중을 받지 못합니다. 자녀들도, 사회도 그들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시대, 그들이 했던 노력에 대해 청산의 대상이라고, 적폐라고 말합니다. 많은 노인들은 실제로 젊은 시절, 박정희의 지지자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정희의 시대가 부정되면 자신의 시대가 부정된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2012년 대선, 문재인과 박근혜의 대선은 실상 노무현과 박정희의 대선이었고, 서태지와 남진의 인기투표였습니다. 제가 듀스 팬이라 서태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서태지와 남진의 인기투표에서 제가 남진을 뽑을 리는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시대의 문제가 될 테니까요. 2012년 당시 기준에서 정치적 업적이 거의 없던 두 사람, 빛나는 박정희 시대의 후계자 칼리프와 빛나는 노무현 시대의 사도 베드로가 대선에 나왔고 두 시대를 평가하는 투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인들은 박근혜를 당선시킨 그 순간, 박정희 시대의 위대함이 입증되었다는 기분에 환호를 외쳤을 것입니다.

출처: 한겨레신문

그렇게 뽑아낸 박근혜가, 사실은 박정희가, 사실은 그들이 살아온 시대가 탄핵 국면을 통해 통째로 부정됩니다. 그들이 살아온 시대와 옳다고 여겨 왔던 가치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무식한 무당의 손에 놀아날 만큼 취약한 것인지가 폭로됩니다. 여기서 가진 것이 있는 이들, 덜 괴롭고 덜 외로운 노인들은 박근혜로부터 감정이입을 끊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괴롭고 외로워, 과거 자신이 살아온 빛나는 시절에 머무는 것만을 할 수 있는 노인들은 감정이입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현실을 부정하고 집회에 나갑니다. 그곳에는 빛나는 시대를 함께 살아온 이들이 있습니다.

시대는 너무나 빨리 변화했고, 그들은 역사의 발걸음에 묻혀 스러질 것입니다. 그들의 모임은 절대로 역사교과서에 기재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 시위에 참가한 대부분의 노인들은 쓸쓸하게, 외롭게, 가난하게 죽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모여 빛나는 시절을 추억하는 그 시간, 나의 빛나는 시절에는 죄가 없다고 외치는 그 순간이, 어쩌면 그들의 70년이 넘는 인생 속에서 가장 즐겁고 빛나는 시간일지 모릅니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단순하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선과 악은 명확하지 않고, 인간은 대개 선하거나 악하지 않고 오직 약한 존재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태극기 집회의 쓸쓸한 노인들을 바라봅니다. 

3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