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일 때문에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만났었다. 나는 눈치껏 대표들이나 회사 중역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앉았다. 나와 나잇대가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듯 보이는 여자들은 이미 자기소개 같은 걸 끝냈는지, 소곤소곤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가만 들어 보니 자신들이 경험한 성추행 피해가 이야기의 주제였다. 그들은 버스에서, 도서관에서, 지하철에서 알 수 없는 손길에 기분이 상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얘기라면 나도 할 말이 많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무단횡단을 하기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리면서 낯선 손길이 다가온 적이 있었다. 어느새 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그때의 일을 털어놓고 있었다. 이상하게 후련한 기분이 들었고 잠깐의 대화로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검찰 내 성추행 피해 상황을 증언했다. 이후 할리우드에서 시작됐다는, 자신이 겪은 성폭력을 알리는 미투 캠페인이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SNS와 언론에서 관련 내용을 접하며 나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 우리는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남이 들을까 두렵다는 듯이. 난 우리가 기분 나쁜 얘길 알리고 싶지 않아서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던 거라고 생각했었다. 기분 나쁜 이야기는 입 밖에 내뱉는 것 자체가 싫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최근 이루어지는 미투 캠페인을 보면서, 그날 우리는 지레 겁을 먹고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나누었던 그런 일들 뒤엔 꼭 '그러게 네가 어찌어찌하지(상황에 따라 어떤 말로도 바뀔 수 있는) 말았어야지.' 같은 말들이 따라붙었으니까.
'미투'라는 태그를 달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날로부터 몇 년 후, 지금으로부터는 몇 년 전의 일이다. 내 잘못이 전혀 아닌데 내 잘못으로 치부됐던 일에 관해 쓰고 싶다.
내가 다니던 회사와 협력업체인 A사와 일하며 생긴 일이다. 협력업체라기보다 다녔던 회사가 A사의 하청업체였다. A사로부터 받는 금액이 적지 않았는지, 회사에서는 A사를 제대로 관리했다.
내 직속 상사가 관련 프로젝트의 담당자였고 나는 그 상사를 보조하는 실무자 역할이었다. 그러니까 A사에 성의 있게 보이게끔 상사가 직접 연락을 주고 받고 일은 내가 진행하는 형태였다. 어쨌든 A사에 들어갈 때 함께 움직였다. A사의 담당자 B는 언제부터인가 내게 특별한 연유 없이 연락을 해 왔는데, 이게 단순한 관심의 표현이 아니란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B의 연락은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또 B는 여럿이 함께 다닐 때 장난을 치듯 내게 팔짱을 껴 온다든지, 노골적으로 나를 자극하는 말들을 해왔다(예를 들면, 우리 집에 언제 갈 거냔 식의). 나는 그런 말들에 수치심을 느꼈다. 내 굳어진 표정을 보면서도 B는 그런 행동들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은 자정이 다 되어 가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당연히 받지 않았고 화가 나서 다음 날 바로 상사에게 가 말했다. 그간 말하지 않았던 모든 기분 나쁜 일들을 털어놨는데, 뜻밖에 상사는 화부터 냈다. "너 일 쉽게 하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밤에 걸려 온 전화(그게 혹시 일과 관련된 거였다 한들 왜 그 시간에?)를 받지 않은 게 왜 일을 쉽게 하는 게 돼 버리는 건지. 그리고 일을 어렵게 하는 건 또 뭔지? 밤에 온 전화를 받아 일 얘기를 하면 일을 어렵게 하는 건지?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부아가 치민다. 그런데 나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그냥 울고 말았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 내 편이 되어 줄 것 같은 사람들에게 이 일에 대해 말했다. 동료들은 화를 내 줬지만, 난 그게 공감이 아니라 내 기분을 살핀 처사란 걸 알았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말하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우리 부의 장이 나와 상사를 불렀다. 부장은 상사에게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느냐 물었고 상사는, 앞으로 나를 그 일에서 조금씩 발을 떼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부장은 화살을 내게로 돌렸다. 일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랬더니, 일을 안 한다고 말하는 게 어딨냐고. 클라이언트 한 명 못 다뤄서 어떻게 하냐고.
B에게 당한 일들이 분했고 회사 차원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 주길 바랐을 뿐이다.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내가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분 나쁜 일들을 겪을 때마다 B에게 불쾌하다고 이야기를 해야 했던 것 같긴 한데, 그렇게 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런 언사가 괜찮아서가 아니라, 내 행동이 A사와의 관계를 망칠까 염려했던 것 같다.
일은 내가 정말 원하지 않은 방식대로 흐지부지 끝났다. A사와 관련된 내 역할을 남자 동료가 맡게 된 것이다. 난 B에게서 회사 사람들에게서 두 번 상처 받았다. "그 사람이 젊고 잘생겼더라도 네가 기분 나빠했을까." 이 말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B가 나쁜 사람이냐, 아마 그 사람 주변의 사람들은 B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열정적으로 일했으며 잘 웃었다. 그리고 윗사람에게 자신을 굽혔고 아랫사람을 끌고 갈 줄 알았다. 내 직속 상사나 부장 또한 흔하고 선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좋은 동료, 좋은 친구, 좋은 남편, 좋은 아빠였다. 돌아보니 이런 사실이 날 슬프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런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뾰족하니 혼자 튀어나와 있었는 것 같아서.
그때의 나는 어쩌면 "정말 힘들었겠다." 같은 말을 듣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느낀 건, 불편함이었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불편해 했다. 지금 와서는 그 불편해 하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 밤에 전화 한 번 한 것, 팔짱 한 번 낀 것, 농담 한 번 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런 일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오랜 시간 묵혀 놨다가 이때다 싶어 털어놓듯 글을 써 내려 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미투'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많은 일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벌써 그런 내용의 게시물 여러 개를 읽었다. 그런데 미투 캠페인은 성별로 편을 가르는 일도 아니고 한 성별에 색안경을 끼우는 일도 아니다. 이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자신의 성별과 상관 없이, 의도와 상관 없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알리는 일이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말과 행동을 주고받을 수 있길 바라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글을 쓰고 나니 한결 후련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