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미밋에 영화는 처음으로 리뷰하는 것 같다.
글이 공연 위주였던 것은 단지, 최근에 공연리뷰를 쓸 기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때 영화를 업으로 삼았던 적이 있었을 만큼, 영화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애착과 집착 그 어디쯤을 헤매다, 집착을 버리고 애착만을 갖고 살기로 마음먹은지는 이젠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무의식 어딘가 기회를 옅보고 있는 집착이란 놈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직접 만들고픈 욕망을 자극하기도 한다.
혹시 모른다. 언젠가 갑자기. 스티밋에 단편들을 올리고. 평가 받기를 원할지도 말이다.
그만큼 내가 스티밋을 활용할 창구는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일 테니.
오늘 내 감성에 걸린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
엄청 호기심이 당기거나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다만, 원작인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괜찮게 봤던 기억 때문에 리메이크 편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 정도.
(참고로, 난 일본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특유의 일본감성. 느림의 미학. 사소한 것을 중대하게 늘리는 담담한 시선을 좋아한다.)
하지만 김태리가 나온다. 사실 영화 '아가씨' 때 까지만 해도 전혀 관심을 둔 배우가 아니었다. 그저 엄청난 경쟁률을 뚫은 신인 배우라는 정도. 이는 영화 [1987] 계기로 바뀐다. 내 눈에 김태리가 불현듯 들어왔다. 하정우, 강동원, 김윤석을 뚫고. 그녀에게 강동원이 돌연 찾아온 것처럼.
신인치고 그래도 안정적으로 연기하네. 뭐지? 이쁜가? 아닌데? 이쁜가? 평범한데? 좀 어설프지? 아닌가? 뇌세포에서 한 배우를 정의 내리려 애쓰는 중이었다.
단번에 정의를 내릴 수 없음에 호기심은 관심으로 커져갔다. 다음 영화가 궁금했다. 그럼 확실히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영화가 이번 리틀 포레스트였다. 그녀의 3번째 영화. 주연급으로는 첫 영화라 할 수 있다. 3번째 만에. 운도 좋다.
얼마나 원작을 따라갈까. 반대로 얼마나 벗어날까. 리메이크의 숙명이자 한계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습관적으로 원작과 비교를 하려 했지만, 어느 순간 멈췄다. 다른 영화가 나왔다. 다행이다. 컨셉만 차용한 다른 감성 지향점의 영화. 임순례 만세.
영화를 보고나서야 알았다. 임순례 감독 작품이라는 것을. 그만큼 감독보다 영화가 중요했던 터였다. 그리고 감독을 확인하고, 고개를 조금 끄덕였고, 떠돌던 그녀가 영화 속 혜원(김태리)처럼.
그녀가 있을 자리로 돌아왔음을 느낀다.
참 잘 빚어진 영화다. 자연 풍경을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 낸다.
억지로 인물을 자연 위에 덧대려 하지 않는다. 자연과 응당 함께 있을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투사한다. 모든 장면에서 자연과 인간은 공존한다. 겉돌지도, 과하지도, 튀지도 않는다.
이러한 화법이 가장 어렵다. 과하지도, 모나지도, 못하지도 않는 적절함.
오히려 주인공들보다 자연이, 시골이, 동물이, 주인공인 것 마냥. 활약한다.
보통은 특히 한국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기 힘들다.
포스터에 주인공들이 주르륵 줄서서 폼을 잡아야 흥행한다는 강박. 리틀포레스트도 이건 똑같다. 전혀 이들의 관계가 중요한 영화가 아님에도. 왜 셋이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웃고 있는거냐구. 마케팅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누구보다 아주 잘 알지만. 여전하다.
일본영화의 마력 중 한가지를 꼽자면. 한국에서는 견디지 못하는 무쓸모를 담담히 마치 가장 중요한 것처럼 담아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일본영화의 특징들이 포착된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컷들이, 하지만 큰 그림에는 꼭 필요한 그림들이 보인다. (글 마지막에 첨부할 예정이다.)
감독님의 고집에 만세. 분명 투자자,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김태리 얼굴이 더 오랜 시간 담기는게 중요했을 테지만.
오히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일본영화 특유의 느림의 미학이 정화되서, 깔끔하게 적당히 표출된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농촌길을 달리고, 잡초를 뽑고, 음식을 하고, 멍때리고,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는 시간의 흐름들.
음식하는 장면은 원작에서도 농촌 생활을 담아 내는 필수 요소인데. 우리나라 음식으로 맛깔나게, 예쁘게, 먹음직스럽게 화면에 잘 담아냈다.
