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春子 - 11

By @carrot964/17/2018kr-newbie

새벽에 눈이 떠졌다.
저녁에 한 번, 재우기 전에 한 번
젖을 물리고 나서 잠자리에 들면
꼭 새벽에 눈이 떠진다.
말로는 못다할 허기 때문이다.

거친 조밥이나마
몸을 풀고 나서 삼칠일까지는
그럭저럭 먹었다 싶게 먹을 수 있었다.
짠 간장물만 넣고 끓여서 미역비린내가 나는 미역국도
물리기도 했지만 미역도 다 떨어졌다.
어제가 장날이었는데
장에 다녀오신 시아버지의 장꾸러미에는
먹을 것이라곤 우스운 풀빵 한 봉지도 없었다.

춘자는 현기증이 날 것 같은 허기를 참다 못해
부엌으로 나가 보았다.
무어라도 먹을 것이 있을까.
시계를 보니, 두 시간 정도 지나면 정이가 또 젖을 찾을 것이다.
하릴없이 가마솥 뚜껑을 열어 본다. 비었다.
두 번째 가마솥 뚜껑을 열어 본다.
엊저녁에 먹고 남은 시래기된장국이 한 대접 남았다.
반가운 마음에 국을 그릇째 마신다.
11월 초겨울 새벽이라 솥 안에 있던 것이라도 차갑다.
그러나 차가운 것은 모르겠고 달다.
국물을 다 들이키고는 숟가락을 들고
부뚜막에 걸터 앉아 건더기를 퍼 먹었다.
시래기 된장국이 이리 달았던가.
숟가락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릇이 바닥을 보인다.
그제야 정신이 든다.
신기하게도 젖이 도는지 젖가슴이 묵직하고 뻐근해진다.
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살며시 담가 놓고
부뚜막에 그대로 앉는다.

아직 한밤중이다.
겨울이 가까워서 풀벌레소리도 잠잠하다.
완전한 어둠과 정적의 한가운데 춘자가 앉아 있다.
몸이 너무나 피곤한데, 잠이 달아나버렸다.
아무 생각이 안 나다가
별별 생각이 다 난다.
미운 아부지, 남의 어마이, 서울, 미용사, 전차, 쑥, 올케언니, 임신, 오빠, 시래깃국, 메주, 밭설거지, 장날, 옆동네 새터댁........ 정이 손가락, 정이 배꼽, 정이 눈꼽, 정이 새까만 배냇머리, 정이.............. 정이 엄마, 나..... 나, 춘자....엄마, 엄마.....춘자엄마..... 춘자엄마.......내 엄마? 내 엄마... 나도 엄마가 있었겠지... 얼굴도 생각 안나는 내 엄마, 우리 엄마.
젖가슴이 묵직하다.
조금 있다가 정이가 젖을 찾으면 제법 배불리 빨아먹겠다.
한기가 든다.
부엌에 나온김에 군불이나 떼야겠다.

바짝 마른 깻단은 불이 잘 붙는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잘도 탄다.
굵직한 장작을 두개 넣어 아궁이 깊숙히 밀어넣은 후
아궁이 앞을 쓸어 놓고 방에 들어간다.
쌔근쌔근
정이가 두 팔로 만세를 부르며 세상모르고 잠을 잔다.
이쁜 것...........내 새끼...... 내가 낳은 내 새끼....
춘자는 정이 옆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리 애틋하게 쳐다봤겠지.
조금만 더 살다 가지....
얼굴이라도 기억에 남기고 가지...
엄마는 왜 그리 빨리 가버렸노.......
이리 이쁜 새끼를 두고 우째 그리 빨리 가버렸노.......
정이 이마를 손끝으로 쓸어준다.
젖냄새를 맡고 정이가 팔을 허우적댄다.
춘자는 정이를 겨드랑이에 끼고 젖을 물린채 다시 잠이 든다.


생존신고를 하도고 열하루 지나 글을 씁니다.
많은 일이 있었고, 덩달아 많이 바빴어요.
많은 일이란, 당근이 아들의 학교 부적응에 대한 것이고
그때문에 아들의 도우미로 등교하고 있었어요.
오늘은 아들이 현장체험학습을 갔기 때문에
오랜만에 한가하게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춘자 소식도 전하고
당근이 소식도 전하려구요...

봄이... 막 한꺼번에 확 들이닥쳐서
봄인가, 꽃이 피는가 느낄 사이도 없이 쳐들어와버렸네요.
산수유꽃 매화꽃 피고, 목련꽃 피고, 개나리 진달래 피고, 벚꽃 피고..... 이렇게
번호표받고 피는 것처럼 순차적으로 피던 봄꽃이
올해는 막 한꺼번에 다 와르르 폈다가 져버렸네요.
당근이도 정신이 없는데
계절도 정신이 없군요.

이런 때일수록
정신줄을 좀 팽팽하게 잡고 살아야겠습니다...

춘자는 이제 어엿한 엄마가 되었습니다.
살림살이가 팍팍하여 안쓰럽군요...
그러나 춘자는 꿋꿋하게 살 거예요. 엄마가 되었으니까요.

다음 이야기는 언제 다시 이어질지 기약할 수 없지만
불쑥 춘자이야기가 피드에 올라 오면
아, 당근이가 잠깐 여유가 생겼구나.... 생각해 주세요..
(긴 공백으로 인해 벌써 잊혀진 사람이 된 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만....ㅎㅎ)

사본 -DJI_0264.jpg

사랑이 넘치는 스팀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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