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소나기

By @bobo83/25/2018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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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갠 오후.

엊저녁부터 쏟아진 소나기는 길가에 몇 몇 웅덩이를 만들어 낸 채 오후에서야 사그라 들었다.

눈만 껌뻑껌뻑 뜨고 감았다. 모든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비 내리던 날,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몸은 느려지고 발걸음도 한 결 무겁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에서 낮아진 명도를 체감한다.

이상하게도 선명해지는 것은 소리. 빗소리, 비 내린 도로 위를 달려가는 차 소리, 작은 경적소리마저...

사람들의 대화 소리마저도. 어디선가 과학적으로 비내리는 날 소리가 잘 전달되는 이유를 쓴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그다지 관심사는 아닌지라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여튼 소리가 더 잘 들린다는 내용이었다.

소리와 함께 또 확장된 감각은 후각.

비 내리는 날이면 항상 흙냄새라거나 비와 함께 실려온 바다의 짠내를 맡았다.
산을 걸을 때에는 풀내음에 코를 킁킁 거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회색 슬렉스에 하얀 셔츠를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휴일에 온 소나기는 마음껏 쉬고 싶은 날에는 환영이다. 푸근해진 기운에 빗소리에 별다른 생각 없이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으니까. 물론, 쉬고 싶은 날은 말이다. 또 쉴 수 있는 날은.

비가 개인 하늘엔 아직 구름은 우중충하니 남아 있다.

장마가 사라지고 건기와 우기로 나뉜 계절성 소나기로 바뀐다더니 정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나선 길에서 나의 발걸음은 편하게 성당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섰다.

유서가 깊은 곳인지라. 평일인데도 사람이 꽤 있었다.

그래, 그렇게 도착한 기도실이었다. 아무 생각 없었다.

그저 발길 닫는데로, 발걸음 가는 곳으로, 그렇게 어느 새 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실 문을 열었을 때에는 습습한 냄새가 감겨왔다.

나무나 지하에서 날 법도 한 특유의 내음이 오감을 사로잡았다.

포근하다. 비오는 날이니 더 아늑하다.

오늘은 사실 기도라기보다는 내 마음을 돌아봤다. 정신없이 달려왔다. 멈출 줄도 늦출줄도 모른 채 힘을 다 소진하고 나서야 오늘 나는 이 자리에 왔다.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그 동안 있었던 일들, 지나쳐왔던 감정들, 속에 묵어놨던 생각들. 오롯이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담담히 그것을 마주하는 시간, 그럴 수 있는 이 날을 주신 것에 감사했다.

흙탕물같던 마음은 서서히 가라 앉고 맑고 잔잔히 그저 흐르는 그 것에 집중했다.

시간은 고요히 흘렀다.

'?'

눈가를 찡그렸다.

천천히 숨을 코로 두어 번 끊어 들이쉬었다.

미세하게 악취가 나는 듯 했다.

'무슨 냄새지?'

이상했다. 기도실 문을 열었을 때에도 방에 들어왔을 때에도 나는 맡질 못하였었다.

비긋이 감았던 눈을 떴다.

좋지 않은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호흡을 얕게 떴다.

냄새의 근원지는 곧 찾아 내었다.

언제부터있었을지 모를 작은 검정 봉지에 쌓인 무언가가 눈 앞에 놓여있었다.

이상하다. 들어올 때는 보질 못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러 들어 오는 곳이고 누군가 잃어버렸다기에도 분명

쓰레기임에 분명했다.

문을 나오며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봉다리를 손끝으로, 그 닿는 부위를 아주 좁게하여 잡았다.

손끝엔 휴지를 두겹 싸서.

만지기조차 싫었다. 닿는 거 조차 질색이었다.

쓰레기통에 조용히 넣었다. 혹여 냄새가 새어나오기라도 할까봐,

좋지 않은 냄새가 분명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확인하기 조차 꺼려졌다.

그저 버렸을 뿐.

다음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길 바랬을 뿐이다.

이유를 알고 싶지 않던 마음 한 켠의 아림이 가신다.

마음을 가벼이 화장실에 가서 향긋한 비누로 손을 씻고

발걸음을 가볍게 건물 밖으로 나왔다.

구름이 어느 새 맑게 게어 있었다.

해는 쨍쨍하진 않아도 환하게 비추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지개였다. 몇 년만인지.

도심 속 무지개는 더더욱이, 오랜만이었다.




상처에 아파하는 것은 누군가가 던진 쓰레기를 계속해서 쥐고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란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풀어낸 단편소설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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