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8282

By @cheolsoo21/19/2018kr-pen

바빠 죽겠는데, 앞 차가 운전을 더럽게 못했다.

약속 시간은 일곱 시, 회사 언니가 그렇게 아까워하던 남자였다. 뮤지컬 티켓 두 장을 끊어주고서 받아낸 연락처, 카톡으로 나눈 대화는 합격점이었다. 아니, 합격 이상이라 하는게 맞겠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에 약간의 위트까지. 약간 친해지자 저질스런 섹드립을 날렸던 이전 남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제 저녁부터 입을 옷과 머리, 메이크업까지 전부 고민해서 완벽한 세팅을 마쳤고, 하루 종일 땀이라도 날까봐 슬금슬금 걸어다녔다. 그렇게 준비를 했건만, 왜 하필 빌어먹을 초보 운전을 앞 차로 만나서 이렇게 늦고 있는 걸까. 심지어 뒷유리에 '초보'가 아니라 '보초'라고 적어놨다.

경운기도 유유히 돌아나갈 것 같은 우회전 차선에서 무슨 성인군자랍시고 지나가는 사람을 다 기다려주는지... 답답한 마음에 상향등을 일곱 번, 빵빵을 열 한 번을 썼다. 그와중에 미안한 마음은 있는지 연신 비상등을 켜줬다. 확성기만 있었더라면 '야이 등신아! 비상등 켤 시간에 악셀좀 밟아! 번호가 아깝다 8282 새끼야!' 라고 외쳤을거다. 빌어먹을 흰색 모닝새끼.

주차를 마치고 레스토랑에 도착한 시간은 일곱 시 사십이분. 남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늦어서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차가 많이 막혀서 저도 방금 도착했는걸요. 여기 파스타가 유명해서 주문해 놨는데, 혹시 드시고 싶은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여기 스테이크도 잘하고 샐러드도 아주 맛이 좋아요."

남자와의 대화는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우리는 마치 낮 열두 시의 라디오처럼, 일 초도 쉬지 않고 즐거운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런 남자들은 대체 어느 곳에 숨어있는 걸까. 왜 진작 만나지 못했을까.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후식을 마치니 아홉 시 사십 칠 분, 문득 흰색 모닝이 생각났다. 그 자식만 아니었어도 사십 분은 더 이야기 할 수 있었을 텐데... 빌어먹을 흰색 모닝새끼.

"8282번 차주분 계신가요?"

웨이터가 바쁜 걸음으로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8282 차주를 찾고있었다. 아이고 그 멍청한 8282 흰색 모닝이 또 사고를 쳤나보구나. 옅은 웃음이 삐쳐나왔다. 웨이터가 우리 테이블에 다가와 8282번 차주인지 물었다.

"아뇨."
"네, 전데요."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마침내 남자가 일어났다. 나는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인 채 "다, 다녀오세요."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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