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의 집 아이를 혼내고 그러세요?”
무슨 말인가 궁금하다. 어느 젊은 부인이 자신의 아이를 혼냈다고 나이가 지긋한 어른에게 대들 듯 하는 말이다. 무슨 일인가해서 사정을 들어보니 참 난감하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정신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아이를 보고, 그러면 안된다고 타일렀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나중에는 손님들이 앉는 의자위로 신발을 신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곁에서 식사를 하던 어른이 그러면 나쁜 사람이라고 했더니 “남의 애를 보고 왜 나쁘다고 하느냐? 댁에 아이 교육이나 제대로 시켜라”라고 하는 등, 괜히 정신없이 부산한 아이를 잠시 나무랐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요즈음 우리들은 내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 것일까? 물론 모든 부모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가정교육을 철저하게 시키는 젊은 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경우 무조건 내 아이가 중하니까, 잘못을 해도 그 어느 누구도 나무라서는 안된다는 사고는 곤란하다. 요즈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 아이’라고 한다. 예전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라고 했다. 나만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어이가 다 귀하다는 생각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아이들은 소중하다. 그렇게 소중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엄격한 교육이 필요하다. 잘못을 하면 나무람도 받아야 하고, 잘하는 일이 있으면 누구나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 ‘내 아이’가 아니고 ‘우리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부모님들 과연 ‘우리 아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후일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가야 한다. 그런 아이들이기 때문에 사리를 분명히 판단할 줄 알아야 하고, 사회의 규범이 무엇인가 어려서부터 배워야 한다. 험한 사회에 나가 많은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 시대에 모든 부보들이 아이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까?
간혹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이 사회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선생님이 자신의 아이를 나무랐다고 학교까지 쫓아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을 윽박질렀다는 이야기며, 심지어 어느 부모는 선생님에게 손찌검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그저 아연할 수밖에 없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했다.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동일하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서 임금과 스승이란 지금과 같은 시대와는 다르다. 한 마디로 어른과 스승을 비유한다고 하면 될 듯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는 희한한 사고를 갖고 있는 부모들로 인해 아이들이 나만 알게 되었다. 우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 하나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무조건 ‘나’만 있어야 하고, 나만 배부르면 된다. 나만 편하면 되고, 나만 잘 살면 된다. 이런 세상이다 보니 자연 이웃도 없어지고 공동체는 물론 우리 고유한 아름다움인 ‘정(情)’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이 괴연 자식교육을 똑바로 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렇게 자란 내 아이가 자라 사회에 나가 동료들과 함께 서로를 위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