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불평과 다짐

By @applepost4/4/2018kr-pen


커피 맥주 초콜릿   

좋아하는 것들. 언제부터 내가 커피 맛을 알게 된 걸까. 밤늦게까지 공부한답시고 독서실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마셨을 때부터?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코코팜이나 마운틴듀, 큰집식혜 같은 걸 더 자주 마셨으니까. 그렇다면 엄마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내 것도 커피 2, 설탕 2, 프림 3 정도로 타 마실 수 있었던 때부터였나? 아니면 아메리카노의 고소하고 진한 맛이 쓰지 않게 느껴졌을 때부터? 

맥주는 언제부터 좋아했던 걸까. 취기가 올라 알딸딸한 상태가 되면 좀 더 즐겁고 정신없어진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대학생 때는 밥값을 아껴 작은 병맥주 두세 병을 사 마시는 게 낙이었다. 수입 맥주는 꿈도 못 꿨고 적당히 시원하고 알싸한, 하지만 취기가 오르는 데는 하자가 없는, 그런 맥주들을 마셨다. (지금은 내가 마시고 싶은 맥주를 만 원에 네 캔 정도 고를 수 있다.) (달라진 건 딱히 없는 건가?)

초콜릿은? 커피, 맥주와는 달리, 가방이나 주머니 속에만 있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나는 종종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환기할 줄 안다는 걸 부러워했다. 때가 되면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물고 잠깐 머리를 식히는 게 좋아 보였는데, 나에게는 그러한 쉼이 허용되지 않았다. 목이 아프고 머리가 핑핑 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게 담배의 맛이라고도 했다. 여하튼. 담배를 대신하는 게 내게는 초콜릿이었다. 그중에서도 빨간 포장박스의 가나 초콜릿을 무지하게 먹었다. 

뜬금없이 커피, 맥주, 초콜릿 얘길 꺼낸 건 역류성식도염 때문이다. 지난해부터인가 종종 목이 붓고 침을 삼키기가 어려웠다. 단순히 컨디션이 안 좋아서 몸살기가 있는 줄로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에는 목이 따끔따끔하고 입에서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불쾌한 맛이 느껴져서 이비인후과에 갔다. 의사는, 증세로 봐서는 역류식도염 같다고 일단 염증약을 처방할 테지만 내과에 가 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약만 먹고 내과에는 가지도 않았다. 대신 인터넷에서 역류성식도염에 좋은 음식, 치료 방법 같은 걸 찾아봤다. 원치 않게도, 역류성식도염에 안 좋은 음식도  알게 되었는데 그중 커피, 맥주, 초콜릿이 있었다. 나는 인터넷 게시물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커피와 맥주를 마시고 초콜릿과 초코과자를 먹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또 다시 목이 따끔따끔하고 침을 삼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눈물이 났는데 그건 아파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평생 커피나 맥주, 초콜릿을 못 먹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시경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내과에 가면 내시경을 받아야 한다! 어쨌든 일주일 내에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내과에 가겠다는 심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삼가고 있다. 그리고 매일 양배추를 먹는다! 앞으로도 매일 먹을 것이다.    



그리고 벚꽃

어제는 밤에 벚꽃을 보러 나섰다. 한 달 전쯤만 해도 추위가 가시기만을 바랐는데, 봄이라는 게 왔고 심지어 꽃까지 피니 겨울 같은 거 애초에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꽃이란 건 사람을 참 들뜨게도 하나 보다. 벚나무가 가득한 언덕에는 얼굴을 찌푸린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하긴 벚꽃놀이라는 것 자체가 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꽃을 볼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존재할 테니까. 나도 그 무리 속에서 잠깐 들떠 벚꽃 사진을 찍어댔다. 

같이 간 사람은, 벚꽃은 질 때가 더 예쁘다고 했다. 바람에 날려서 떨어지는 벚꽃을 보는 게 좋다고, 벚꽃 잎이 깔린 길을 걷는 게 좋다고 했다. 낮에 본 목련 생각이 났다. 목련이 좋다. 희고 큰 꽃잎들은 단순히 예쁘단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고귀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집 근처 제법 큰 목련나무를 볼 때면 왠지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했는데, 어제 낮에는 목련 꽃들이 반은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희고 희었던 색은 온데간데없고 갈색으로 짓무른 것처럼 보였다. 나무에 달린 꽃들도 갈색 물이 들어 있었다. 피고 지는 모습이 이렇게나 다른 꽃이 또 있을까. 피는 모습에 비해 지는 모습은 처참할 정도였다. 

네이버 블로그에 비공개로 일기를 (띄엄띄엄) 써온 지 10년이 넘었다. 오랜만에 옛날 일기를 훑어보다 10년 전 12월에 쓴 일기가 마음을 붙잡았다. 정년을 앞둔 교수님 연구실에 찾아갔었나 보다. 탁자에는 바스러질 것 같은 플라타너스 낙엽 몇 장이 놓여 있었나 본데, 그때 하신 말씀이 주옥같다. “낙엽인들 꽃이 아니랴. 미래의 어느 날들에는 근사한 일들만 펼쳐질 것 같지만, 살아보니 다 똑같더라. 그러니까 너흰 그때그때 재밌게 살아.” 

당시에는 교수님 특유의, 삶을 관조하는 듯한 태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 하신 말씀도 이해했을 리 없다. 그리고 분명, 교수님은 교수 정도 되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이제 조금은 그때 말씀을 이해할 것만 같다. 플라타너스 낙엽을 꽃처럼 탁자에 올려 두신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나는 근사한 미래를 꿈꿨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보다 근사해진 건 무얼지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뭐라고 딱히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그때보다 좀 더 고집스러워졌고 불평불만이 늘었으며, 심지어는 커피, 맥주, 초콜릿 따위는 입에 대지 않으려 하고 있다. 

목련은 지고 벚꽃이 폈다. 작은 꽃잎 하나에도 피는 시기가 따로 정해져 있는데, 조바심 같은 거 내지 말고 바뀐 계절에 서서히 적응해 보려 한다. 아니 그보다, 갈색으로 짓무른 목련에도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봄이었으면 한다. 


21

comments