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5) - 그에게 빚진 것.

By @cyanosis2/21/2018kr-art

마광수 교수에 대한 기억(5): 그에게 빚진 것




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1): 기억, 수업 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2): 소설, 음식과 담배 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3): 반복과 늙음, 산다라박의 사자 머리 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4): 나에게, 마광수는

2016년 가을, 결혼을 위해 누굴 초대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데, 마교수님을 초대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초대하라고 했지만, 오랜만에 결혼이라고 새삼 연락하기가 민망하기도 했고, 정신없이 결혼 과정이 진행되다 보니 결국 뵈러 가지 못했다.

그리고 2017년 9월의 어느날, 아내와 잠들기 전 이야기를 나누는데, 왠지 모르게 갑자기 마교수님 생각이 났다. 뭔가가 죄송했다. 이미 결혼은 했어도 새삼 연락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민망해도 내일이라도 연락드려봐’ 라고 아내는 말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오후에, 나는 마교수님의 부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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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교수님을 뵙던 때, 마교수님은 이미 세상에 흐름에 뒤쳐져 있었다. 그는 세상에 저항하고 싶어하지만, 그가 저항하던 세상은 이미 지나가 있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그가 세상에 저항했던 것이 세상을 변하게 한 큰 이유가 되었고, 바로 그 이유로 그는 뒤쳐졌던 것이다.

나는 힘든 시절 마교수님에게 마음의 위안을 얻고, 어떤 지점인지 파악하기 힘들만큼 영향을 받았다. 보수적이던 기독교 청년은 탕아가 되었고, 탕아의 복음인 마광수를 접하였으며, 그리고 방탕한 생활을 접으며 마교수님을 떠나 보냈다. 그렇게 나는 그를 잊었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사회는 마교수님을 잊었다.



윤동주와 기형도가 유명 문인이 되고, ‘장미여관’이 인기 가수가 되고, 페티쉬와 성개방에 대한 논의가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지만, 이 흐름을 만든 마교수님은 그냥 ‘개콘’속 변태 캐릭터로만 남은 것이다.

마교수님이 26세에 쓴 박사논문 ‘윤동주 연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문학은 문학일 뿐, 그것이 문학 이상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엄청난 힘이란 문학이 혁명가나 사제의 역할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문학은 문학 나름의 힘을 어찌되었든 가지고 있다.

그 힘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요, 정신 중에서도 이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이나 감각 또는 본능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정치나 이데올로기처럼 단기간에 효력을 나타낼 수는 없다. 문학의 효력은 서서히 나타나 인간의 의식 자체를 변모시킨다.

윤동주는 옥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로 총각귀신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상하게도 ‘투사’보다는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을 한 시대의 상징적 희생물로 만드는 일이 많다. 윤동주는 바로 그러한 역사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일제말 암흑기, 우리 문학의 공백을 밤 하늘의 별빛처럼 찬연히 채워 주었다.

마교수님은 ‘투사’일 수 없던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외롭게 죽고 싶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마교수님 개인은 그냥 좀 덜 외롭고, 좀 더 재미있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교수님이 윤동주에 대해 이야기했듯, 그는 서서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와 우리들의 의식 자체를 변모시켰다. 그리고 나의, 우리의 어둠을 밤 하늘의 별빛처럼 찬연히 채워 주었다.

그러니 나도, 사회도 딱 그 별빛의 무게만큼의 빚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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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수님의 젊은 시절

이제 그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면서, 내가 그에게 빚진 것들과 우리 사회가 그에게 빚진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잊지 않으려 한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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