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 by 톰 라비

By @bookkeeper10/24/2018bookst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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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 by 톰 라비

하루는 우리 첫째 아이가 아빠에게 이야기 한다. “아빠 있잖아엄마는 우리랑 학교 가다가 신호등 빨간불 걸리면 파란불 바뀔 때까지 책 읽는다? 내가 신호 바뀔 때 ‘엄마! 가자’ 해야지 가” 그말을 들은 신랑은 세상에 그런 안전 주의자도 없을만큼 나를 나무란다. 운전하면서 그렇게 위험한 행동을 한다고... 운전대 잡고 문자 보내다가 나한테 혼나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니지 싶지만, 일단은 순종한다. 미안하다. 반성한다. 다시는 안 그런다.

근데 내 머리 속에는 계산이 있다. 신호가 바뀌고 내가 직진을 해야 하는 시간만큼만 책을 읽는다. 그 모습이 위험해 보였나 보다 딸에게는.그저 잠시의 pause 상태의 그 순간을 책 한 페이지 읽는걸로 채우는 것 뿐이었는데 말이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단순하다. 책을 읽는 것도 사 모으는 것도 좋아하는 내가, 단순히 독서애호가가 아니라, 책 자체에 집착하는 중독자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본문에 책 중독인지 아닌지 테스트하는 질문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들. ‘당신은 서점에 들어섰을 때 싸~하게 다가오는 종이 냄새에 매료 당하는가.’, ‘운전 중 적색신호의 그 찰나의 순간에 책을 집어 드는가.’, ‘책을 사오면서, 배우자, 혹은 가족에게 책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 경우가 있는가.’ 등등의, 독서를 많이 하지 않거나, 아예 책이라고는 학교 다닐 때 교과서 말고는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문항들이 이어지고, 몇 몇 문항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게 된다. 시험 문제처럼 각 문항마다 점수가 주어지고, 그 점수들을 합하고 나누면 내가 책 중독인지 아닌지 진단해 주고 책 중독이라 하더라도, 초기, 중기, 말기 단계로 나뉘어져 각 단계마다의 특징과 애로사항들이 아주 유쾌하게 소개된다. 다행히 나는 중증이 아니라 중독 초기 증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같은 책, 시리즈로 묶인 찰스디킨스 전집을, 그것도 똑 같은 시리즈 전집을, 있는지도 모르고 네 세트나 사 모을 수 있겠는가. 저자인 ‘톰 라비’는 그 ‘미친’ 책 중독자였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물론 가족들까지 등지게 만드는, 그의 책에 대한 집착은 믿기 힘들 정도이다. 일 년 내내 같은 옷에, 비듬이 뚝뚝 떨어지고 헝클어지다 못해 곱슬이 되어버린 머리카락, 관리하지 않아 엉망이 되어버린 몸…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거에요.” -작가 김영하의 변(격하게 공감함)

저자의 책에 대한 태도는, ‘학습’과 ‘적용’에 있는 것이 아닌, 책 자체를 사랑하고 독서행위 그 자체를 즐기고 집착하는, 그래서 자신을 중독이라 고백하는 ‘유희’에 있었다. 내 눈과 생각을 의심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책 중독자들의 실제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흥미로우면서도, 읽다보면 지긋지긋해지는 책사랑…

내 가방은 항상 무겁다. 책이 두세권, 심할 때는 서너권이 가방 안에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집중해서 읽는 편이 아니라 서너권의 책을 한꺼번에 가지고 다니며 번갈아가며 읽는 편이다. 한 권 읽다가 지루해지면 다른 책을 펼치고, 또 그 책이 별 거 아니면 다른 책을 보고... 그렇게 여러 책을 한꺼번에 읽다 보면 어느새 한 권이 끝나고 두권이 끝나고...  그래서 나는 큰 가방을 좋아한다. 작은 가방에는 책 한권도 안 들어가고, 들어간다 해도 모양이 예쁘게 빠지질 않는다. 예쁘게 옷입고 작고 새초롬한 핸드백을 매는 날은, 꼭 다른 큰 가방을 차에 실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신랑이 이야기한다. 읽지도 않을 책을 왜 들고 와? 오늘 행사만 끝나면 집에 갈건데 언제 읽을려구?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혹시 모르잖아. 공백이 있을지… 그 공백의 시간동안 내 손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단 말이야.

사실이 아니다.

공백의 시간이 있어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책을 안 읽을 때도 많다. 실제로 인터넷 기사에 꽂혀서 한 페이지도 안 넘기고 앉아서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을 때도 허다하다. 그저 내게 책이란, 오랜 시간 습관처럼 내 손에 장갑처럼 끼워져야 하는 것이다. 남들에게는 교양으로, 유식해 보이는, 그러나 사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루종일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되는 스마트폰, TV드라마 혹은, 잠자는 시간 빼고는 씹어야 하는 껌이거나, 두살배기 아기의 공갈 젖꼭지이거나, 교회가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어느 권사님의, 없으면 하루종일 불안해서 못견디는 십자가 목걸이인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책이 쌓인다. 나는 그 책을 쿨하게 처분하지도 못한다. 예전에 몇 번, 책이 너무 많아져 사람들에게 나눠 준 적이 있는데, 그 책들이 전혀 읽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는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책은, 읽히지 않는 책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는 책이다. 기쁜 마음으로 집어들고 계산을 하고 내 품에 안고 돌아와 나의 소중한 책장에 꽂히고 읽히고 다시 그자리에서 나의 일상과 함께하던 나의 책들이, 무명의 누군가의 집으로 입양되어 읽히지도 보아지지도 않은 채 잊혀지고 버려진다면, 그 책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책이다.

모든 중독은 나쁜 것이다. 내가 주인 이었다가 ‘그것들’이 주인되어 나를 부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단순한 오락의 모양이, ‘없으면 안되는’ 종속의 형태로 보여지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다. 책을 읽되, 책 자체에 집착하지는 말아야지… 하면서, 오늘 아침에도 나는 가방에 책 서너권을 집어넣고 나왔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내 책의 주인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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