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春子-8

By @carrot963/20/2018kr-newbie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은 끔찍했다.

미용사 자격시험이 두 달 앞인데
배운 기술이 많지 않지만, 어깨너머로 익힌 기술이라도 익혀서
시험을 치룰 셈이었다.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데
맏오빠의 세 번째 편지를 보고 춘자는 서울에서의 모든 계획을 접었다.

편지를 받고 일주일 안에 내려오지 않으면
맏오빠가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
맏오빠가 찾아가는 날에 춘자 너를 어떻게 할지 장담할 수가 없다고 했다.
맏오빠가 왜 그러는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춘자를 그 강제수용소 같은 곳으로 오라고 하는지
춘자는 알 수가 없었다.

춘자는 고향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언니 내외와 조카들이 아직 잠자고 있는 이른 새벽에 언니네 집을 나왔다.
처음 들고 왔던 작은 보따리 하나만 든 채, 터벅터벅 골목을 빠져 나왔다.
뜨거운 것이 자꾸만 흘렀다.
끅, 끅, 눌러삼켜도 삼켜지지 않았다.

그날 새벽 어둠 속의 춘자를 생각하면, 아직도 목이 메인다.
춘자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미운 동생들은 춘자를 누나라고 부르며 엉겨붙었다.

누나라고 부르지 마!

차갑게 밀어냈다.
미운 동생들이 쭈뼛쭈뼛 춘자를 맴돌았다.
춘자는 미운 동생들을 밀어내고 걸레질을 했다.
미운 동생들이 마당 저쪽에서 저희들끼리 숙덕거렸다.
춘자가 걸레질하는 방에 들어와 부러 흙이 묻은 발로 더럽혔다.

쌍눔에 자식들, 뭐 하는 짓이냐. 저리 가라!

춘자가 손에 들고 있던 걸레를 미운 동생들에게 집어 던졌다.
미운 동생들은 일부러 빼액~~ 크게 소리치며 울었다.
미운 어마이가 쫓아와
다 큰 춘자를 아무데나 후려친다.

이 망할 것이 감히 어디다 손을 데노!

춘자는 신도 못 신고 쫓겨 나왔다.
기가 막혀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 언덕 너머로 지고 있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겠노.
이데로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래 어디 가서 콱 죽자, 죽어버리자.

춘자는 해가 넘어가는 서쪽 언덕으로 걸었다.
바삐 걸었다. 정신없이 걸었다.

또분네 엄마가 춘자를 불렀다.

-춘자야, 니 어데 가노? 니 왔다 하드니, 여기서 만나네. 어데서 뭐 하다가 왔노. 잘 왔대이. 날은 잡았드나?
-예? 무슨 날짜 말입니까?
-니 모르나? 너 오빠가 좋은 혼처가 있다믄서 니를 거기로 보내야겠다 하든데.... 물렀는가베....
-무슨 소립니까? 지는 처음 듣는 소린데요?
-아이고..... 모르겠다. 나는 교자 어매한테 들은거다... 내 바빠서 갈란다.. 또 보자....

처음 듣는 소리에 춘자는 다시 기가 막혔다.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춘자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슨 소리냐, 무슨 일이냐,
나를 그리 급하게 불러내린 게 나를 시집보낼라고?
나를 시집보낼라고 그랬다고?
안 되겠다. 오빠를 만나봐야겠다.

춘자는 발길을 돌려 맏오빠네 집으로 향했다.
맏오빠는 툇마루에 걸터 앉아 냉수를 들이키고 있었다.

-다 큰 처자가 날도 다 져문 시간에 어데를 싸돌아 댕기노. 서울인가 어덴가 나갔다 오드니 못된 것만 쳐배워왔네. 정신 똑바로 채려라. 행실이 그래가꼬 시집 가면 쫓겨난다...
-오라비요.. 그게 뭔 소립니까? 누가 시집을 간다꼬 그럽니까?
-시끄럽다. 어데서 말대꾸를 따박따박 해쌌노. 나이가 스물 셋이면 노처녀다. 한 살 더 먹으면 니는 시집도 못 간다. 혼처 있을 때 시집이나 가라!!
-내가 시집가는데, 왜 나는 모르고 교자 엄마, 또분이 엄마 아니 동네 사람들이 먼저 아느냐 그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할 사람을 내가 모르는 게 말이 됩니까?
-에헤이..... 사람 다 배리놨네... 동네 사람 들을까 겁난다. 닥치고 집에나 돌아가라.

춘자는 발길을 돌렸다.
터벅터벅 걸었다.
숨 쉬기도 힘들다.
죽을 힘도 없다.

춘자를 쫓아나온 올케언니가 춘자를 불렀다.

-애기씨... 너무 속상해하지 마이소. 오빠도 애기씨 생각해서 그런 겁니다. 거기 큰애기씨 집에 있으면서 애기씨가 얼매나 눈치를 봤겠습니까. 미용사 된다꼬 해도 서울 사람들이 얼매나 깍쟁인데, 애기씨가 거기서 버티겠습니까.. 또 여자 혼자 촌에서 올라왔다 하믄 나쁜 놈들이 애기씨를 가만 두겠습니까.. 몹쓸짓이라도 당하면 어찌합니까... 애기씨 서울 가고나서 오빠가 얼매나 걱정을 했는지 압니까? 밥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애기씨....

올케언니가 춘자의 등을 쓸어주며 오빠를 이해해 달라고 했다.
춘자는 모르겠다. 뭐가 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빠 말도 맞다.
오빠 말이 맞다.
그런데 오빠 말은 틀렸다.

주위는 어둠에 휩싸였다.
춘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시 막막한 길에 섰다.


으악....
많이 답답합니다.
춘자는 결국,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고구마 1000개쯤 삼킨 기분......................ㅠㅠ

춘자의 삶은 왜 이리 막막하기만 할까요....
그래도 힘 내라고 응원합니다.

춘자씨.... 힘 내요~!!!


춘자 이야기 관심있게 읽어주시는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사랑이 넘치는 스티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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