컷컷으로 간단히 요리과정을 보여주는데, 클로즈업과 부감을 적당히 활용하면서 짜임새 있지만 여유있게 뽑아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든 음식을 담담히 먹는 장면은, 대리만족의 식감과 쾌감을 전해준다. 절대 과하게 먹지 않는다. 그들 삶에서 담담하게. 우리들 일상처럼 그렇게 먹는 것이다.
또한 과거 엄마와의 추억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는 음식들을 통해. 잊었던 엄마를 회상하고. 엄마가 아닌 여자의 삶을 공감한다.
어린시절 나를 위해 엄마가 해주었던 그 레시피를 다자란 내가 하고 있다. 엄마의 레시피.
그 과정을 통해 온전히 엄마가 아닌 여자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깨달은 순간에서야 엄마의 편지에 답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소리와 김태리의 투샷이 왜그렇게 예뻐보이는지. 연기 잘하는 두 배우가 사랑스럽고 자연스럽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토마토를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데. 감정이 울컥했다. 슬픈장면이 아닌데도. 진짜 모녀가 얘기하는 장면을 담은 것처럼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전염되서 잊혀졌던 가족의 추억과 스트레스를 녹이는 과정에서 물이 발생했나 보다. 울컥.
엄마에게 과한 질문을 하는 것이 멋쩍어서 미묘하게 변하는 말투. 토마토를 진짜 씹으며 말하는 딸을 비추는 것 같았다. 영리하다 김태리.
임순례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혜원이라는 캐릭터와 실제 모습 사이에 괴리가 거의 없다. 내부 시사회가 끝난 후 태리씨 소속사 이사님도 “태리랑 똑같네”라고 했다."
영화에서 느껴진다. 꾸며진 모습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의 김태리. 행동에서 말투에서 시선에서 감정에서. 진짜 그녀의 삶인 것 같았다. 과하지도 않다. 연기인듯 아닌듯. 덤덤하게. 이런 아리까리(?)함이 영화 [1987]에서부터 느꼈던 그녀의 매력이다.
완전히 역할을 본인 것으로 체화시켰거나. 아님 그런 역할들을 잘 골라서 맡았거나. 그래서 또 다음 작품이 기다려 지는 것이다. 제대로 그녀를 판단하기 위해서.
평범함에서 나오는 아우라. 최근 배우들에게서는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아우라다.
영화의 요소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향, 음악이다. 난, 특히나 음악에 집착하는 편이다. 음악이 살린 영화. 음악이 버린 영화들에 기뻐하고 한탄하고 한다.
화면만큼이나 음악 또한 잘 사용해냈다. 영화 더테러라이브를 했던 음악감독이군. 우연이 아니었던 거다. 자연과 어울리며 때론 클래시컬하고, 때론 옥상달빛, 브로콜리너마저 같은 인디의 음악으로. 눈과 귀를 안정되게 만들었다.
인물들의 관계도 극적이지 않다. 우정과 사랑 사이를 조용히 넘나들며. 마치 우리의 풋풋했던 과거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막장과 과장으로 현실과의 괴리에 지친 영화계를 산뜻하게 정화해주는 듯한 네러티브다.
류준열, 진기주가 그런 연기들을 참 잘해냈다. 셋의 옹기종기 케미가 참 좋다. 문소리는 그냥 넘어가겠다. 언제나 잘하는 배우.
난 영화를 반복해서 잘 보지 않는다. 왜냐면 세상엔 볼 영화가 너무 많다. 매일매일 새로운 영화가 업데이트 된다. 다 볼 시간도 없는데 또 봐야하나? 이건 과거의 주된 내 생각이었고.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과거의 영화를 본 그 시점의 내 사고와 감정이 받아들이는 것과 지금의 내가 느끼는 것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이다.
과거에 별 감정이 없었던 영화도 다시보면 큰 울림을 줄 수 있더라.
참고로 가장 많이 본 영화는 일본영화 [러브레터]. 인생영화다. 오겡끼데스까.
리틀포레스트, 왠지 삶에 지칠때마다 한번쯤 다시 꺼내보고 싶은 영화가 될 것 같다.
당장이라도 자연으로 도망가고 싶지만, 용기가 없고, 결정적으로 시골에 집이 없는 아련한 놈이기에. 흐뭇하게 편안하게 영화를 보는 동안에라도 X노X락의 감정의 굴곡없는 기분좋은 영화를 보고싶은 분들께 추천!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며 가슴을 두드린 장면들을 주욱 던져두고 떠나련다.
자연스럽게 영화 속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겠지만, 순서에 큰 의미는 없다.
잠시나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시각적 힐링을 맛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