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적소

By @bookkeeper9/11/2018kr-pet

아이들 픽업하고 수영레슨을 기다리고 있는 중에 나의 베프에게서 전화가 왔다. 키우던 강아지를 오늘 안락사 시켜야 하는데, 둘째를 우리집에 맡기고, 내가 같이 해주면 고맙겠다고... 평소에 우리 둘째를 맡기기만 하다가 나도 이 친구를 도울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아이를 수영레슨에 같이 넣어놓고 그 친구의 집으로 갔다.

이미 19살이 된 강아지 Chibi... 할머니가 되고 또 온 몸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암세포가 퍼져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연명하는 중에, 이제는 용변도 못보고 시름시름 하루종일 앓기만 하는 아이라 안락사를 결정하고, Chibi가 집에서 마지막을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수의사를 집으로 불러 마지막 기도를 하고 보내주는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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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에 내 친구가 직접 만든 화관을 씌웠더니, 거의 48시간 넘게 눈도 못뜨고 무의식 상태로 있던 아이가 갑자기 눈을 뜨고 일어나 저 모습으로 가족들을 향해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내친구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직 때가 아닌것 같으니 며칠만 더 두고보자고... 보고 있던 친구의 남편이 친구를 안으며 말리고, 수의사도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에게 인사하는 모양이라고... 그자리에 같이 있던 첫째 아이도 오열하고... 나도 울었다...

미국에서 남편이 처음 기르기 시작했고, 결혼한 후 필리핀에 데리고 와서 14년을 함께한 아이라, 가족들에게는 그 아이를 쉽게 보내는 일이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살면서 남편과 아이들을 보면서도, 내가 힘들고 지칠때마다 함께 하던 아이, 내 모든 원망과 기쁨과 슬픔을 토로해 왔던 아이라고 했다. 암이 온 몸에 퍼지고 나이가 들대로 들어도 보내는게 힘들어, 병이 발발한 후 거의 3년을 데리고 있던 아이였다.

사람의 욕심으로 그 아이를 지켜보기만 하기에는, 그 아이의 심신이 지칠대로 지치고, 고통 속에 있어 이제는 보내기로 함든 결정을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가족을 향해 꼬리을 흔드는 아이를 보며 내 친구는 거의 이성을 잃었다.

친구의 오열과, 참관한 사람들의 비통함 속에 약 5분의 시간이 영원처럼 흐른 후, Chibi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평소 장례식 사진이나 힘든 순간의 기억을 굳이 sns에 올리는 사람들을 탐탁치 않아하던 나 조차도 그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않을 수 없었다.

늦게 둘째를 낳고, 큰아이와의 생활패턴이 달라, 항상 친구집에 친구네 둘째와 시간을 보내게 했었다. 늘 둘이서 놀았고, Chibi도 함께 놀았다. 우리 둘째에게도 이 아이는 베스트 프렌드였다. 함께 뛰고 뒹굴고 뒤엉키며 7년을 부대끼며 살았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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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꼼짝없이 누워있는 아이에게 수의사는 마지막 주사를 주입했다. 그리고 Chibi는 천국으로 갔다.

아... 그 순간의 슬픔을 어떻게 이야기 할까. 나는 애완동물을 한 번도 기른적이 없지만, 이 친구와의 인연만큼 오랜 인연이 있었던 탓에, 이 아이의 존재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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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이를 보내고, 마닐라에서 조금 떨어진 Tagaytay의 한 화장장에서 Chibi를 화장한 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눈이 부어 집으로 가지 못하고, 집 밑 스타벅스에서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엄마가 얼굴이 왜 그러냐고 말을 걸어왔다. 오늘 이러 이러한 일이 있었노라고... 그래서 방금 돌아오는 길이라며 사진을 보여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하는 말...

와~ 돈지랄 대박이네...

슬픔이 안개처럼 내려앉은 자리에 느닷없이 똥물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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