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새벽의 게임을 기다리며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는다.
조그만 풀숲에도 작은 나무 아래에도 우리와 함께 사는 생명들이 있다.
밤하늘 속 달을 보면
지금 내가 사는 사바세계의 삶이 전부가 아니란 걸, 그것은 일부일 뿐, 또 다른 세계가 저렇게 확실하게 꿈틀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나는 자랑스런 우리은하 태양계 행성인이다.
너는 자랑스런 우리은하 태양계 메뚜기목 귀뚜라미과 곤충이다.
무엇에 속한들 상관있겠냐만은,
나는 네 옆에 살고 밤이면 너의 노랫소리를 듣고
비록 나는 숫컷이지만 그 소리에 매혹당한다.
그러고보니 나는 너처럼 목청껏 암컷을 유혹해 본적도 없구나.
부끄러운 이웃이다. 그래도 잘 부탁한다 ㅋ
매일 새벽 열등감에 젖어 잠에서 깨어난곤 한다.
아무리 활기찬 척 해봐야 잠재의식 아래 켜켜이 쌓아둔 비교열등에 대한 인식은 두 눈꺼풀, 어둠 속 아래에서 활발해진다.
나는 자랑스런 우리은하 태양계 행성인이다.
너는 자랑스런 우리은하 태양계 메뚜기목 귀뚜라미과 곤충이다.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자각도, 좋아한다는 것, 내게는 이 길 밖에 없다는 고집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계속 실패만 하다보니, 실패를 잘하게 되었다.
계속 축구를 하다보면 축구를 잘하게 되는 것처럼,
이제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조바심도 심지도 애착마저도 잊어버렸다.
그냥하고 있다.
왜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 왜 그렇게 좋아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계속하는 Machine이다.
인내력 머신.
저 귀뚜라미와 이야기하고 싶다.
둘이 함께 달을 보며 앉아 암컷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서비스 직전이란 그런가 보다. 더욱 마음이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