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작가가 어떤 글을 쓰는지 알고 싶은 독자라면, 나는 그 작가의 단편집을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개의 작품들이 일단은 소개되고, 작가 자신도 다양한 시도를 하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글쓰기의 거의 모든 방법이나 방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승우의 경우, 나는 "지상의 노래"라는 장편을 먼저 접하고 그의 집착과도 같은 심리묘사에 매료 되었었는데, "생의이면"을 읽고나서, 도대체 얼마나 더 그의 심리묘사가 극단으로 가는지 알고싶어서 최근작 "신중한사람"을 읽었는데, 과연... 이 작품집에 들어있는 모든 작품들에서는, 이승우라는 작가에게 기대하는 극단에 가까운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북스럽기도 하다. 그의 글이 그러한것이라기 보다는, 읽고 있는 내내, 문장을 돌아돌아서 다시 처음으로 가서 하나하나 소화해내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소설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며, 절대 어렵거나 힘든 글읽기가 되어선 안된다는 내 지론에 맞서는 거북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집에 있는 소설들이 재미있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몇몇 작품은대단히 재미있기도 하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가끔은 복장이 터지기도 한다. 그만큼 작가의 시선은 명확하게 향하는 지점이 있고, 그 묘사와 서술들은 끈기가 있어, 가끔 여타작가의 글들에서 발견하기도 하는 지리멸렬함이라곤 없다.
내가 말하는 바는, 이러한 글들을 발췌하다보면 쉬이 이해받을 수 있을 생각이지 싶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에게는 물어뜯을 손톱이 없으면 불안하고 있으면 있어서 불안하다.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은 불안하기 때문에 손톱을 물어뜯지만, 그가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을 보는 사람은 그가 손톱을 물어뜯기 때문에 불안해진다. 손톱을 물어 뜯는 사람은 손톱을 물어뜯음으로서 자신의 불안을 만들고,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른사람의 불안도 만든다.[신중한 사람-이미,어디]"
주어 부분을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는 작가의 작법에 고스란히 준하는 위 발췌문은, 이승우라는 작가를 대표하는 "농도짙은"심리묘사에 대한 극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결코 어려운 말들을 쓰지 않는데도, 쉽게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이유도, 육하원칙에 따른 일반적 서술 보다는, 우리의 좌뇌, 우뇌가 가진 기능들을 적절히 섞어서 이해해 내지 않으면 안될 듯한, 때로는 이성적이고, 때로는 지극히 감성적인 언어와의 자연스런 회합에 있어 우리가 쉽게 포기하거나, 실패하기 때문이겠다.
우리는 스스로 모를 뿐이지, 하루 24시간동안 머리속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 물론 수면 중에도, 때로는 꿈이라는 형태로, 숙면을 취하더라도, 우리 뇌는 생각이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 말들이 언어라는 형식으로 내뱉어지지 않기 때문이지(누군가는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말주변도 없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런 생각들이 있다는걸 스스로 자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우리가 작정하고 하루동안의 생각들을 글로 옮기기 시작한다면, 그 문장의 형태가 세련되지 못해서 작가들이 쓰는 모양새는 갖춰져 있진 않을진 몰라도, 제법 번듯한 내 이야기는 나올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손톱 하나 물어뜯는거 하나로 저렇게도 이야기를 해대는데, 술많이 마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 불쾌했던 숙취의 느낌, 그래서 내가 응당 해야 하는 것들을 바로바로 생각해내지 못하는 내 상태에 대한 당황스러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아이들을 남편에게 은근슬쩍 떠맡기며, 온몸으로 미안해하며 안그런척 하려하는 내 마음가짐 등등을, 내 머리속에 차곡차곡 전산화 된 기록지가 백퍼센트 기록해 준다면, 나중에 혹 그걸로 누군가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거나 한다면 더 잘, 더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텐데... 하는 쓸데 없는 생각ㅋ
말을 잘 하지 못해서, 말을 잘 옮기지 못해서, 그 옮긴 말이 바르게 해석되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뇌 회로에는 "화", "미움", "오해", "두려움", "걱정", "죄책 혹은 자책" 등등의 단어들이 저장되어 지는지...
혹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안해도 될말을 뱉어 내는 바람에, 반응하지 않아도 될 것에 격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른 형태의 시각화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당황스러워 하는지...
이승우의 "말"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서 발 동동 구르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유려하게 불러내어 이야기 한다. 그래서 짠하다. 그래서 그는 훌륭한 작가이다.
아직 이승우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이 단편집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